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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신의 노래는 한 곡 한 곡 다 좋다. 시(詩)구절 같은 노랫말, 최고의 가창력과 감정 실린 목소리가 잘 어우러진 그의 노래는 참 좋다. 그 중에서도 나는 'gift'를 가장 좋아한다. 이 노래는 우울할 때 들으면 위로가 되고 희망을 주고, 기쁠 때는 행복이 배가된다. 게다가 'gift'는 꼭 내 이야기 같다.

오늘의 하늘은 내게 누군가가 두고 간
선물 같아 어제보다 더 따뜻해
너도 나와 같다면 지금 이 노래를 들어봐
눈을 감아 또다시 눈을 뜰 때면
It's gonna be alright
 - 'gift' 노랫말 중 일부

이 노래를 알기 전에도 쨍하게 푸른 하늘을 보면 늘 그가 생각났다. 물감으로 색칠한 것처럼 맑은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마음에서 행복이 넘쳐나면 그에게 문자를 보내곤 했다.

'하늘이 예쁘다.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커피 마시고 있어. 그대가 나에게 보낸 준 선물 같아. 고마워.' 닭살 돋는 나의 문자에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은 날이면 그가 답장을 보내 올 때도 있었다.

그는 20년 전 나와 결혼한 내 남편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남매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얼굴만 닮은 회사동료였다. 우리가 일한 연구소는 외진 곳은 아니지만 자가용이 없으면 불편한 곳에 있었다. 면허증도 자가용도 없던 신입시절, 배차 간격이 1시간인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것보다 걷는 게 나아서 웬만하면 걸어 다녔다. 우리는 걷다가 친해졌고 사랑에 빠졌고 결혼했다.

내 남편은 멋진 사람이다. 80년대 영화 <고스트바스터즈> 나오는 눈사람 귀신을 닮았다는 놀림을 종종 받았던 나는 키 크고 날씬한 사람을 선호한다. 그런 나에게 나보다 무려 20cm나 크지만, 몸무게는 얼마 차이 나지 않는 남편은 굉장히 멋져보였다. 지금 냉정하게 생각하면 마른 북어처럼 비쩍 말라서 볼품없는 건데 말이다.

남편은 똑똑하다. 속된 말로 하면 '뇌가 섹시한 사람'이다. 내가 살면서 유일하게 고배를 마신 학교 출신이라고, 내가 몇 날 며칠 끙끙대며 해결하지 못했던 프로그램 실수를 단숨에 풀었다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깊고 논리적이다. 40대 이공계 남자답지 않게 책을 많이 읽고 문제 해결력이 뛰어나다. 덕분에 내가 시작해 놓고 마무리 하지 않은 일의 처리는 대부분 남편 몫이다.

나는 전업주부라고 내입으로 말하기 민망할 만큼 살림이 엉망이다. 요리는 재미없고 청소는 귀찮다. 재테크에 밝아서 재산을 불릴 깜냥도 없다.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고 맞벌이를 그만두었지만 아이들 돌보는 것도 대충이다. 주부로서의 재능이 전혀 없음을 알아채고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였지만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우울하게 지내던 나에게 <오마이뉴스>에 글쓰기를 남편이 권했다. '너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니까 한번 해봐. 작가도 아닌데 못하면 어때? 즐거우면 되지.' 글쓰기는 한참 후에 시작되었지만 내 우울함을 덜어주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쨍하게 푸른 하늘을 보고 있거나 박효신의 'gift'를 들으면 늘 남편이 생각나다. 남편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다.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행복하다.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 '하늘이 파랗다. 행복하다. 당신은 하늘도 볼 여유도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미안해'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면 남편은 꼭 답장을 한다. '내가 회사에서 걱정 없이 일에 열중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당신 덕분이야. 미안한 마음 갖지 말고 즐기고 누려. 당신은 그래도 돼'

내일의 하늘은 오늘보다 더 좋은 선물
내 두 손에 사랑은 가득 할꺼야
너도 나와 같다면 지금 이  노래를 불러봐
눈을 감아 또다시 눈을 뜰 때면
It's gonna be alright.
 - 'gift' 노랫말 중 일부

영화 <기술자들>을 보고 온 딸아이가 배우 김우빈이 멋지다고 호들갑이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흥분한 딸아이를 지켜보던 남편이 나에게 슬며시 부탁한다. 아빠도 20년 전에는 멋진 사람이었다는 말을 해달라고….

"너희 아빠도 젊었을 때 완전 멋졌어. 박효신보다 100배는 멋졌다고."
"왜 박효신이야? 김우빈보다 멋졌다고 말하라니까."
"내 눈에는 박효신이 훨씬 멋진데. 김우빈은 나는 별로야."
"아 그래? 기준이 높아진 거구나."
"그렇지. 당신이 최고야."

난데없는 아빠엄마의 만담에 당황하는 딸아이를 두고 우리는 웃음이 터졌다. 남편은 살이 조금 붙었고 머리카락은 듬성듬성해지고 백발이 되어간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성격은 가끔 얄미울 때도 있다. 이제는 전혀 늘지 않는 내 요리 실력을 타박하기도 한다. 그래도 남편은 여전히 멋지다. 이렇게 멋진 남편과 함께 나란히 바라보게 될 내일이 기대된다. 지금까지 어렵고 힘든 일, 즐거운 일, 슬픈 일 등등 많은 일을 함께 겪고 이겨낸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거다. 나도 남편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기사 체택 후 제 블로그에 공유합니다.



태그:#올드걸의 음악다방, #박효신 GI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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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주부입니다. 교육, 문화, 책이야기에 관심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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