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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노인요양원의 책임자가 "약을 좀 세게 먹여!"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요양원에 모신 어느 노인이 온종일 문을 뒤흔들고 고함도 지르고 하니까 요양보호사 선생님들도 딸리는 일손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보호자인 가족한테 전화했습니다. 그랬더니 노인의 아들이 "어쨌든 집으로는 못 모시니 알아서 책임지고 잘 해주세요"라고 답변한 이후입니다.

치매 노인 돌봄, 약 좀 세게 먹이면 되는 문제인가

노인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건망증이 좀 있는 정도였고 엉뚱한 소리를 해서 가족들을 웃기거나 당신이 웃음거리가 되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상태가 급격히 악화한 것은 이번 추석이었다는군요.

추석 때 집에서 노인을 데리러 오자 옷 보따리를 바리바리 다 싸가지고 돌아가셨는데 추석 바로 다음 날 가족들이 노인을 모시고 다시 요양원으로 왔다고 합니다. 당시 노인은 미친 듯이 울부짖고 저항을 했다고 합니다.

자식들이 이 분을 추석 다음 날 요양원으로 데리고 온 것은 추석 때 집에서 가스레인지를 잘못 만져서 하마터면 큰불이 날 뻔해서라고 합니다. 감옥 같던 요양원에서 해방(?)되어 집으로 가나 했는데 하루 만에 다시 요양원으로 가게 되자 이 노인은 반 미친듯이 행동한 것입니다. 여기에 자기를 내다 버리고 갔다고 하면서.

아들의 부탁대로 '책임지고 알아서 잘' 할 수 있는 게 요양원에서는 치매약 처방뿐입니다. 엑셀론이나 라자다인, 네멘다라는 치매약은 활동성을 약화하는 안정제일 뿐입니다. 약 좀 세게 먹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요.

제가 작년 봄에 서울의 어느 구청 치매 지원센터에 강의를 갔었는데 대상이 치매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때가 4월이었는데 미리 그쪽 실무자와 의논을 했습니다. 치매 부모를 직접 집에서 모시고 사시는 분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모임이라 특별히 저 나름대로 강의 준비를 열심히 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구청 치매 지원센터에서는 이 가족들을 대상으로 영화도 보여주고 개별상담도 진행하는데 그달에는 <똥꽃> 저자초청 강의를 마련한 것이라 책도 미리 읽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구청 지하에 있는 강의실에 가서 놀란 점이 있었습니다. 한 여성은 중학생쯤 되는 어린 자녀를 데리고 왔고 한 여성은 휠체어에 어머니를 모시고 왔습니다. 치매 부모를 나들이의 동반자로 생각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자식을 치매 교육 자리에 데리고 온다는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아쉬운 것은 해당 기관이었습니다. 치매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인데도 치매 부모를 모시고 오는 참가자를 위한 치매 어르신 임시 돌봄 대책이 없었던 것입니다.

'효도휴직'도 있으면 어떨까? '육아휴직'처럼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온 그 참가자는 강의 들으랴 어머니 돌보랴 여간 분주하지가 않았습니다. 치매 가족을 위한 행사인데 치매 부모를 모시고 올 수도 있다는 예상을 하지 못한 것이지요. 치매 부모를 모시는 분이 마음 편하게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기관이 먼저 나서서 주요 행사 때는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간호사 선생님을 배치해서 모시고 온 부모를 잠시 돌봐주는 관행이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제가 연 2회째 정기총회 때 특강을 나갔던 어느 광역단체의 '여성재단'이 있습니다. 작년에는 변산의 대명콘도에서 총회가 열렸습니다. 그전 해에 이어 두 번째 강의를 가는 단체라 실무자와 편해졌습니다. 실무자가 먼저 물었습니다. 올해도 어머니를 모시고 오느냐고.

저는 어디를 가건 웬만하면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는 것을 그분이 알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어머니와 같이 간다고 했더니 값비싼 콘도 큰 방을 하나 따로 잡아 주셨습니다. 바닷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었고 그 덕에 기억이 깜깜한 우리 어머니가 창가로 보이는 큰 배를 보고서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옛날 옛적 왜정 시절에 관부연락선 타고 일본 가셨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기분이 좋았다는 얘기가 됩니다. 관부연락선이란 1900년대 초부터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여객선입니다.

기분이 아주 좋아진 어머니를 두고 마음 놓고 강의장에 내려갔습니다. 그 지역의 여성단체 간부 중심으로 200여 분이 참석했는데 여성인권과 부모 모심이 주제였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객실로 왔더니 어머니가 배변한 상태로 누워 있었습니다. 기저귀를 바로 갈아 드리지 못했으니 어머니의 아랫도리뿐 아니라 기분까지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기분을 안정시키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뒤풀이 시간에 그 여성재단 간부들께 얘기했습니다. 일반 단체들이 애를 봐 주는 보육교사 배치하듯 '여성재단'의 행사에는 요양전문 인력을 배치하면 어떻겠냐고. 아주 반색을 하더군요. 좋은 아이디어라면서 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어디에서건 시작하고 자리를 잡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의 어느 구청 치매 관리센터에서 놀란 것 하나가 또 있습니다. 남자들은 단 한 명도 없고 죄다 여성들이라는 것입니다. 낮 모임에 여성들만 온다는 것은 새삼스럽지는 않을 수도 있으나 저는 거듭 놀랍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놀랄 일이 분명합니다.

2011년에 <치매 관리법>이 제정되고 나서 작년부터 전국의 시도 자치단체별로 '광역 치매 센터'가 생겼습니다. 경기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치매 광역센터에 강의를 나갔었습니다. 역시 남성들은 없었습니다.

남자들의 효심이 적다거나 남성들의 집안일에 대한 책임의식이 낮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사회적 소산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근로기준법에 있고 육아휴직은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효도휴직' 또는 '효도휴가'는 없을까요. 효도휴직이나 효도휴가의 요건을 정하고 해당하는 직장인들에게 휴가를 준다면 제가 갔던 행사장에 남성들도 꽤 등장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뿐만 아니라 늙으신 부모들의 바깥 나들이도 늘어나겠지요.

서울에 '돌봄 종사자 지원센터', 안산에는 '노인요양 협동조합'

돌봄노동자 협동조합 강의 중
▲ 돌봄노동자 협동조합 강의 중 돌봄노동자 협동조합 강의 중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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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에 아주 특별한 곳에 갔었습니다. 정식 명칭이 '서울시 어르신 돌봄 종사자 종합지원센터'였습니다. 치매 어르신을 잘 모시려면 이른바 '돌봄 노동자'들을 잘 지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서울시가 전국 어디에도 없는 돌봄 노동자를 위한 센터를 만들었나 봅니다. 이곳은 광역 치매 센터와는 다른 곳입니다.

돌봄 노동자들은 이른바 감정노동자로도 불립니다. 육체와 정신의 노동뿐 아니라 감정까지도 노동에 포함해야 하는 직종입니다. 늘 생글생글 웃고 상냥한 말투와 단정한 행동거지를 보여야 하는 고충이 아주 큽니다. 그들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센터가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니 제가 갔던 곳이 특별한 곳이라는 것은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더 특별한 것은 강의 주제가 <돌봄과 돌봄 노동자 협동조합>이라는 것입니다. 그 기관에서는 어르신 돌봄 노동자인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등이 힘을 합쳐 협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조합활동을 했던 저로서는 협동조합이야말로 노인 문제의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너무도 관료화되고 도식화된 직영 노인요양시설이나 위탁 노인시설. 너무나 영리화된 민간 노인요양시설은 멀쩡한 노인도 흐물흐물 절인 파김치로 만들든가 미치광이로 바꾸어 놓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인요양원 다음 단계는 노인병원이고 그다음은 장례식장이 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공공연한 상업적 거래가 그들 사이에 오가는 현실이며 감독기관은 수사관처럼 비리를 뒤지기도 합니다. 시설의 운영자나 종사자들 역시 고된 직무에 시달립니다.

제가 올 1~2월호 <녹색평론>에 장문의 글을 실었습니다. <노인요양 협동조합>에 대한 글입니다. 이 글이 매개되어 이곳에 강의를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한국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 연합회'가 일찍 뜻을 두고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은 이전에 '의료생협'이라고 불리던 단체입니다. 얼마 전에 '안산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꿈꾸는 집 요양원>이라는 이름의 노인요양시설을 협동조합으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조합 이사장과 요양원 원장님과 오래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 자리에 연합회 이사장님도 같이 갔었는데 노인 문제에 대한 고심과 노력이 남달랐습니다. 이 요양원은 조합원(부모님)이 입소합니다. 노인이 상품이 되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현실 속에서 이곳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곳으로 보였습니다. '노인이 상품처럼 시장에서 거래'된다는 말이 좀 험악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기도 합니다.

'자식 협동 모심의 집'

안산 의료생협에서
▲ 안산의료생협 안산 의료생협에서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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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북 광역 치매 센터 협의회 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포럼 때 노인요양 협동조합에 대해서 정식으로 제안했던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한울 연대에서 설립한 경주의 '방정환 한울 어린이집'이 1주년을 맞이했는데 이참에 우리나라의 보육정책을 살펴보면서 노인정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반복되는 얘기입니다만 협동조합입니다. 치매 부모를 가정에서 감당하기에는 무리입니다. 온 삶을 바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에 부산대 임재택 선생의 한국 생태 유아교육학회가 주관하는 월례강좌에 갔다가 직접 의논을 한 적도 있습니다. 생태 유아공동체처럼 노인 요양공동체를 꾸리는 일에 관해서 얘기하면서 '생태 노인모심학'이 성립되어야 할 필요성을 말했습니다.

<영유아보호법> 10조에는 어린이집의 종류가 7개 항에 걸쳐 나열되어 있습니다. 국·공립 어린이집에서부터 가정, 직장, 민간 어린이집이 있고 6항이 바로 '부모협동 어린이집'입니다. 부모 협동 어린이집은 여러 형태가 있으나 공통점은 부모들이 조합원이 되어 협동조합을 꾸렸다는 것입니다. 공동육아 운동에서 시작하여 발전해 간 것입니다.

사설 영리 목적의 어린이집에 보내느니 부모와의 접촉과 정서적 교감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은 결과입니다. 지역사회의 뜻 있는 제3자가 조합원으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육아는 사회의 몫도 크니까 당연합니다. 보육시설의 낮은 보육의 질과 단순반복 획일적인 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시도입니다.

노인 요양시설에도 대입시켜 볼 수 있습니다. 노인 요양(의료)시설이나 요양보호사 규정은 <노인장기 요양보험법>과 <노인 복지법>에 근거합니다. 이 법에 적시된 시설들의 종류는 몇 가지로 제한되어 있는데 '부모 협동 어린이집'에 빗대어 '자식 협동 모심의 집'이라는 조항을 넣을 수 있다고 봅니다.

'자식 협동 모심의 집'은 공동육아와 같은 개념으로 공동양로 또는 공동 부모 모심입니다. 자식들이 조합원이 되어 더는 부모님을 노인시장에 내어놓지 않겠다는 다짐 속에서 노인의 지혜와 경륜을 눈여겨 배우는 과정이 모시는 과정과 동시에 일어나는 장소가 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꼭 어렵지도 않습니다. 우선, 법제화에 앞서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만나고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는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부모를 시설로 유배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협동해서 부모와 같이 사는 것입니다.

천도교에 연로하신 어른들이 많습니다. 노인요양원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 하는 동덕님들도 있습니다. '방정환 한울 어린이집'도 한울 연대 일개 단체가 만들었습니다. 마음만 모은다면 반포의 도리를 천도교가 되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동학천도교 기관지 <신인간>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인요양, #부모, #노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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