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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그럼 버려진 철길은? 버려진 철길(폐선 철도)은 자전거 전용도로가 되었다.

경남 진주시 천전동 주약철도 건널목에서 경상대학교까지 2.8km의 경전선 복선전철화로 버려진 옛 철길이 자전거 도로로 재탄생한 것이다. 자전거는 고장 나 탈 수 없어도 튼튼한 두 다리가 있다. 두 다리만 믿고 주약철도 건널목 삼거리에서 출발해 약골-진티골-진치령-경상대 사대부설중고-연암공대-산림과학원 남부연구소-새벼리-한보은빛마을아파트-여싯골을 돌아오는 길을 지난 8일에 떠났다.

옛 진주역은 이미 음식점으로 변했다. 그 아래로 걸으면 천전동 주약철도 건널목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이 천전동과 가호동을 연결하는 최단거리 구간의 시작점이다. 아침저녁 싸늘한 날씨와 상관없이 한낮은 가는 여름의 무더위의 흔적이 남았다. 삼거리 해바라기도 해를 바라보지 않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자전거전용도로 옆에는 보행자 전용도로가 나란히 있다.

다행히 평일 한낮이라 자전거도, 사람도 거의 없다. 불과 몇 년 전 이 길을 따라 마산으로, 서울로 기차를 탔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남다르다. 10여 분 감상에 젖어들 무렵 간판 없는 점방(가게)이 나온다. 점방 안에는 한낮의 무더위를 이겨내려는 할아버지들이 하얀 런닝셔츠 차림으로 이야기 중이다. 점방이 있는 마을은 약골이다. 천전동에 있는 골짜기의 이름이다. 옛날에는 이 골짜기에서 약초를 많이 채취해 채약골이었다가 약골로 변했다고 한다.

약초가 많이 채취되는 채약골 

거미줄을 타고 나팔꽃과 비슷하게 생긴 유홍초가 올라가고 있었다.
 거미줄을 타고 나팔꽃과 비슷하게 생긴 유홍초가 올라가고 있었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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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골을 지나가자 간이 휴게소가 나온다. 휴게소 옆으로 철제 울타리가 나온다. 거미줄을 타고 나팔꽃과 비슷하게 생긴 유홍초가 올라가고 있었다. 저렇게 가는 거미줄을 붙잡고 있는 게 신기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며느리밑씻개’로 잘못 알려진 ‘사광이아재비’
 ‘며느리밑씻개’로 잘못 알려진 ‘사광이아재비’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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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티골로 가는 사이사이로 갈고리와 같은 잔가시를 지니고 기어 올라가는 며느리밑씻개로 잘못 알려진 '사광이아재비'가 보인다. 계명대 생물학과 김종원 교수가 쓴 <한국 식물 생태 보감>에 따르면 오늘날 '며느리밑씻개'로 알려진 풀 이름은 일본말 '의붓자식의 밑씻개(ママコノシリヌグイ)'에서 '의붓자식'만 '며느리'로 바꾸어서 1937년부터 책에 실렸다고 한다.

1921년에 나온 책에는 며느리밑씻개와 비슷한 다른 풀에 '사광이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1937년에 갑작스레 엉뚱한 이름이 실렸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미운 며느리에게 밑씻개로 잔가시가 많은 넓은 풀 잎사귀로 주었다는 '며느리밑씻개'로 둔갑한 '사광이아재비'. 이제 알았으니 제대로 불러줘야겠다.

세모꼴 모양의 넓적한 잎보다 작은 꽃이 둥글게 뭉쳐 핀 모양새가 더 귀엽고 예쁘다. 손톱 크기의 작은 분홍빛깔이 사랑스럽다.

경남 진주 진티골에서 좀 더 올라가자 마치 야외에 에어컨을 켜 놓은 듯 한낮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241m의 진치령터널이다.
 경남 진주 진티골에서 좀 더 올라가자 마치 야외에 에어컨을 켜 놓은 듯 한낮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241m의 진치령터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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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티골에서 좀 더 올라가자 마치 야외에 에어컨을 켜 놓은 듯 한낮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241m의 진치령터널이다.

터널 안 바람이 땀을 훔쳐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터널을 지나자 저만치 경상대학교 사범대 부설중·고등학교가 보인다. 천전동에서 가호동으로 가려면 새벼리로 가야 하는데 최단거리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대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제한속도 20Km라는 표지판이 무색하게 "쌩~"하고 지나간다.

자동차의 방해도 없는 평탄한 길이라 이 길을 따라 진주 시내로, 남강으로 놀러 가기도 그만인 셈이다.

경남 진주 천전동에서 가호동으로 가려면 새벼리로 가야 하는데 최단거리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대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제한속도 20Km라는 표지판이 무색하게 “쌩~”하고 지나간다.
 경남 진주 천전동에서 가호동으로 가려면 새벼리로 가야 하는데 최단거리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대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제한속도 20Km라는 표지판이 무색하게 “쌩~”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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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학교 후문에서 새벼리 쪽으로 길을 나섰다. 대학가라 그런지 싱그러운 청춘들이 수족관의 물고기처럼 오간다. 근데 왼쪽으로 난 길에는 연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걷는다. 날이 더워도 놓을 줄 모르는 연인의 손이 부러워 배낭 속 물을 꺼내 마셨다. 건너편 햄버거 가게 이름이 재밌다. '젠장버거'는 어떤 맛일까.

경남 진주 동부지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석류공원 전망대를 지나면 ‘새벼리’다.
 경남 진주 동부지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석류공원 전망대를 지나면 ‘새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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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공대 입구를 지나 산림과학원 남부연구소 앞 시내버스 정류장 앞 건널목을 건넜다. 조금 더 올라가면 진주 동부지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석류공원 전망대가 나오지만, 전망대에서 새벼리로 걸어 나오는 길은 남강을 바라볼 수 없다. 오직 오른편에 6차선을 달리는 자동차만 길동무라 이곳에서 건너지 않으면 남강을 바라보며 함께할 수 없다.

남부연구소를 지나자 돛배 모양의 그늘막 쉼터가 나온다. 햇살은 그늘막 속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6차선 도로와 인도 사이에는 관상용 나팔꽃 비슷한 짙은 분홍색의 꽃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꽃들의 유혹을 이겨내고 새벼리 아래로 난 강변 산책로를 걸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도도한 나만의 길

경남 진주 새벼리를 확장하면서 남강 옆에 바짝 붙은 높다란 축대벽 사이로 난 산책로는 내밀한 길이다. “나를 건드지마세요”라는 꽃말을 가진 물봉선화가 곳곳에 보이는 이 길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도도한 나만의 길이다.
 경남 진주 새벼리를 확장하면서 남강 옆에 바짝 붙은 높다란 축대벽 사이로 난 산책로는 내밀한 길이다. “나를 건드지마세요”라는 꽃말을 가진 물봉선화가 곳곳에 보이는 이 길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도도한 나만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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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벼리를 확장하면서 남강 옆에 바짝 붙은 높다란 축대벽 사이로 난 산책로는 내밀한 길이다. "나를 건드지마세요"라는 꽃말을 가진 물봉선화가 곳곳에 보이는 이 길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도도한 나만의 길이다. 아늑하고 남강이 함께하는 길은 숲을 이뤄 더위도 들어올 틈이 없다. 진주 살면서도 새벼리 옆으로 난 산책로는 나는 처음 걸었다. 자동차로 새벼리를 지나거나 걸어도 새벼리 위쪽으로만 걸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내밀한 길은 나와 남강만이 아는 내밀한 약속의 장소가 되었다.

경남 진주 새벼리
 경남 진주 새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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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은빛마을아파트를 지나가는 사이로 야싯골이 가좌산 쪽으로 나온다. 야싯골은 아파트 남쪽에 있는 작은 골짝 마을로 옛날에는 이 골짜기에 숲이 짙어 여우가 아주 많이 득실거렸다고 한다. 야싯골 너머로 가좌산이다. 고사리길, 대나무 숲길, 청풍길, 편백 숲길 등 주제가 있는 진주에서 걷고 싶은 길, 가좌산 주위를 두른 셈이다.

먼발치에서 야싯골을 바라보며 다시 자전거와 보행자 전용도로에 이르렀다. 한 바퀴 돌아 출발한 시작점에 이르자 보랏빛 나팔꽃들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듯 나타났다.

2시간 동안 걸었다. 앞만 보고 살기에도 늘 버거운 우리에게 나 자신을 돌아볼 소중한 시간이었다.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마주한 나만의 은신처를 발견한 즐거운 길이었다.

덧붙이는 글 | 경상남도 인터넷신문 <경남이야기>http://news.gsnd.net/



태그:#새벼리, #폐철길, #자전거전용도로, #사광이아재비, #며느리밑씻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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