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천성적으로 부동애형 인간이다. 움직임 없는 정적인 삶을 사랑한다. 취미로 그 흔한 운동 하나 즐기는 게 없다. 특히나 겨울에는 이불 밖으로 나가는 걸 끔찍이도 싫어한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오징어다리 뜯어가며 책 읽는 걸 최고의 여가 활용이자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또 캠핑장에 갔다. 인생의 상당 부분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 첫 캠핑의 뜨끔한 경험을 만회하려는 듯, 이번에는 더욱 야심차게 준비한 처형네 가족을 따라 향한 곳은 그 이름도 유명한 난지 캠핑장(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소재).

난지도. 이름부터 살짝 거부감이 드는 곳이었다. 지방에 사는 사람인 나에게 난지도라는 이미지는 대체불가하다. 대학 시절, 빈 술병에 재떨이까지 발 디딜 틈 없이 어지럽혀 있던 남자 선배들의 자취방 애칭이 '난지도'였고, 연극이 끝나고 각종 소품과 무대장치가 무질서하게 뒹구는 동아리 방을 '난지도'라 불렀다. 그런 곳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싶나?라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으나, 처갓집 족보에도 분명 서열은 존재하므로 이번에도 군소리없이 따라갔다.

차로 겨우 10여분 거리. 일단 가깝다는 점은 맘에 들었다. 설 바로 다음날이어선지 사람도 별로 없고, 한강변에 위치해서 탁 트인 느낌도 괜찮았다. 난지도에 대한 선입견을 조금씩 허물기 시작한 것은 매표소부터였다. 입장료가 성인 3750원에, 5~7세 유아는 2000원. 거기에 다둥이 행복 카드를 내민 처형댁 가족은 50% 할인까지. 아이들 포함하여 총 여덟 명의 입장료가 2만 원이 채 안 되었다. 일단 입장료는 어디든 싸면 좋다. 더구나 잠시 맡아둔 아이들의 세뱃돈으로 결제한다면 기쁨은 두 배가 된다.

피크닉 이용객의 경우 성인 기준 3750원. 다둥이 행복 카드를 지참시 50% 할인의 헤택을 받는다.
▲ 캠핑장 이용 요금및 안내 피크닉 이용객의 경우 성인 기준 3750원. 다둥이 행복 카드를 지참시 50% 할인의 헤택을 받는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난지 캠핑장은 크게 피크닉 지역과 텐트 지역으로 나뉜다. 야영 없이 간단한 취사나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 곳을 피크닉 지역이라고 하고, 숙영을 위해 자가 텐트 혹은 텐트 지역에 설치된 텐트를 임대해서 야외 취침이 가능한 곳을 텐트 지역이라고 한다. 피크닉 지역의 경우, 따로 예약은 필요 없고 입장료만 내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정월 초하루부터 길바닥에서 자다가는 입 돌아가기 십상이므로, 우리는 안전하게 피크닉 지역을 택했다.

결론에 앞서, 이글은 난지 캠핑장의 지극히 일부의 모습만 본 체험기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두 구역 중에 피크닉 지역 한 구역만, 그것도 비수기인 1월 달에, 그것도 일기예보에서 적잖은 비를 예보한 설 다음날에 캠핑장을 이용했으니, 한쪽 눈만 실눈 뜨고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지 캠핑장을 소개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좋았으니까.

비가 예보된 설 다음날의 캠핑장에서는 삶의 여유가 보인다
▲ 캠핑장 내 피크닉 구역의 풍경 비가 예보된 설 다음날의 캠핑장에서는 삶의 여유가 보인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그렇다면 무엇이 그리 좋았길래, 불과 몇 시간 경험 따위를 글로 옮겨 캠퍼들에게 혼란을 주려 하는가? 시골 촌놈에게 그저 서울 구경이 좋았던 게 아닌가?라는 오해도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이면서 하나씩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저렴한 입장료에 비해 이용할 수 있는 시설 등이 훌륭하다. 피크닉 지역에 있는 천막 중에서 선착순으로 아무 천막이나 무료로 사용하면 되는데, 한 가족용과 두 가족용으로 구분되어 있다. 수량이 많지 않으므로 날씨 좋은 주말에는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지만, 뭐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남의 떡으로만 남지는 않을 거다. 우리가 선택한 두 가족용 천막은 안에다 텐트를 설치할 수 있을 정도의 큰 규모였으며, 내부에는 나무 테이블 두 개와 양철 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짐 운반용 리어카를 무료로 빌려준다. 캠핑객들이 거의 없을 때는 아이들 태우고 캠핑장 한바퀴 도는데 사용해도 훌륭하다. 체력이 된다면.
▲ 추억의 리어카 짐 운반용 리어카를 무료로 빌려준다. 캠핑객들이 거의 없을 때는 아이들 태우고 캠핑장 한바퀴 도는데 사용해도 훌륭하다. 체력이 된다면.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그 외에 캠퍼들의 짐 나르기를 도와줄 리어카를 마음껏 사용 할 수 있었고(물론 짐 나르기보다 아이들을 태워주는 데 더 많이 활용하기는 했지만), 화장실도 유지관리가 잘 되어 있어 사용에 불편이나 꺼려함이 없다. 처음 갔던 사설 캠핑장의 화장실은 청결 수준 및 공포스런 분위기로 인해 대낮에도 동반자가 필요할 정도였기에, 어디에 가던 화장실부터 찾아보는데 이곳은 매우 괜찮은 편이다. 쓰레기 분리대나 개수대등도 충분히 후한 점수를 주고도 남는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 장작을 때는 난로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내 심장은 떨려온다
▲ 양철 난로 위의 고구마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 장작을 때는 난로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내 심장은 떨려온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매점에 파는 장작 만원어치. 집에서 땔감용 나무를 가져와도 되며, 타고 남은 재의 정리는 관리소에서 해결해준다.
▲ 장작 한 묶음에 만원 매점에 파는 장작 만원어치. 집에서 땔감용 나무를 가져와도 되며, 타고 남은 재의 정리는 관리소에서 해결해준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둘째, 장작불이 타오르는 양철 난로의 분위기가 범상치 않다. 천막 내부에 있는 양철 난로(홈페이지에는 화목난로라고 되어 있다)에 땔감으로 가져온 나무로 불을 붙인다. 훈훈한 기운이 올라오면 난로 위에 주전자와 은박지로 싼 고구마를 올려둔다. 나무가 타는 매캐한 냄새 그리고 탁탁거리는 소리까지, 서울 한 가운데에서 경험해 보기 어려운 공감각적 장면이다(장작은 매점에서 만 원 주고 사면 몇 시간은 땔 수 있다).

사실 난지 캠핑장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바로 이 양철 난로와 장작불이었다. 학창시절, 주번 혹은  벌칙으로 아침 일찍 줄서서 언 손에 입김 불며 왕겨탄과 조개탄을 받아오던 기억. 교실 한가운데 설치된 둥그런 모양의 녹슨 난로에 불을 붙이고나면 교실 전체가 연기로 가득차던 기억. 그리고 늘 부족했던 연료를 위해 우유팩을 접어 교실 뒷켠에 차곡히 쌓아두었다가 땔감으로 쓰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난로 위에 철제 도시락(보온 도시락이 대중화되기 전 시절)을 올려 두라고 배려해 주시던 마음씨 넉넉한 몇몇 선생님들의 얼굴도 스쳐간다. 난로 위에서 끓던 노란 주전자와 쉬는 시간마다 따뜻한 물 한잔이라도 받아먹으려고 줄 서던 아이들. 난롯가 근처의 친구들은 더워서 졸고, 멀리 떨어진 아이들은 두세겹 껴입고도 떨던 그 시절. 장작불 속에는 많은 추억들이 함께 타오른다.

천막 내에 작은 텐트를 칠 수 있을 정도로 내부가 넓다. 반대편에는 나무 테이블 두개가 설치 되어 있다.
▲ 두 가족용 천막의 내부 천막 내에 작은 텐트를 칠 수 있을 정도로 내부가 넓다. 반대편에는 나무 테이블 두개가 설치 되어 있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셋째, 주변 시설의 활용이다. 중앙 브릿지가 연결되어 있어, 조각공원과 하늘공원으로의 산책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뭐 직접 가보지는 않았다.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산책도 싫어하기 마련이니까.

조금만 걸어 나가면 한강이 훤히 보이는데, 서울이라는 꽤나 답답한 도시를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한강은 그나마 내가 서울에서 부러워하는 유일한 풍경이다. 그 풍경을 원 없이 즐길 수 있다. 캠핑장 내에는 아이들이 뛰어 놀기 좋은 운동장이 있다. 비둘기 한 마리 잡아보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꽁지만 쫓아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다소 을씨년스러운 캠핑장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상으로 2월 초순의, 매우 흐린 날씨의, 공휴일의 난지 캠핑장의 모습을 스케치해 보았다. 아마 1년 중에 가장 한가한 날일 것이며, 그랬기에 느끼고 볼 수 없던 것들을 마음이 읽어내지 않았나 싶다. 3월만 되도 캠핑장은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텐트 지역의 경우 통상 두 달 전부터 예약이 시작되니(홈페이지 참조), 집 가까운 캠핑장을 선호하는 캠퍼들은 미리미리 준비 하시기를.

눈이 왔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물론 난롯가에 앉아 군고구마 까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동안, 소리없이 다가온 빗방울의 존재를 느끼는 것도 썩 괜찮은 기분이었다. 빗방울은 점차 굵어졌다. 천막을 두드리는 이방인의 선율,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 지금까지도 귓속을 파고든다.

입구가 오픈되어 있어서 추운 날은 피하는 게 좋다.
▲ 한 가족용 천막 입구가 오픈되어 있어서 추운 날은 피하는 게 좋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태그:#난지캠핑장, #양철난로, #피크닉 지역, #리어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