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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삼양목장 바람의 언덕, 비바람과 안개가 자욱하여 언덕에 오래 머물수가 없었다.
▲ 바람의 언덕 대관령 삼양목장 바람의 언덕, 비바람과 안개가 자욱하여 언덕에 오래 머물수가 없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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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나보다도 더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아들과 단 둘이서의 여행을 꿈꿨지만, 서로 시간을 맞추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마침 지방선거를 앞두고 좋은 기회가 왔기에 사전투표를 하면서 일정을 맞췄고, 선거일 아침부터 짐을 챙겨 무작정 떠났습니다.

물론 저는 대략적인 동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이번 여행은 그야말로 맛집을 찾아 무작정 떠나는 여행으로 잡았습니다. 시간되는 대로 발 닿는 대로 가다가, 텐트치기 좋은 곳이 있으면 그곳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바람의 언덕을 찾은 이들, 비바람에 걸음걸이가 힘겹다.
▲ 안개 바람의 언덕을 찾은 이들, 비바람에 걸음걸이가 힘겹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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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홍천에 있는 모 식당의 고추장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 가자!'

홍천에서 둘이서 3인분을 시켜서 배부르게 먹었는데, 이번엔 제법 거리가 먼 횡계시내의 탕수육이 먹고 싶다고 합니다. 지난 여름 휴가 때, 대관령 삼양목장에 들렀다가 간 식당인데 또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 좋다!'

그렇게 횡계로 향했고, 저녁겸 밥을 먹기 전에 대관령 삼양목장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삼양목장에 가까워지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합니다.

삼양목장의 목초지
▲ 목초지 삼양목장의 목초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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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굵어지는 빗줄기에 지역적인 영향일 것이라 믿고 싶었습니다. 저녁겸 맛난 식사도 마쳤으니 이젠 텐트를 칠 곳을 찾아야 합니다. 일단은 비가 오지 않은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정보에 기대지 않고, 대관령을 넘어 강릉쪽으로 가자 했습니다.

대관령 정상은 안개로 앞뒤가 분간이 안될 정도였습니다. 강릉으로 가는 길에도 비가 계속 내렸으므로, 데크가 설치된 곳이 아니면 텐트를 치기가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예약한 곳은 없지만 비가 이렇게 오니 예약이 취소된 자리가 있는 오토캠핑장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대관령 자연휴양림 근처의 오토캠핑장에 자리가 있었습니다.

대관령 인근의 야영캠핑장
▲ 오토캠핑장 대관령 인근의 야영캠핑장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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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아, 텐트 끝내준다.'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텐트가 장난들이 아니야. 우리 텐트 치기가 민망하네.'

그래도 꿋꿋하게 아들과 나는 우중에 텐트를 쳤고, 가림막까지 치고나니 둘만의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가림막 속에 들어있는 나무가 조명에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 오토캠핑 가림막 속에 들어있는 나무가 조명에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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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밤을 보내는 것이겠지요. 아마, 홀로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내야 한다면 그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서로 알지 못해도 서로 의지하면서 숲 속에서 밤을 보내는 것입니다.

아들과 나의 텐트, 렌턴이나 가스조명 대신 양초를 준비했다.
▲ 오토캠핑 아들과 나의 텐트, 렌턴이나 가스조명 대신 양초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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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캠핑이니 분위기 잡아보려고 양초를 준비했는데, 분위기가 좋습니다. 밤참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빗소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런데 참으로 정겹습니다.

날씨는 적당합니다. 이른 더위로 지쳤던 몸이 회복되는 듯한 기분입니다. 그렇게 밤새 빗소리가 들려왔지만 잠을 설치지는 않았습니다.

밤새 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잤다.
▲ 비이슬 밤새 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잤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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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빗방울이 더 굵어집니다. 아무래도 철수를 해야지 안 되겠습니다. 텐트는 비싸지 않아도 설치와 철수가 원터치로 간편합니다. 지난 밤, 비도 한 방울 새지 않았습니다.

다른 집 텐트를 보니 좀 큰 텐트들, 그래서 어젯밤 우리를 한편 부럽게 하기도 했던 텐트는 철수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편안하려면 그만큼 비용과 수고가 더 필요한 것이겠지요. 물론,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무엇이 더 개인에게 좋은지는 다른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초간편 철수를 하고 강릉으로 가서 아침을 먹을 요량으로 강릉으로 향했습니다.

오징어가 많이 잡혔단다. 이십 마리 한 박스에 이만 원이란다. 집에 와서보니 덤으로 7마리나 더 주었다.
▲ 주문진항 오징어가 많이 잡혔단다. 이십 마리 한 박스에 이만 원이란다. 집에 와서보니 덤으로 7마리나 더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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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쪽에서 시레기가 많이 들어간 '조개해물된장해장국'을 먹고 주문진항으로 향했습니다. 캠프장에서 일찍 철수했기 때문에 아직도 아침 시간입니다.

주문진항에 오징어배가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집에 있는 식구들 생각에 한 박스 사서 차에 싣고 속초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가며 쉬엄쉬엄 갔습니다.

비가 내리는 탓에 하늘도 바다도 잿빛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니 좋을 수밖에요.

바다로 나갔던 배가 항으로 돌아오고 있다. 모든 배들이 그렇게 돌아와야 하는데....
▲ 귀항 바다로 나갔던 배가 항으로 돌아오고 있다. 모든 배들이 그렇게 돌아와야 하는데....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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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를 보더니만 '오징어물회'가 먹고 싶답니다. 대포항에 들러 '오징어물회'를 먹는데, 오징어회만 들어간 것이 아니라 멍게에 세꼬시까지 들어있습니다.

문득,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건가 싶습니다. 대충 먹고, 일에 파묻혀 살고, 하고 싶은 일 뒤로 미루면서 살아도 행복한 것이라 자위하며 살았는데 본심은 그게 아닌 것입니다. 잘 먹고, 쉬면서 여행하며 살아가도 돈 걱정 없다면 굳이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도 같습니다.

오징어물회를 먹고 나오는 길에 새우튀김도 사서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온천에 들러 아들 등도 밀어주고, 내 등도 밀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정확한 용도는 모르겠으나 임시선착장처럼 보인다.
▲ 임시선착장 정확한 용도는 모르겠으나 임시선착장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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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오는 길에 아들에게 묻습니다.

"다음에 또 아빠랑 단 둘이 여행갈까?"
"오케이!"

별로 말도 없고, 깊은 대화를 나눌 겨를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냥 마음과 마음이 만난 것이겠지요. 저도 좋았으니까요. 그러다  지금쯤 이런 시간들을 가져야 할 이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울적해 집니다.

세상 소식을 접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도대체, 그렇게 하는데도 그만큼 표를 얻을 수 있다니 신기합니다. 그러니까 국민 우습게 아는 것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세상사에 말없이 통하는 부자의 정을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옆에서 까딱까딱 조는 아들 손을 힘주어 잡습니다. 아들도 싫지 않은지 내 손을 꼬옥 잡아줍니다. 이런 여행, 언제 떠났더라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아, 이런 행복을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느껴야 하는 것인데, 그런 행복을 빼앗아간 이들이 여전히 웃고 살아가는 이 세상입니다. 미안합니다.


태그:#세월호, #1박 2일, #바람의 언덕, #오토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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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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