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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 죽산면에 홀로 사는 노인 A씨의 집에 매일 아침마다 중년 여성 한 명이 우유를 두고 간다. 몰래 두고 가는 것도 아니고 큰 소리로 말까지 건네 온다.

"엄마! 계셔? 나 왔어유. 잘 계셨수? 어디 아픈 데는 없으시고?"

아하, 그럼 A할머니의 딸인가? 아니다. 인사하는 여성은 이순이씨(요구르트 배달업)다. 우유만 주고 가면 될 텐데, 왜 굳이 안부까지 물을까.

순이씨, 매일 두 '엄마'에게 안녕을 묻다

지금은 이순이씨가 '엄마'에게 우유를 전하며 안녕을 묻고 있다. 순이씨도 '엄마'도 이젠 서로 친모녀처럼 살가워졌다.
▲ 우유와 함께 안녕을 지금은 이순이씨가 '엄마'에게 우유를 전하며 안녕을 묻고 있다. 순이씨도 '엄마'도 이젠 서로 친모녀처럼 살가워졌다.
ⓒ 안성동부무한돌봄네트워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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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 A할머니는 이제 순이씨의 목소리에 정이 들었다. A할머니는 싹싹한 순이씨가 딸 같고, 순이씨는 A할머니가 친정 엄마 같다.

11년 동안 요구르트 배달을 해온 순이씨. 그녀는 경차를 끌고 아침마다 죽산 지역을 돌며 요구르트 배달을 한다. 우연한 기회로 만난 두 '엄마'에게 우유도 전하고, 안부도 묻는다. 

"엄마가 자꾸 놀다가라, 들어와서 커피 마시고 가라고 하시면 미안하쥬. 저야 다른 곳에도 배달해야 하니 그럴 수 없자뉴."

짧게나마 '엄마'의 안부를 묻고 돌아설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 순이씨와, 우유를 거저 받는다고 미안해하는 A할머니. 두 사람은 서로 미안한 마음으로 아침마다 인사한다. 벌써 이런 인사를 나눈 지 6개월이 지났다.

"아침에 못 뵈면 오후에라도 보러 가유."

이종욱씨의 말이다. 경기도 안성 삼죽면의 독거 노인 B할아버지 집. 이 집도 아침마다 한 남성이 우유를 두고 간다. 마찬가지로 안부를 묻는다.

"할아버님 계셔유? 할아버님!"

B할아버지는 그 남성이 올 때마다 "왜 이런 걸 가져와. 도로 가져가"라고 응수한다. 그렇게 만나 온지 6개월이 지났다. 그 남성은 이종욱씨(우유배달업)다.

종욱씨는 죽산면과 삼죽면에서 새벽 2시부터 아침 7시까지 매일 우유 배달을 한다. 그는 승합차를 이끌고 우유 배달을 하면서, B할아버지 집에 들러 꼭 안부를 묻는다. 혹 할아버지를 못 만나면 이웃에게 물어보고, 마을 회관에도 들러 물어본다. 할아버지의 안녕을 묻기 위해서다.

종욱씨도 지역에 있는 독거노인 두 명에게 아침마다 우유를 배달하면서 겸사겸사 문안한다. 아침에 못 만나면 오후에라도 B할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는 종욱씨. 그는 "이제 그 어르신에 대한 책임감이 든다"며 웃는다.

우유와 함께 안부를

왼쪽부터 배달봉사자 이순이씨, 이종욱씨이고, 안성동부무한돌봄네트워크팀원 강유미씨와 팀장 이혜주씨다. 이들은 독거노인의 안녕을 묻는 일로 하나가 된 사람들이다. 지난 17일 이들과 함께 신나는 수다가 이루어졌다.
▲ 안녕 묻는 사람들 왼쪽부터 배달봉사자 이순이씨, 이종욱씨이고, 안성동부무한돌봄네트워크팀원 강유미씨와 팀장 이혜주씨다. 이들은 독거노인의 안녕을 묻는 일로 하나가 된 사람들이다. 지난 17일 이들과 함께 신나는 수다가 이루어졌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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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욱씨도 순이씨도 미안한 마음이 항상 든다. 그들은 "우리는 직업상 배달을 하면서 지나가는 길에 독거 노인 집에 우유와 함께 안부를 물을 뿐"이라고 말했다. "우유도 거저 주는 게 아니라 기관에서 지원하는 것"이라며 미안해하는 그들은 "이걸 봉사라고 말하기에는..."이라며 쑥스러워 했다.    

이 외에도 권나미씨와 양성현씨가 이 일을 하고 있다. 이들도 우유배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4명이 일죽면, 죽산면, 삼죽면, 금광면 등 4개 면 단위에서 총 7가정(독거 노인)에 우유와 함께 안부를 배달한다.

이쯤 되면 이들과 독거노인들을 만나게 한 기관이 궁금하다. 어디일까? 바로 안성시 동부 무한돌봄네트워크팀(팀장 이혜주)이다. 이 팀은 올해 초부터 '아이돌(아름다운 이들의 돌봄)'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이혜주 팀장은 "'독거노인 자살'이라는 내용을 신문에서 접하며 어떻게 하면 우리 주위에 있는 독거노인(특히 자살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을 매일 돌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이 같은 프로젝트를 시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가던 길 잠시만 멈춘다면 보일 텐데

아하, 그랬구나. 복지 종사자가 매일 독거노인을 돌아보는 데 한계가 있음을 잘 아는 이 팀만의 아이디어였다. 더군다나 배달하는 길에 매일 5분만 투자해서 독거노인의 안부를 묻게 하다니. 일석이조가 따로 없다.

또 봉사의 명목으로 희생을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다. 우윳값은 기업이나 단체에서 지원해준다. 그러고 보면 한 독거노인을 돌아보기 위해 우유배달 업자, 복지 종사자, 기업 등이 한마음이 된 셈이다.

이들을 만나고 있으니 지난 10월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서 자살한 독거노인 최아무개(68)씨가 가슴에 스친다.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최아무개씨는 "고맙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라. 개의치 말고"라는 글과 함께 얼마의 돈을 남기고 자살했다. 사회학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일러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내일 아침에도 4개의 경차들은 안성시 4개 면의 골목을 누비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며 사랑을 물을 게다. 우리도 그들처럼 가던 길을 잠시만 멈춰 이웃을 돌아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7일 경기도 안성 삼죽면에 있는 한 식당에서 배달봉사자 이종욱씨와 이순이씨, 그리고 동부 무한돌봄 네트워크팀 이혜주 팀장과 함께 진행했다.



태그:#독거노인, #독거노인 자살, #안성 동부무한돌봄네트워크, #무한돌봄,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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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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