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집에서 썰매를 가져가도 저수지 이용료로 천원을 받는다.
▲ 얼음 썰매위의 두 아들 집에서 썰매를 가져가도 저수지 이용료로 천원을 받는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오늘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하나같이 무슨 남극이라도 횡단하려는 듯 겹겹이 껴입은 모습으로 말입니다. 특히나 전사의 기세로 달려왔다가 하루 종일 제 그림자도 못 보고 헛물만 들이켜다 가시는 분들. 패잔병처럼 쓸쓸히 사라지는 그 뒷모습을 볼 때면, 측은한 마음이 들다가도, 한편으로 이해가 안 되기도 합니다. 차라리 사 드시지, 이 추운데... 쯧쯧.

네, 맞습니다. 저는 빙어입니다. 얼음이 꽁꽁 어는 추운 계절이 되면, 저의 유혹이 시작되지요. 잠깐 제 소개를 좀 할까요? 저는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빙어가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이지만, 지역별로 민물멸치(전북 완주)나 메르치(수원)라고 불리기도 하고, 방아(양구, 철원)나 뱅어(화천, 광주, 속초), 병어(양구, 화천, 고양, 제원, 고창) 등으로도 불립니다. 이름이야 어찌 되었건 빙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두 단어는 결국 낚시와 튀김이지요.

'써래'라는 이름의 쇠막대로 얼음에 구멍을 뚫는 일은 보기보다 쉽지 않다
▲ 얼음 구멍 뚫기-1 '써래'라는 이름의 쇠막대로 얼음에 구멍을 뚫는 일은 보기보다 쉽지 않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가끔 저를 피라미와 혼동하는 분들도 있고, 산천어로 착각하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피라미보다 제가 훨씬 미끈하게 빠졌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사실 피라미들과 비교 당하기에는 광활한 바다를 헤엄치던 조상들에게 좀 죄스런 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잘 모르셨죠? 제 조상들의 고향은 바다입니다만, 그중에 좀 게으른 혹은 어쩔 수 없이 갇힌 조상들이 호수나 저수지에 남아 지금의 육지표 빙어(육봉빙어)가 된 겁니다. 구구절절한 제 가문의 이야기에 대해선 이쯤 해서 접기로 하지요.

제가 지금 사는 곳은 강원도 원주의 한 저수지입니다. 어찌어찌하여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만, 그 전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생선들의 기억력, 다들 아실 겁니다. 여하튼 저와 함께 떼로 잡힌 마을 친구들 중에 대부분은 튀김이나 횟감으로 인류의 식생활에 기여하고 떠났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와 몇몇은 저수지에 방류되었는데요, 저희는 인류에 대한 기여는커녕 기만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희가 미끼를 문다고 생각하실 텐데, 혹시 여러분들이 저희를 미끼로 문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죠?

"여러분들, 저희를 미끼로 문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죠?"

'써래'라는 쇠 막대로 얼음 구멍을 뚫는 모습
▲ 얼음 구멍 뚫기-2 '써래'라는 쇠 막대로 얼음 구멍을 뚫는 모습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이십여분만에 뚫은 첫 얼음 구멍. 구멍을 뚫은 일행중 한명은 거의 실신 상태였다.
▲ 빙어 낚시 얼음 구멍 이십여분만에 뚫은 첫 얼음 구멍. 구멍을 뚫은 일행중 한명은 거의 실신 상태였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저를 한 번 낚아보겠다고 먼 길 오시는 분들이 입구에서 처음 마주치는 것은 제 사진이 아닌 차림표입니다. 입장료 5천 원, 낚싯대 세트 3천 원, 미끼 2천 원, 의자 2천 원 등등이 적힌 현수막입니다. 물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천 원도 안 되는 중국산 견지 낚싯대로 폭리를 취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수지 주변 청소도 해야 하고 관광객들이 남긴 쓰레기 등도 처리해야 하니까, 그 정도 이문은 남아야지요.

제가 주인의 불호령을 예상하면서도 몇 자 적어 올릴 결심을 하게 된 건, 요즘 들어 입장료 5천 원 받기가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이 글은 저의 양심선언입니다. 오늘 제가 활동하는 영역 위쪽 얼음에 구멍을 뚫으신 분들은 차로 세 시간을 달려서 왔다고 합니다. 낚시 체험해 주겠다고 잠도 덜 깬 코흘리개 아이들을 새벽부터 깨워서 운전해 오신 아버님의 자식 사랑이 참으로 눈물겹습디다.

일행들과 함께 한 시간 남짓 땀을 뻘뻘 흘리며 구멍 여섯 개를 파시더군요. 빙어 낚시터에 가면 구멍이 다 뚫려있는 줄 아셨죠? 얼음 구멍은 금세 다시 언답니다. 그리고는 미끼로 사용되는 구더기를 어설프게 끼워서 열심히 저를 유혹하시더군요.

TV나 각종 매체에서는 낚싯대만 드리우면 몇 마리씩 한꺼번에 낚여 올리는 것으로 소개됩니다만, 사실 저희가 그렇게 많이 방류되는 게 아닙니다. 이곳 저수지 자체에서 서식하는 빙어는 얼마 안 되거든요. 낚시철이 되면 여기 주인장이 저희를 사다가 좀 풀어둡니다. 그 양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얼음 뜰채로 수시로 얼음을 건져내야 얼음구멍이 막히지 않는다.
▲ 빙어 낚시 얼음 구멍-2 얼음 뜰채로 수시로 얼음을 건져내야 얼음구멍이 막히지 않는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얼음 구멍이 준비되면 미끼로 구더기를 끼운 후 본격적인 빙어 낚시에 들어간다
▲ 빙어 낚시 얼음 구멍이 준비되면 미끼로 구더기를 끼운 후 본격적인 빙어 낚시에 들어간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사실 제가 주인이라도 수만 마리씩 풀어 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다가 튀겨 팔고 회로 팔고 무쳐서 팔면 훨씬 더 이익일 테니까요. 심정적으로 이해는 갑니다만, 몇 시간씩 추운 얼음 위에서 떨다가 빈손으로 가시는 분들의 우울한 얼굴들을 볼 때면 가슴이 찢어질 듯합니다. 오늘 다녀가신 분들도 구멍 여섯 개를 파서, 세 시간쯤 열심히 낚싯대를 들었다 놨다 하셨지요. 그런다고 잡히겠습니까? 이 큰 저수지에 빙어 몇 마리 풀어 논다고 눈에 띌 리가 없지요. 옆집, 그 옆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놀이 삼아 썰매도 타고, 체험이라고 생각하고 오시는, 사해와 같은 넓은 마음의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십니다. 빙어 잡아 동네방네 나누어 주고, 냉동실에 얼려서 겨우내 드실 생각으로 오시는 분들은 아마 없겠지요. 하지만 반경 백 미터 내에 세 시간 동안 빙어를 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얘기가 달라지는 겁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얘기지만 빙어낚시에 빙어가 없다? 제가 그분들이라면 입장료 5천 원, 본전 생각나지요.

세 시간 걸려 이곳에 달려온 팀들은 역시 세 시간 만에 자포자기하였습니다. 풀이 죽은 모습으로 추위에 떨며, 짐을 정리하던 그분들의 대화가 귓가에 맴돕니다.

"빙어 낚시하는 데만 얼마 들었어?"
"입장료 어른 여덟에 4만 원, 낚싯대랑 미끼랑 아까 커피 사마신 거 하면 얼추 10만 원 정도 들었지, 왜?"
"십만 원어치 빙어 사면 얼마나 줄까?"
"한 바께쓰는 주겠지..."
"...이게 뭔 짓이여..."

백배 공감하옵니다.

"저를 보고싶으시다면 꼭 낚아야겠다는 욕심을 버리십시오"

빙어 낚시를 위한 저수지 입장료는 1인당 5천원이고, 낚시대 세트와 미끼, 의자등을 구입하면 만원이 훌쩍 넘는다.
▲ 매표소 빙어 낚시를 위한 저수지 입장료는 1인당 5천원이고, 낚시대 세트와 미끼, 의자등을 구입하면 만원이 훌쩍 넘는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행여 앞으로 빙어 낚시 가실 거면, 잘 알아보고 가십시오. 유명하다는 낚시터에서 빙어 손 맛봤다는 이야기 별로 못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빙어축제가 다 그런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명색이 저희들의 축제인데, 저희도 얼마나 신이 나겠어요? 해마다 열리는 이름있는 축제들에는 볼거리나 먹거리들이 풍부하니까 사전에 충분히 알아보고 가시라는 겁니다. 그저 얼음 위에서 추억의 썰매 타기나 팽이 치기하고 놀다가 가시는 길에 튀김이나 회 한 접시 사드실 생각으로 가볍게 떠나시면 됩니다.

그래도 저를 이렇게 방류해 주신 덕분에, 불만 쌓인 손님들의 손에 들려주는 존재감 없는 몇 마리 빙어로 죽지 않게 해주신 점은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끼리 하는 얘기지만, 그 친구들이 제일 불쌍하죠. 튀김과 낚시라는 자랑스러움 대신, 덤으로 실려다가 죽는 불명예 빙어니까요.

입장료에 낚싯대에 미끼까지 단돈 만 원.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어디 가서 이 비용으로 가족 친지들과 추억을 쌓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취사 금지 지역이라서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휴게소에서 간단한 요기하시는 거랑, 썰매나 팽이 대여비는 따로 준비하셔야 합니다. 혹시 썰매 가져오신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개인 소유 썰매도 천 원의 환경관리비가 부여된다는 사실!

끝으로, 저를 보고 싶으시다면 꼭 낚아야겠다는 욕심을 버리십시오. 사서 잡수실 생각으로 철저히 무소유의 마음가짐과 두둑한 지갑 가지고 찾아오세요. 이상 내부고발 빙어였습니다.


태그:#빙어낚시, #빙어튀김, #입장료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