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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시시한 발견이 나를 즐겁게 하는 야밤이 있다
오늘밤 우리의 현대문학사의 변명을 얻었다
이것은 위대한 힌트가 아니니만큼 좋다
또 내가 '시시한' 발견의 편집광이라는 것도 안다
중요한 것은 야밤이다

우리는 여지껏 희생하지 않는 오늘의 문학자들에 관해서
너무나 많이 고민해 왔다
김동인, 박승희 같은 이들처럼 사재(私財)를 털어놓고
문화에 헌신하지 않았다
김유정처럼 그밖의 위대한 선배들처럼 거지짓을 하면서
소설에 골몰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덤핑 출판사의 20원짜리나 20원 이하의 고료를 받고 일하는
14원이나 13원이나 12원짜리 번역 일을 하는
불쌍한 나나 내 부근의 친구들을 생각할 때
이 죽은 순교자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우리의 주위에 너무나 많은 순교자들의 이 발견을
지금 나는 하고 있다

나는 광휘에 찬 신현대문학사의 시를 깨알같은 글씨로 쓰고 있다
될 수만 있으면 독자들에게 이 깨알만한 글씨보다 더
작게 써야 할 이 고초의 시기의
보다 더 작은 나의 즐거움을 피력하고 싶다

덤핑 출판사의 일을 하는 이 무의식 대중을 웃지 마라
지극히 시시한 이 발견을 웃지 마라
비로소 충만한 이 한국문학사를 웃지 마라
저들의 고요한 숨길을 웃지 마라
저들의 무서운 방탕을 웃지 마라
이 무서운 낭비의 아들들을 웃지 마라
(1965. 12. 6)

수영이 번역을 부업으로 삼은 건 한국전쟁 뒤부터였다. 번역가라는 공인된 자격이 수영에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수영은 해방 직후에 성북중학교 자리에 영어학원을 개설해 6~7개월간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곧 그만두었지만, 1946년에 연희전문 영문과에 편입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중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 미군을 상대로 통역 일을 했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그런 경력이 공식적인 번역가임을 보증해 주지는 않았다. 수영 스스로 자신은 영문학자나 불문학자가 아니므로 번역가 자격이 없다고 말하였다. 자신이 번역한 글들에 대해 비난의 대상조차 되지 않을지 모른다고 자조한 적도 있을 정도다.

처음에 수영은 다만 생계를 위해 번역을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자신의 번역 일에 '구걸 번역'이라는 모멸적인 이름을 붙여 놓았다. 번역가다운 경력이나 자질도 없으면서 분에 넘치게 여러 권의 단행본 번역까지 하게 된 저간의 상황을 얘기하면서 한 말이었다. 수영은 그런 자신을 파렴치하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자격도 없고 모자라는(?) 번역가로서의 수영이 겪은 일화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언젠가 수영은 'Who's Who'를 '누구의 누구'로 번역한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책은 어느 대학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수영은 번역자로서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랴부랴 담당자에게 변명의 편지를 띄웠다.

문제가 된 그 책은 재판으로 나온 것이었다. 허탈했다. 아무리 너절한 출판사라지만 사전에 재판이 나온다는 말 한 마디를 건네주지 않은 게 여간 괘씸하지 않았다. 수영은 자신이 아무리 게으르다고 하더라도 '누구의 누구'와 같은 창피스러운 오역은 고칠 마음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했다. 수영은 번역자에게 미리 연락하는 조그마한 여유조차 없는 출판사가 야속하기만 했다.

번역 일에 대한 수영의 자조에는 이와는 다른 배경도 있었다. 수영이 한 번역은 '구걸 번역'이자 한 장에 30원 정도씩 받고 하는 '청부 번역'이었다. 번역할 책의 레퍼토리 선정은 완전히 출판사 쪽에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란 출판사의 '청부'를 받아 번역해서 원고를 전하는 일뿐이었다. 재판 교정까지 맡겠다고 지레 정성을 보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수영이 보기에 자신이 그렇게 정성을 보이면 출판사 측이 싫어하는 것 같은 눈치를 보였다. 자칫 잘못하면 '네까짓 게 뭔데' 하는 식의 비웃음까지도 살 우려가 있었다. 오죽하면 재판이 나왔을 때 그것을 대하는 번역자의 심정이 범인이 범행한 흉기를 볼 때와 같은 기분 나쁜 냉담감 같은 것이라고 말했을까.

그럼에도 수영은 번역 일에 최선을 다했다. '구걸 번역'이었으니 뜨내기 원고라고 폄하해도 할 말이 없었다. 능력이 없으니 번역 속도도 더디고, 아는 것이 없어 번역도 시원찮다 여겼다. 그럴망정 수영은 능력껏 최선을 다해 원고지를 채웠다. 원고를 탈고하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읽고 또 읽고 했다. 그 자신의 말처럼 수영에게 재산은 정성뿐이었다.

<이 한국문학사>는 그런 번역에 얽힌 수영의 경험과 소회를 제재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어느 '야밤'(1연 1행)에 수영은 "지극히 시시한 발견"(1연 1행)을 한다. 그가 발견한 것은 "우리의 현대문학사의 변명"(1연 2행)이었다. 표면적으로 그것은 하찮은 것, "위대한 힌트"(1연 3행)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수영이 발견한 "현대문학사의 변명"의 중심에는 수영 자신과 그 부근의 '친구들'(3연 3행)이 있다. 그들은 "덤핑 출판사의 20원짜리나 20원 이하의 고료를 받고 일하는 / 14원이나 13원이나 12원짜리 번역 일을 하는"(3연 1, 2행) 불쌍한 사람들이다. 수영은 이들을 "죽은 순교자"(3연 4행)로 불렀다.

싸구려 번역 일을 하는 그들은 '무의식 대중'(5연 1행)이다. 돈을 보고 달려든 속물들이다. 그들은 "고요한 숨길"(5연 4행)을 내쉬며 사회의 잉여 인간처럼 살아간다. 글쟁이랍시고 공공연히 "무서운 방탕"(5연 5행)을 일삼고, "낭비의 아들들"(5연 6행)을 자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있기에 '신현대문학사'(4연 1행)는 빛을 낸다. 그들을 발견한 이 '야밤'에, 수영이 "고초의 시기의 / 보다 더 작은 나의 즐거움을 피력하고 싶"(4연 3, 4행)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위대한 힌트"가 아니라 "지극히 시시한 발견"이지만, "비로소 충만한 이 한국문학사"(5연 3행)를 담보해 준다. "시시한 발견"이 반어로 읽히는 까닭이다.

수영이 번역 일에 늘상 자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뜨내기 번역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일관되게 정성을 기울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수영은 번역 원고를 일차로 마치고 나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읽고 또 읽고 했다. 하지만 원고지에서 붓을 떼고 나면 그만일 때도 있었다. 글을 읽을 만한 시간 여유가 있어도 구태여 읽지 않기도 했다.

그렇다고 수영이 번역 일에 완전히 관심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이 시에서 "시시한 발견"과 '무의식대중', "낭비의 아들들"이 반어인 것처럼, 번역에 대한 냉소와 조소도 실은 뜨거운 열정과 관심의 반어일 뿐이었다. 요컨대 그는 번역을 사랑했고, 보잘 것 없는 '현대문학사'를 사랑했다.

그것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거대한 뿌리> 3연 1행)와 정확히 일치한다. 화자가 "깨알같은 글씨로 쓰고 있"(4연 1행)는 '신현대문학사의 시'는, "요강, 망건, 장죽"(<거대한 뿌리> 4연 6행)으로 시작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거대한 뿌리> 4연 7행)로 끝나는 "모든 무수한 반동(<거대한 뿌리> 4연 8행)과 다름없다.

언젠가 수영은 모 신문의 '시단평'에 "한국의 현대시에 대한 나의 답변은 한마디로 말해서 '모르겠다!'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이 말을 들은 한 소설가가 "모르겠다고 해서야 쓰겠나, 잘 키워가도록 해야지"라고 말했다는 걸 전해 들었다. 평소 수영이 소설가라기보다 학교교사로 보고 있던 사람이었다. 수영은 그를 '고급 속물'이라며 조롱했다.

수영의 '모르겠다!'는 말은 정말 모른다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현대시'와 관련하여 알아야 할 것이 많다는 것, 그러니 앞으로 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다짐과 의지를 드러내는 반어가 아니었을까. 그는 모든 시시하고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사랑했다.

수영이 '야밤'에 발견한 "현대문학사의 변명"도 바로 그런 것이었으리라. "희생하지 않는 오늘의 문학자들"이야말로 문학의 진정한 '순교자'라고 말이다. 수영은, 이름 없는 '풀'처럼 살아가는 그들이 있기에 우리의 문학사가, 그리고 이 나라의 역사가 끊기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이 한국문학사>, #김수영, #<거대한 뿌리>, #현대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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