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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잡다한 것들을 다 배워서 도대체 어디다 쓰려고 하냐고들 많이 물어보지만 꼭 어디에 쓰려고 배우는 것은 아니다. 직접 배우는 것을 통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나에게는 '배움' 자체가 결국 또 하나의 배움의 방식이기도 한 것이다.

칠레 산티아고 '모네다 문화센터'에서는 6월부터 사개월간 "칠레의 위대한 장인들" 이라는 타이틀로 전통 수공예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와 더불어 여러 프로그램들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 중 내 눈에 띈 것은 주말마다 마련된 다양한 칠레 수공예 무료 체험 교실이었다. 매달 서너 개의 교실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9월 한달 간 세 개의 강좌에 참여해 보았다.

칠레는 북쪽에서 남쪽까지 전혀 다른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고. 여전히 인디오 전통들이 많이 남아있는 땅이라 각각의 땅에서 채취된 자연의 재료가 바로 수공예의 재료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말꼬리 털의 마술, 클린(Crin)

클린은 칠레 친구가 여행 선물을 고르는 데 따라갔다가 소개해 주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처음에 작품을 보았을 때는 다양한 색 실로 작업을 한 것 인 줄 알았는데 말꼬리 털을 염색하거나 그 자연색을 이용하여 엮어 액세서리나 장식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칠레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수공예이기도 하다.

30년 넘게 작업을 해오셨다는 일다 디아즈 강사 선생님이 간단하게 클린의 역사를 설명해 주는 것으로 강좌가 시작되었다. 거의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클린은 칠레의 남쪽 라리라는 지역에서 발달한 공예이다. 처음에는 오래된 미루나무의 뿌리가 서로 엉기어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에 흥미를 느낀 그 지역 두 젊은이가 이를 이용하여 작업을 하기 시작했고, 이후 재료가 영구성이 부족하고, 지역의 미루나무들이 사라지면서 말꼬리로 대신하여 그 기술이 이어왔다고 한다.

공예시간에는 지름 4cm정도의 원형을 만들어 보았다. 미리 선생님이 만들어 온 틀에 색색이 엮기만 하는 건데도 말 꼬리털이 워낙 가늘고 잘 보이지가 않아 3시간 동안 시력과의 전쟁을 벌인 끝에야 겨우 작은 원 하나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한번 어떻게 작업하는 지를 경험해 보면 수공예품을 살 때 쉽게 '비싸다'는 소리를 하지 못할 거예요. 보통 작품 하나를 만드는데 15일 정도씩 걸리기도 해요. 눈에 보이는 작품 뿐 아니라 그 안의 시간까지를 봐 줘야 해요."

거의 눈으로 보지 않고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작업하는 선생님의 손을 보고 있으니 그 시간의 힘을 볼 수 있었다.

말꼬리털이 원이 되는 과정
▲ 클린 말꼬리털이 원이 되는 과정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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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섬의 자원, 조개로 만드는 액세서리

칠레의 대표 이미지인 모아이 상이 있는 이스트 섬의 전통공예는 섬의 풍부한 조개를 이용한 액세서리와 장식 공예였다.

강좌시간에 조금 일찍 도착하니 이스트 섬에서 5시간도 넘는 비행기를 타고 오신 공예가 마리아 선생님이 우레탄 줄로 강좌를 위한 팔찌를 만들 기본 틀을 만들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손톱만한 조개부터 쌀 톨 만한 작은 조개까지 정갈하게 마련된 조개들이 작은 그릇에 담겨 있었다.

공예를 위해 정갈하게 준비된 이스트 섬의 조개들.
 공예를 위해 정갈하게 준비된 이스트 섬의 조개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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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섬에 사는 여성들에게 매일 바닷가에 나가서 조개를 채취하고 이를 잘 말려 재료로 준비하는 과정은 일상이라고 한다.

"파도가 밀려가기 전에 조개를 빨리 주워야 해. 매일매일 바다에 나가서 조개를 모으고 일일이 조개를 말리고 분류하고 구멍을 뚫어 준비하는 게 단순해 보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야."

미리 도착한 나에게 팔찌를 만들 수 있는 틀을 주시고 원하는 조개를 선택하라고 하신다.

"줄에 조개를 자유롭게 엮으면 돼. 간단하지? 얼마나 예쁜 팔찌가 될 지는 네 예술적 감각에 달려있지만…."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기분 좋게 웃으시며 재료를 건네신다.

이날 강좌에는 유난히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다들 작은 조개 구멍을 찾느라 애를 먹으셨다. 예술적 감각이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이스트 섬의 바다이야기를 담은 조개들을 엮인, 그것으로 충분히 예쁜 팔찌 하나가 생겼다.

선생님의 마무리 작업을 거쳐 이스트 섬 조개 팔찌하나가 생겼다.
 선생님의 마무리 작업을 거쳐 이스트 섬 조개 팔찌하나가 생겼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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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를 넘어선 사회운동의 상징으로.., 알피예라(Arpillera)

얼핏 퀼트와도 비슷해 보이는 알피예라는 남미지역 전반적으로 보편화 되어있는 공예이다. 기본 천에 다른 조각 천 들을 덧대어 수를 놓는 방식의 공예인데 특히 칠레의 경우 이 공예는 정치적인 역사가 담겨있다.

칠레의 민속음악가 비올레타 파라(1917-1966)로부터 그 역사는 시작된다. 그녀가 간염으로 오랫동안 병원에 있을 때 "이 작업은 나에게 그림으로 그리는 노래다"라며 알피예라를 작업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녀의 작품에 그녀가 담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나갔는데 그 안에는 여러 상징적인 정치적 이념과 상징들이 담기면서 칠레의 알피예라는 공예를 넘어 이념의 상징을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특히 군사 독재시설, 천과 천 사이에 메시지를 넣어 외부에 칠레의 현 상황을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강좌시간에는 간단한 풍경작업을 해보았다. 모두 여성이 참여한 강좌에는 이미 대부분의사람들에게 익숙한 작업이라 금방금방 작업을 하는데 나는 중학교 가사시간에 아마도 배웠을 매듭들이 하나도 기억에 안 나서 처음부터 다 배워 하려니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작업을 하며 칠레의 사람들처럼 언젠가 한국에서 친구들과 모여 우리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큰 작품 하나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알피예라는 보통 풍경과 이야기를 담는다.
 알피예라는 보통 풍경과 이야기를 담는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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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마술과 시간을 회복하는 것

모든 수공예들이 그렇지만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마지막에 배운 알피예라의 경우 결국 다 못 끝내서 집에 와서 이틀을 짬짬이 작업을 해 겨우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빨리빨리가 익숙한 현대사회에서 하루 종일 바느질을 하거나, 눈에 보일까 말까한 말꼬리 털을 엮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손이 만들어내는 무엇인가의 가치와 그 시간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사실 하루 세시간으로 완벽하게 수 십 년 그 작업을 해온 장인들의 기술을 배울 수는 없었고 살짝 엿보기를 해 보았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가 이미 가진 도구인 두 손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창조물들을 경험하는 것이 신비로웠다. 조금 느린 시간으로 그 신비를 회복하는 것은 아직 늦지 않은 일일 것이다.

우리의 손이 가장 훌륭한 도구임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손이 가장 훌륭한 도구임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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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칠레, #수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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