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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의 밀당. 옥산댁과 무월댁이 갱엿 뭉텅이를 서로 붙잡고 밀고 당기며 식이고 있다.
 할머니들의 밀당. 옥산댁과 무월댁이 갱엿 뭉텅이를 서로 붙잡고 밀고 당기며 식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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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이다. 그렇다고 그저 밀고 당기기만 하는 게 아니다. 요령이 숨어 있다. 밀 때도, 당길 때도 살짝 안으로 말아줘야 한다. 안으로 공기를 넣어 담아주는 것이다. 그래야 구멍이 만들어진다. 언뜻 보기에 일도 아닌 것 같다. 재미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웬걸. 안으로 공기를 담아주지 못한다. 속에 구멍도 생기지 않는다. 끈적거리는 갱엿을 당기는 것만도 힘에 부친다. 아무나 쉽게 하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나 못해라. 보기엔 쉬워보여도. 그렇게 쉬울 것 같으면 내가 했지라. 이 분들이 계신께 하제. 안 그러면 못해라. 안 계시믄 엿 만들기도 끝인 것 같소."

조진순(61)씨의 말이다. 조씨는 '슬로시티' 담양 창평의 오강리에서 쌀엿을 만들고 있다. 지난달 28일이다. 쌀엿 만들기가 설날은 앞두고 대목을 맞았다.

할머니들의 밀당으로 갱엿이 쌀엿으로 변신하고 있다. 단내를 듬뿍 머금었다.
 할머니들의 밀당으로 갱엿이 쌀엿으로 변신하고 있다. 단내를 듬뿍 머금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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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댁과 무월댁이 엿을 식이고 있다. 그 가운데서 주인장 조진순 씨가 갱엿 뭉텅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옥산댁과 무월댁이 엿을 식이고 있다. 그 가운데서 주인장 조진순 씨가 갱엿 뭉텅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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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의 집에서 '밀당'을 하는 어르신은 옥산댁 기복덕(81) 할머니와 무월댁 송경순(75) 할머니다. 갱엿 한 뭉텅이를 들고 서로 밀고 당기는 일을 '식인다', '새긴다'고 한다. 공기를 담아 늘이면서 엿 속에 구멍을 만드는 과정이다. 엿은 구멍이 생명이다. 속에 구멍이 없으면 맛이 덜 하다. 먹은 뒤에 찌꺼기도 입안에 남는다.

"살림을 시작함서 했제. 우리야 만듦서 시작했고. 다른 사람덜이 '우리 것도 해주쇼' 한께 해주고. 시방인께 안 하제. 옛날에는 너나없이 다 했어. 엿을."

옥산댁 기씨 할머니의 말이다. 시집와서 시작했으니, 엿 만들기 경력이 60년도 넘었다는 얘기다.

단내를 머금은 쌀엿. 갱엿 뭉텅이를 붙잡은 두 할머니가 서로 밀고 당기고 있다.
 단내를 머금은 쌀엿. 갱엿 뭉텅이를 붙잡은 두 할머니가 서로 밀고 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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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월댁과 옥산댁. 창평쌀엿을 식이는 명콤비다.
 무월댁과 옥산댁. 창평쌀엿을 식이는 명콤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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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제. 이 집에서 장사함서 식여달라고 한께 하제. 우리 집에서는 안해. 돈도 벌고 좋긴 헌디. 되야. 힘들어."

무월댁 송씨 할머니의 말이다.

옥산댁과 무월댁은 호흡이 잘 맞는다. 오랜 기간 엿 식이는 일을 같이 해왔다. 이른바 명콤비다. 굳이 말이 필요 없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하는 사이가 됐다. 같이 하는 일도 수월하다. 엿을 식이는 작업이 쉬워 보이는 이유였다.

식인 엿 늘이기. 식이기 작업이 끝난 엿을 제월댁이 쭈욱-쭈욱- 적당한 굵기로 늘이고 있다.
 식인 엿 늘이기. 식이기 작업이 끝난 엿을 제월댁이 쭈욱-쭈욱- 적당한 굵기로 늘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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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 자르기. 다 늘린 엿을 제월댁이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있다.
 엿 자르기. 다 늘린 엿을 제월댁이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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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식인 엿을 적당한 두께로 길게 늘이는 일은 다른 두 할머니의 몫이다. 그냥 잡아서 쭈욱-쭈욱 늘이는 것 같은데, 굵기가 일정하다. 거의 달인 수준이다. 이 엿을 먹기 좋게 적당한 크기로 절단하는 일은 제월댁 이정순(70) 할머니의 일이다. 아무렇게나 툭-툭- 치는 것 같은데, 크기가 고르다.

다 만들어진 엿을 봉지에 담아 포장하는 건 오경아(53)씨가 한다. 오씨는 수원에서 살다가 3년 전 이곳으로 내려온 '수원댁'이다. 창평은 남편의 고향이다.

"신기해요. 엿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가 다. 그런데 힘들어요. 보기와 다르더라구요. 처음에는 저도 쌀엿 만드는 법을 배울 생각이었는데. 포기했어요. 그냥 이렇게 엿 만드는 일을 도와주는 걸로 만족하려구요."

오씨의 말이다. 힘든 것 빼면 쌀엿 만드는 일이 여전히 신기하고 재밌다고.

쌀엿의 재료가 되는 엿기름. 이것을 식혜로 만들고 갱엿으로 달여야 한다.
 쌀엿의 재료가 되는 엿기름. 이것을 식혜로 만들고 갱엿으로 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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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불을 지핀 가마솥. 솥에서 식혜가 갱엿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장작불을 지핀 가마솥. 솥에서 식혜가 갱엿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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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을 총괄하는 건 주인장 조 씨의 몫이다. 그렇다고 뒷짐 지고 하는 총괄감독이 아니다. 엿을 식일 수 있도록 사전 준비도 그이가 해야 한다.

재료를 챙기고, 식혜를 만들고, 이 식혜를 갱엿으로 만드는 일을 다 한다. 식혜를 갱엿으로 만드는 일은 밤새 가마솥에서 이뤄지는 작업이다. 갱엿을 적당한 뭉치로 덜어놓는 것도 주인장이 한다.

뿐만 아니다. 엿을 식일 땐 아랫목에 넣어둔 갱엿 뭉텅이를 하나씩 빼서 엿을 식일 어르신들한테 대줘야 한다. 일손이 빠지는 곳에 손도 대신 넣어줘야 한다. 감독 겸 보조까지 만능인 셈이다.

다 만들어진 쌀엿. 할머니들이 잘 식인 덕분에 엿구멍이 적절히 만들어졌다.
 다 만들어진 쌀엿. 할머니들이 잘 식인 덕분에 엿구멍이 적절히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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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평쌀엿을 만드는 사람들. 왼쪽부터 수원댁과 무월댁, 옥산댁, 그리고 주인장(조진순)과 제월댁이다.
 창평쌀엿을 만드는 사람들. 왼쪽부터 수원댁과 무월댁, 옥산댁, 그리고 주인장(조진순)과 제월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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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씨의 집에서 이날 하루 만들어진 쌀엿이 120근. 1근을 600g으로 계산할 때 70㎏이 넘었다. 여기에는 40㎏들이 쌀 3포대가 들어갔다. 이 집에서만 이번 겨울에 쌀과 조청을 만드는데 쌀 200포대를 쓸 예정이다.

판매는 어렵지 않다. 설 대목을 맞아 직거래로 대부분 나간다. 인터넷 홈페이지와 전화를 통해서다. 값은 쌀엿 ㎏당 2만 원이다. 한 철 장사로 쏠쏠한 소득을 가져다주는 쌀엿이다. '슬로시티'의 품격까지 높여주는 창평쌀엿이다.

주인장 조진순 씨가 다 만들어진 엿을 보자기에 담고 있다. 택배로 보낼 물건들이다.
 주인장 조진순 씨가 다 만들어진 엿을 보자기에 담고 있다. 택배로 보낼 물건들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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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창평쌀엿, #쌀엿, #조진순, #엿식이기,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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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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