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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이다. 문학적 재능이 전혀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소설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필요한 자질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전제 조건이다. 연료가 전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자동차도 달릴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썼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재능 없는 사람들이 소설에 매달리는 것은 음치가 가수 꿈을 꾸는 것만큼 보람 없고 안타까운 일이다.

소설을 포함한 문학은 무엇인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표현하는 나만의 문장, 표현, 구성을 부려야 한다. 이 비반복성과 비복제성이 문학의 심장이다.

이 심장을 움켜쥐지 못해 수없이 많은 문학청년들이 꿈을 포기했다. 등단한 작가들조차 작품을 쓸 때마다 자신의 재능에 대한 회의와 절망에 휩싸여 통음의 밤을 보내기 일쑤다. 재능이 없다면 문학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글쓰기, 기본적으로 재능이 있어야"... 뭐라고요?

'무라카미씨의 거처' 누리집
 '무라카미씨의 거처' 누리집
ⓒ 신초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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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쿠라이(23)라는 일본의 대학원생이 웹사이트 <무라카미씨의 거처>에 질문을 올렸다. <무라카미씨의 거처>는 하루키의 작품을 펴낸 출판사 '신초샤'에서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한시적으로 운영한 누리집이다(바로가기).

"작가님 안녕하세요. 늘 재미있게 당신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대학원생으로 리포트든 발표 원고든, 교수에게 보내는 메일, 편지든 어쨌든 많은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글 쓰는 게 너무 형편없습니다. 하지만 쓰지 않고서는 졸업도 할 수 없어 곤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낑낑대며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글을 좀 더 쉽게 쓰게 될 방법이 없을까요. 부디 작가님의 '문장독본'(文章讀本)에 해당하는 생각을 꼭 듣고 싶습니다."

하루키는 이렇게 답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여자를 말로 꼬시는 것과 똑같아서 어느 정도까지는 연습으로 잘 하게 되지만 기본적으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야 합니다. 뭐 어쨌든 열심히 하세요."

하루키의 대답은 '어느 정도까지는 연습으로 잘 하게 되지만'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야 합니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대답이 언론에 공개되자 하루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많은 독자들은 "뭐 어쨌든 열심히 하세요"라는 하루키의 마무리를 '재능이 없다면 열심히 노력해도 힘들 겁니다'라는 냉소로 읽었다.

<무라카미씨의 거처>는 지난 1월 31일까지 독자의 질문을 받아 4월 30일까지 하루키의 답변을 올리고 이벤트를 종료했다. 아쉽게도 하루키에게 질문할 기회는 사라지고 말았다. 만일 기회가 주어졌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하루키씨, 착각한 거 아닌가요? 당신이 쓰는 소설과 사쿠라이가 쓰려고 하는 리포트, 발표 원고, 메일, 편지를 똑같은 글쓰기로 보지 않았느냐는 거죠. 글쓰기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에요. 당신에겐 예술이 필요하지만 사쿠라이에겐 지금 기술이 필요해요."

○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백승권 기자는 백승권의 실용글쓰기연구소(바로가기 클릭) 대표이자 동양미래대학 글쓰기 겸임교수입니다. 쓴 책으로는 <글쓰기가 처음입니다>(메디치)가 있습니다.



태그:#백승권, #글쓰기,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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