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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9일)부터 오늘 10일까지 창원에 있는 태봉고등학교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진행 중입니다. 태봉고등학교는 체험 위주의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기숙형 공립대안고등학교입니다. 태봉고는 다른 학교와 달리 'LTI PT 데이(LTI란 "Learning Through Internship의 약자로 인턴십 교육방식 프레젠테이션 수업)가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학생들은 자기 스스로 꿈을 찾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배우는 LTI PT 시간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배우는 LTI PT 시간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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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고의 LTI PT 시간, 경청하는 부모님과 학생들
 태봉고의 LTI PT 시간, 경청하는 부모님과 학생들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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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I활동은 학교 안팎에서 이뤄집니다. 학생들이 원하는 멘토를 직접 찾아가서 배우고, 체험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역사학 교수님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노래에 관심 있는 친구는 지역의 가수들을 만나 직접 노래를 배우기도 합니다.

LTI를 한 학기 동안 수행하면 자신의 경험을 발표하는 PT데이를 시작합니다. PT데이에는 부모님들께서도 오십니다. 교사, 학부모, 학생이 함께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큰 축제의 날인 셈이지요. LTI PT가 꽤 감동적이라는 소문을 들어왔는데, 이번에 기회가 닿아 참관하게 됐습니다.

부모님·선생님·학생 모두 하나되는 수업

행사는 학생 각자가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는 것으로 진행됩니다. 발표가 끝나면 발표자와 청중의 질의응답 시간을 갖습니다. 더불어 '어드바이저'라고 하는 도움교사가 지도 조언이나 추가 질문을 합니다. 다음으로 담임선생님이 말씀을 덧붙이시고, 마지막은 부모님께서 소감을 전하는 순으로 마무리됩니다. 마지막은 부모님께서 장미꽃 한 송이를 발표 학생에게 전해주며 포옹을 하면서 끝납니다. 이 모든 순서는 학생들의 사회로 진행됩니다.

태봉고의 연극반 '끼모아'에서 활동하면서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우는 남수안 학생은 경남 청소년 연극제 출전을 준비하며 휴일마저 학교에서 합숙 했습니다. 수안 양은 그 과정을 발표에 옮겼습니다. 준비과정이 힘들어서 친구들과 불협화음도 생겼지만 끝까지 함께 마무리해 경남 청소년 연극제에서 우수상을 받았다고 기뻐했습니다.

발표 도중 자신이 직접 불렀다던 '레베카'를 라이브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발표 학생과 청중 모두 열정적으로 PT에 참여했습니다. 발표자가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도 함께 안타까워했고, 잘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응원의 손뼉을 치기도 했습니다. 발표의 마지막엔 "엄마 사랑해요"라며 어머니와 와락 포옹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발표 후 선생님, 부모님과 포옹하는 학생들
 발표 후 선생님, 부모님과 포옹하는 학생들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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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박재영 학생의 경우, 부모님께서 아이의 발표를 들으시고 멋진 소감을 전했습니다.

"내 아이가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주니 고맙습니다. 제가 집에서 아이를 키웠다면 이렇게 키울 수 있었을까요? 이렇게 아이의 성장을 도와주시고 함께 해 준 친구들과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아들 고마워."

"대안적 삶이란 도우며 사는 삶이란 걸 배웠어요"

한 학생에게 LTI PT데이에 대해 물었더니 자세히 설명을 해줍니다.

"한 학기 동안 자신이 한 일을 돌아보게 해 주는 특별한 축제에요. 부모님께서도 오셔서 보시기 때문에 준비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신경이 많이 쓰여요. 그리고 이상하게 발표를 하고 나면 부모님 생각이 더 많이 나고, 고맙고 그렇더라고요. 1학년 때에는 재미로 발표했고, 2학년 땐 한 게 많아 알차게 준비했었요. 그런데 이제 3학년이 되니 결과물 보다는 그 과정이 더 기억에 남더라고요."

자기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3학년 이호용 학생이 LTI 발표 중에 말했습니다. "전 태봉고가 싫습니다. 이런 것을 시키기 때문이에요" 성실하지 못했던 지난 LTI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PT데이를 준비하는 시간이 고역이었다는 뜻이었습니다. 더불어 그 말은 이렇게 속살이야기를 하고 있는 자신이 신기하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호용 군의 발표는 계속 됐습니다.

"우리 학교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많이 줍니다.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습니다. 우리를 믿고 스스로 알아서 해보라고 기회를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은 좋은 점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자라온 학생들에게 갑자기 고등학교에서 "자유를 가져봐" 하는 것은 어린 학생들에게 또 다른 혼란을 줄 수도 있습니다"

호용 군이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전 태봉고를 다녔기 때문에 충분한 고민과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진로체험 이동학습 기간에 금산 간디학교에 태영철 선생님을 만나 뵀는데, 그 분께서 대안적인 삶이란 '세상을 도우며 사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그리고 졸업 전에는 반드시 꿈을 찾을 겁니다. 이 모든 것이 태봉고라서 가능한 것 같아요. 우리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발표를 준비하며 한 단계 성장했다는 이호용군과 이인진 선생님
 발표를 준비하며 한 단계 성장했다는 이호용군과 이인진 선생님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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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I PT 담당 교사인 이인진 선생님은 아이들의 PT를 들으며 큰 감동을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을 겉으로만 봐선 전부 모른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가까이서 들여다봐야 아이를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기 입으로 자신의 일을 이야기할 때 '왜 아이의 저런 면을 미리 보지 못했나' 하는 미안함이 들기도 합니다. 교사로서의 반성이지요."

영어는 주 2시간, 아이들 성장 돕는 PT 준비시간은 6시간

이인진 선생님은 말을 덧붙이며 LTI 시간이 아이들에게 주는 삶의 '의욕'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학생들은 맨살을 보여주는 듯한 발표를 준비하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 학교의 경우 영어가 주 2시간인데 LTI시간은 주 6시간입니다. 아주 긴 시간이죠.  이 시간을 견뎌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견뎌냅니다. 고민하고 힘겨워하며 성장하는 것이지요. 우리 아이들이 '이 정도 했으면 됐지, 이 정도 했으면 대학 가겠지' 라는 생각 대신 평생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배워 나가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됐으면 합니다."

PT데이는 학생들이 발표 하고, 친구들과 선생님, 부모님이 함께 경청하는 태봉고만의 축제입니다. 한쪽에선 웃음 소리가, 한쪽에선 감동의 눈물이 함께하는 특별한 교육 활동이 일어납니다. 발표를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친구들의 응원과 부모님들의 격려, 아이들의 성장을 보며 조용히 눈물 닦는 선생님들. 이 모든 장면들을 보며 '정말 이 학교는 특별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태봉고 친구들은 특별히 뛰어난 아이들은 아닙니다. 태봉고의 선생님들이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지요.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태봉고는 서로를 존중하고, 자유를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날이 좋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유와 자치를 보장해주면 학교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태봉고가 이를 이미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의문이 드시는 분들께 태봉고를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에도 포스팅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태봉고, #LTI, #PT데이, #LTI PT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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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보다는 협력, 나보다는 우리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책과 사람을 좋아합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일의 걱정이 아닌 행복한 지금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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