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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받았습니다. 무려 106통이나 되는 편지입니다. 차례차례 다 읽어봤습니다.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백하게 들어 있습니다. 울타리 너머로만 들을 수 있었던 스님들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빠끔하게 뚫린 구멍을 통해서나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절집 살림이 시시때때로 울리는 풍경소리처럼 담겨 있습니다.

당신이 절집에 살면서 경험한 이야기도 있고, 절집에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당신이 절집에 살면서 들은 이야기도 있고, 다른 스님들 이야기도 언뜻언뜻 들려줍니다. 절집 생활이 어떠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스무고개처럼 걸려있습니다. 막연하게 동경하고 있는 것처럼, 절집에 산다는 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참 많습니다. 뭔가를 일깨워 주는 이야기도 있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반성문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할머니가 화롯불을 도닥거리며 들려주던 이야기만큼이나 정겹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나란히 걸으며 두런두런 주고받는 이야기처럼 살갑습니다.  

본연 스님이 들려주는 출가수행자 이야기 <미타행자의 편지>

<미타행자의 편지>(지은이 본연/담앤북스/2014. 7. 4/1만 3800원)
 <미타행자의 편지>(지은이 본연/담앤북스/2014. 7. 4/1만 3800원)
ⓒ 담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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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지은이 본연/담앤북스)는 제주도 항파두리 근처에 있는 무주선원에서 수행 중인 본연 스님이 띄우는 편지입니다. 편지라기보다는 당신이 살아 가는 이야기를 일기처럼 정리한 담박한 글들입니다. 본연 스님은 청화 큰스님 제자입니다. 

예전에는 스님들이 선방에서 안거할 때 당신이 먹을 쌀을 지고 갔다고 합니다. 선원에 미두米頭라고 쌀을 관리하는 소임도 있었고, 끼니마다 당신이 먹을 만큼 쌀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또 객승이 오면 모두 밥을 한 숟가락씩 덜어서 주었는데, 이것이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유래입니다. -<미타행자의 편지> 10쪽-

십시일반, 참 무심코 사용하던 말입니다. 이처럼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말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를 알려주는 편지도 있습니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을 갖게 된 사연도 들려줍니다. 그렇다고 마냥 재미있고 허허롭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만 있는 건 아닙니다.

언중유골이라고 했습니다. 재미있는 글 중에 가르침이 있습니다. 지혜도 담겼습니다. 따끔한 경책도 들어있고, 반복하고 강조하면서 전하는 부처님 말씀도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몸에 장애가 있는 분도 있고 마음에 장애가 이는 분도 있습니다. 몸이 불편한 육체적 장애자보다 마음이 불편한 정신적 장애자가 더 불행합니다. 정신적 장애자란 다시 말한다면 사고가 경직된 사람을 말합니다. 즉, 한 번 잘못된 고정된 관념은 세월과 환경의 변화에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미타행자의 편지> 82쪽-

옛 어른 스님들께서 말씀하시길, 알고도 수행하지 않으면 "남의 돈만 세는 일이다."고 합니다. 밤새도록 돈을 세어 봐야 내 것이 아니듯이 '수행 없이는 공덕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염불하시면서 무량한 공덕을 몸소 거두시길 바랍니다. -<미타행자의 편지> 222쪽-

읽다보면 어느새 닮아가는 편지

열무김치가 맛날 계절이라서 그런지 읽는 내내 잘 익은 열무김치를 먹는 느낌입니다. 어떤 편지는 아삭거리는 열무줄기 맛이고, 어떤 편지는 새콤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입니다.

열무줄기 같은 편지는 꼭꼭 씹을수록 아삭거리는 식감이 살아나고, 국물 같은 편지는 후루룩 하고 마시듯이 읽으니 더더욱 시원합니다. 선풍기 바람을 쐬며 읽으면 바람소리가 들리고, 부채질을 해가며 읽으면 물결소리가 들릴 것 같은 편지입니다.

본연 스님께서 띄운 편지는 한 권의 책에 활자화 돼 갇혀있지만, 활자화 된 편지에서 읽을 수 있는 건 절집 곳곳에 서려있는 사연이며 출가 수행자들이 살아가는 이런 모습 저런 애환입니다.

사연 속에 가르침이 있고, 모습과 애환에서 인과와 수행을 읽을 수 있습니다. 106통의 편지를 읽고 난 마음은, 시나브로 걸망을 둘러메고 운수행각 중인 구도자의 삶을 닮아가는 한여름 밤의 꿈이랍니다. 마음 정갈히 하고, 두 손을 모으는 것으로 읽은 편지에 답을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미타행자의 편지>(지은이 본연/담앤북스/2014. 7. 4/1만 3800원)



미타행자의 편지 - 본연 스님이 들려주는 인과와 수행이야기

본연 지음, 담앤북스(2014)


태그:#미타행자의 편지, #본연, #담앤북스, #청화스님, #태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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