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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가끔 작업실 뒤에 있는 우암산 순회도로를 산책하면서 조그만 커피집에 가서 금방 볶은 커피를 사먹을 때가 더러 있다. 그런데 나를 처음 보는 카페 직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내 주문을 받는다. 그리고는 무언가 확인하는 질문을 한다. 그러면 눈치코치로 소통하는 나는 그들의 머리통만 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묵무무답이다(참고로 나는 청각장애인이다). 나중에 딸들에게 물어보면 대개 "시럽 넣어드려요?"라던가 "여기서 드실 건가요? 가져가실 건가요?"를 물을 때가 많다고 한다.

나는 질문 자체를 모르니 단지 "아메리카노 주세요"라던가 그 날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 "카푸치노 주세요"하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그러면 그들은 짧은 말만 하는 내 억양이나 조그만 얼굴이 풍기는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내가 화교나 필리핀계 외국인 또는 재일교포 쪽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때문에 갑자기 영어나 일본어로 바꾸어 질문하기도 한다. 

가끔은 바람이 샌다, 그러면서 마음 풍선도 샌다

가끔은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때도 있다. 어제는 점심시간에 맛있는 상추쌈과 불고기가 나왔다. 고기보다 오랜만에 만나는 상추쌈이 반가웠다. 마침 식당 조리사가 따로 상추를 한 바구니 가져와서 마음껏 먹으라고 해서 계속 먹었다. 그렇게 먹다 보니 갑자기 사람들이 고개를 두리번 거린다. 여기저기 살피며 말한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난 얼른 눈치를 채고 왼쪽 귀에 있는 보청기의 음향을 꺼버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린 것을 모기 소리같은 정체불명의 소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상추쌈을 먹느라 열심히 입을 크게 벌리고 씹다 보니 귀 속이 헐거워졌고 보청기가 느슨해져 바람이 들어간 것이다.

가끔 이렇게 보청기에 바람이 샌다. 그럴때 내 마음 풍선에서도 바람이 샌다. 이럴 때 좋은 처방책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일상의 순간들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손가락만한 보청기... 거품 빼면 얼마일까?

가끔 보청기 관리 때문에 애를 먹는다. 세상의 모든 일용품이 그렇듯이 보청기도 소모품이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한 개에 350만 원과 400만 원 정도 하는 디지털 보청기를 사용했다. 지금은 60만 원 정도의 아날로그 보청기를 하고 있다.

경증청각장애인이나 중이염이나 사고 등으로 중도청각장애인이 된 사람들은 디지털 보청기를 애호한다. 원래의 청음력에 근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같은 중증이고 조기청각장애인은 보청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청음력 자체가 나아지는게 없어 그게 크게 의미가 없다. 단지 소리의 존재 유무만 감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날로그를 하니 바람소리가 확실히 디지털보다 쉽게 새나는 것 같다. 지난 5년 사이 나는 디지털 보청기를 새로 한 지 얼마 안 되어 퇴근하고 너무 고단해서 옷을 입은 채로 소파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잠시 깨었는데 내 옆에 있던 퍼그종인 쭈니가 안 보였다. 찾아보니 쭈니는 내 보청기의 실리콘과 부품을 한창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이미 디지털 칩은 망가진 후였다. 보청기가게에 사정 이야기를 하고 다시 350만 원짜리 보청기를 할부로 구해서 딱 3년간 사용을 하고 습기가 차고 소모되어 다시 새로 했다. 어떤 보청기가게는 한 달에 2~3개만 팔아도 월세를 내고 직원 월급을 주고도 월급쟁이보다 낫다고 한다. 대체 손가락만한 보청기. 거품을 빼면 얼마가 원가일까? 참 궁금하다,

여전히 매일 안경을 끼고 벗는 것처럼 잠 잘 때와 목욕할 때, 운동할 때, 배터리를 갈 때 보청기를 벗어야 한다. 이전에는 남 몰래 구석에서 했지만 이제 그러지 않는다. 식당에 가거나 차를 마시거나 근사한 카페나 차에서도 배터리를 갈아야 한다면 나는 언제든지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러 사람을 만나는데 사람들마다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배터리는 얼마만에 한 번씩 교환하세요?"
" 5~7일에 한 번이요."
"가격은요? 아! 부담이 되지는 않은 수준이군요."
"보청기가 실지로 듣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나요?"
"듣는 데는 크게 도움이 안 되고 소리의 존재 파악은 되기 때문에 암흑은 벗어날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은 내 보청기의 배터리를 자기가 직접 갈아 끼우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만난 어떤 분들은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면서 내가 보청기 약을 교체하니, 눈마주치기를 피하고 마치 못 볼 물건을 본 것처럼  불편한 내색을 보였다. 그러자 나도 덩달아 불편해지고 씁쓸해져 속으로 되뇌인다.

"뭐야? 자기들도 안경을 닦을 때는 누가 보든 말든 닦으면서..."

제발 제발 평범히 봐주세요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며 신기한 물건을 보듯이 유난을 떠는 사람도 그다지 편하지 않고, 애써 무관심한 척하는 사람도 그다지 편하지 않다. 중증장애인들은 장애편의기구를 사용할 때 그냥 보통 사람들이 안경을 끼고 벗거나, 윗옷을 벗고 입는 것처럼 그냥 생활의 편의를 위한 생활용품처럼 평범한 시선으로 보아주기를 희망한다. 정확히 말하면 장애편의기구는 단순한 기구나 생활용품이 아닌 장애인의 신체 일부이다.

왜냐하면 장애인이라고 해서 특별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조금 불편하고 다른 상황에서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 똑같은 주어진 인생을 살아내기 때문이다. 더불어 장애편의용품이나 도구는 그 인생을 인생답게 살아가기 위한 보조가 되는 또 하나의 귀이고 팔이고 다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태그:#청각장애인식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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