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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
ⓒ 반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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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킬미힐미>에 몇 달 동안 푹 빠져 살았다. 해리성인격장애를 연기한 배우와 '로맨틱코메디'라는 장르를 이용해서 아동학대의 문제점을 알리고자 한 작가의 힘이 대단했던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괴물이라고 말하던 주인공이 내 모습과 닮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행복한 결말이 뻔하지만 그가 잘 극복하기를 응원하면서 끝까지 본방사수를 했다.

<킬미힐미>의 주인공 차도현은 폭력을 목격할 때, 미치도록 화가 날 때, 슬플 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마주할 때, 무서운 기억이 생각날 때, 그럴 때면 다른 인격으로 바뀐다.

일이 해결되거나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본래 인격으로 돌아온다. 그는 7개의 인격을 갖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다. 내 속에는 내가 아닌 것 같은 내가 많다. 다른 인격이 저질러 놓은 일들을 그는 기억하지 못하고 나는 기억을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에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 '가시나무' 노랫말 중 일부

드라마를 보는 내내 '시인과 촌장'이 부른 '가시나무'가 생각났다. 이 노래는 가수가 부르는 것보다 친구가 흥얼거리는 것을 더 많이 들었다. 처음 친구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을 땐 이별 노래인 줄 알았다.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이라서 같이 있으면 당신이 힘들어. 그러니까 우리 헤어지자'라는 신파 같았다. 하지만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누구인지를 스스로에게 자꾸만 묻게 되었다. 이 노래는 흔해빠진 사랑노래가 아니다.

노랫말처럼 내 속에도 내가 너무도 많았다. 마음과 머리가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나의 모습들이 그때그때 많이 달랐다. 당황스러웠고 마음이 부대꼈다. 학교와 사회 사이에서 겪는 대학생의 성장통이려니… 어른이 되면 나아질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며 내면이 더 헝클어졌다. 아이가 중학교 때 일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가는 영어 학원을 한 달 동안 아이가 빼먹었다. 그 지경이 되도록 눈치 채지 못한 내가 한심했다. 수강생들의 출결과 학습관리를 철저하게 한다고 홍보하던 학원도 얄미웠다. 학원으로 달려갔다. 교육비는 내고 학생이 한 번도 오지 않는데 부모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을 수 있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학원에 항의를 하였다. 학원에서는 나에게 계속 문자를 보내고 연락을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더 화가 났다. 학원에 주의를 주고 당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세상에나. 학원 전화번호가 스팸번호로 등록되어 있었다. 아이가 한 짓이었다.

그 날, 나는 내가 그럴 줄 몰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나쁜 짓을 한 아이만 보였다. 큰 소리로 아이를 혼냈다. 악에 바쳐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중심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에서 말이다. 천둥이 치고 벼락 떨어지는 소리와 흡사했던 그 소리를 내가 질렀다고? 내가 그랬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아이를 키우며 이전의 나와 너무 다른 내 모습이 자꾸만 드러난다. 폭력의 '폭'자도 가까이하지 않던 내가 훈육을 이유로 아이를 때리기도 한다. '공부보다는 인성이 중요하지'라고 하면서 공부 못하는 아이를 은근히 구박한다. '인생에서 대학은 중요하지 않다'고 늘 말해놓고는 아이가 대학 진학을 거부하자 몇날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 '가시나무' 노랫말 중 일부

아이와 부딪치는 순간이 지나가고 제정신이 들면 두렵다. 그때 그 괴물이 나라고? 노랫말이 아프다.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이 가시에 찔려 날아가다니… 어린 새가 꼭 우리 아이 같다. 마음과 머리가 충돌하면서 만들어지는 나의 여러 가지 모습들. 내 스스로는 당황스럽고 부대껴도 남에게 피해를 안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에게 피해를 안 줬다고? 착각이었겠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 없다는 노랫말이 귀에 맴돈다. 나도 <킬미힐미>의 차도현처럼 여러 인격들이 잘 융합되어 보다 멋진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멋진 사람이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부모로서는 일관된 모습을 보이고 싶다. 내속에 있는 각양각색의 엄마 모습은 별로다. 아이는 상처받고 나는 속상하다.

덧붙이는 글 | 개인불로그에 공유합니다



태그:#올드걸의 음악다방, #시인과촌장, #가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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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주부입니다. 교육, 문화, 책이야기에 관심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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