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프랑스 출신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은 고령화 사회의 극단적 갈등이 빚어낸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소설에 따르면 고령화로 인한 여러 사회문제들이 발생하자 젊은이들이 노인 배척운동을 시작하고 그 결과로 노인들이 요양센터에 강제로 끌려가 수감된다.

이곳에서 노인들은 독자적인 단체를 조직하고 저항하지만 정부의 강경한 대응으로 실패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고령화로 인한 사회 갈등이 격리와 학살이라는 비인간적 조치로 이어지는 게 얼핏 지나친 상상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한국사회로서는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황혼의 반란>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 <나무>를 통해 소개된 단편소설이다
▲ 나무 <황혼의 반란>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 <나무>를 통해 소개된 단편소설이다
ⓒ 열린책들

관련사진보기

한국은 고령화사회다. 유엔 기준에 따르면 총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되는데 한국은 지난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하였다. 뿐만 아니다. 수명연장과 저출산 추세로 인해 고령자비율이 꾸준히 증가해 4년 뒤엔 고령사회, 12년 뒤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증가세라면 2100년엔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최근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보고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잘 말해준다.

현재 20,30대의 경우 평생 내야할 세금과 공공 보험료, 연금 납입액이 공공부문으로부터 받게 될 혜택보다 1억원 이상 많다는 것이다. 사회의 어느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과다한 의무을 지는 작금의 구조는 사회갈등을 초래하기 쉽고 이런 갈등은 사회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정부차원의 선제적 대응이 시급한 이유다.

현재 고령화사회에 대비한 정부정책은 크게 고용과 복지의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중 고용은 정년연장과 은퇴 후 재취업 지원 같은 방식을 말하고 복지는 각종 연금과 공공요금 할인 등 직,간접적 혜택을 포함한다. 이러한 제도는 노인인구의 경제적 자활을 돕고 극단적인 사회문제를 방지한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걱정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정부는 지난해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법'(정년연장법)을 개정해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러나 호봉제에 입각한 현행 연봉제 체계 아래서 기업들은 정년연장을 꺼릴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상시적인 구조조정 내지 신규채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재취업도 쉽지 않다. 고령자에게 열려있는 일자리가 제한적이며 고용업체에 대한 지원 역시 미비하기 때문이다. 복지 역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국민연금이나 기초노령연금 등의 공적연금은 물론 이를 대체하기 위해 마련된 퇴직연금 등 각종 사적 연금조차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고 있다. 공적연금ㆍ기업연금ㆍ개인연금 등 노후 소득 보장체계를 갖춘 비율이 14%에 불과하다는 서울대ㆍ메트라이프 공동조사 결과는 사태의 심각성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저출산 역시 복지정책의 발목을 잡는다. 한국사회의 저출산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며 출산을 장려하는 정부정책은 아이 낳기 힘든 사회구조 속에서 실효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가 심화됨에 따라 인구구조가 기형화되고 미래의 재정정책에 부담을 초래하리라는 일각의 우려는 합리적이다.

해법은 고용에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눈앞이고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금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급격한 고령화가 이뤄지고 있음에도 정년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고용불안정성은 심해지며 재취업마저 용이하지 않은 현실은 우리 사회의 고령자를 내모는 것이며 동시에 그로 인한 사회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이다.

정부는 기업과 함께 고령자의 고용안정성을 높이고 재취업을 확대하여 고령자들이 사회 뒤편으로 물러나 부양되어야 할 짐이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그들은 젊은 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도, 경쟁자도 아닌 동반자인 것이다.

<황혼의 반란>에서 노인들의 저항을 주도한 프레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도 모두 노인이 될 게다". 이는 노인문제의 본질을 일깨운다. 정말이지 우리 가운데 누구도 노인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태그:#베르나르 베르베르, #나무, #황혼의 반란, #열린책들, #고령화사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