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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대학원생 사쿠라이는 '무라카미씨의 거처'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글 쓰는 게 너무 형편없습니다. 하지만 쓰지 않고서는 졸업도 할 수 없어 곤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낑낑대며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글을 좀 더 쉽게 쓰게 될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루키는 이 요청에 담긴 무게를 알아채지 못했다. 하루키가 젊었을 때부터 산 위에서만 살아 산 아래 동네 사정을 모르는 게 아닐까, 의심마저 든다.

산 아래 동네 풍경은 이렇다. 대입 수시에 제출할 자기소개서를 몇 달째 만지작거리는 수험생, 취업을 위해 이렇게 저렇게 자기소개서를 쓰고 고치는 취업준비생, 몇 년째 논문이 통과되지 않아 학위를 받지 못한 대학원생, 영업결과를 보고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보고서를 작성하는 직장인, 절실한 도움이 필요해 이메일이나 편지를 써야 하는 중소사업자, 모레 예정된 시장님의 연설을 위해 밤잠도 자지 못하고 연설문을 쓰는 공무원, 진행 중인 캠페인과 사회사업을 언론에 알리기 위해 보도자료를 쓰고 있는 시민단체 간사.

산 아래 동네 사람들은 인생의 결정적 기회를 만날 때마다 글을 쓰며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좋은 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해야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상사에게 깨지지 않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거절당하지 않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컴퓨터 앞에서 한 줄 쓰고 한 줄 지우고, 한줄 쓰고 한숨 내쉬는 작업을 밤새 되풀이하면서 묻고 또 묻는다.

안타까운 것은 사쿠라이와 같은 우리나라 '미생'의 질문이 올바른 해답을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왜일까? 이들은 하루키와 똑같은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써야 할 리포트나 메일을 하루키의 소설과 엇비슷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사쿠라이가 하루키에게 질문을 한 것도 얼마쯤 그런 오해에 바탕을 뒀을 것이다. 하루키가 소설을 잘 쓰니까 자신의 리포트나 메일에 대해서도 훌륭한 조언을 할 수 있으리라는.

삶과 밀접한 글쓰기 교육은... 볼 수가 없다

우리 교육체계에서 자신의 삶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생활글, 자기소개서, 리포트, 보고서, 이메일 같은 글쓰기는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우리 교육체계에서 자신의 삶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생활글, 자기소개서, 리포트, 보고서, 이메일 같은 글쓰기는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 fil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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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집단적 오해를 만든 데엔 우리나라 국어 교육의 탓이 크다(아마 일본도 그런 모양이다). 우리가 배웠던 국어 교과서를 기억해보자. 예문의 대부분은 시, 소설, 수필, 희곡 등 문학작품이다. 완성도 높은 우리말이 구현된 문학작품을 통해 우리말의 바탕과 쓰임을 알게 하겠다는 교과서 집필진의 취지는 십분 공감한다.

문제는 이것만 가르쳤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삶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생활글, 자기소개서, 리포트, 보고서, 보도자료, 이메일 같은 글쓰기는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초·중·고등학교는 그렇다 쳐도 대학까지 손을 놓고 있다. 삶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글쓰기를 가르치는 대학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희귀하다. 이런 환경에서 문학과 자신에게 필요한 글쓰기를 동일시하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더 큰 문제는 문학작품을 배우면서 그것을 쓴 작가의 이야기가 따라붙는 데 있다. 국어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을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고 김소월, 백석, 이상, 김유정의 천재성에 대해 목청을 높인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암암리에 이런 논리에 젖어든다. 글이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다. 노력한다고 좋아지지 않는다. 하루키가 말했던 그대로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자신이 문학을 할 것도 아니면서 문학과 자신에게 필요한 글쓰기를 동일시하게 된다.

이 착각과 오해에서 벗어나는 것이 글쓰기의 출발선이다. 미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문학글쓰기가 아니라 실용글쓰기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글쓰기, 세상에 살아남기 위한 글쓰기, 독한 말로 '생존 글쓰기'.

생존글쓰기의 길엔 다행스럽게도 분명한 답이 있다.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기 때문이다. 생존글쓰기의 원리와 방법은 수학이나 과학 공식처럼 명료하고 운전 요령처럼 명백하다. 그것을 제대로 익히고 꾸준히 노력하면 자동차 운전처럼 익숙하고 능숙해진다. 운전 기술을 익히는 데 재능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생존글쓰기를 배우고 익히는 데 오직 필요한 것은 시간과 노력뿐이다.

시간과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재능 탓으로 돌려버린다면 재능 없이 문학의 꿈을 꾸는 것처럼 보람 없고 안타까운 일이다. 사쿠라이처럼 '운전'을 배우기 위해 '카레이서'에게 조언을 구하는 따위의 일도 보람 없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조언은 글쓰기를 더욱 막막하게 만들 뿐이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백승권 기자는 백승권의 실용글쓰기연구소(바로가기 클릭) 대표이자 동양미래대학 글쓰기 겸임교수입니다. 쓴 책으로는 <글쓰기가 처음입니다>(메디치)가 있습니다.



태그:#백승권,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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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을 위한 보고서 보도자료 작성 교육, 일반인을 위한 자기소개서와 자전에세이 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는 실용글쓰기 전문강사입니다. 동양미래대 겸임교수,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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