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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이 180만 원만 되도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그마저 깎는다고 한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내 월급은 180만 원이 안 돼 당장 깎이지 않으니
 월급이 180만 원만 되도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그마저 깎는다고 한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내 월급은 180만 원이 안 돼 당장 깎이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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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이 180만 원만 되도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그마저 깎는다고 한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내 월급은 180만 원이 안 돼 당장 깎이지 않으니… 내 나이 58세, 양주시 시설관리공단에서 체육시설 관리를 하고 있다. 이전에는 용역업체에서 도로청소를 했고, 양주시가 업무를 공단으로 위탁한 후 해고위기를 겪었으나, 노동조합 투쟁으로 고용을 보장받아 시설관리공단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나와 같은 이들이 제법 많다. 우리는 고용보장 투쟁이 힘겨웠지만 그래도 공단으로 옮겼는데 근무조건이 나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개꿈이었다. 공단 소속 무기계약 비정규직의 임금은 최저임금을 조금 넘었다. 겨우 이전 업체수준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한 푼도 올려주지 않은 지 벌써 3년이다. 그 말처럼 우리는 수걱수걱 살았다.

그러니 만만한가 보다. 공단은 정부시책이라며 정년을 보장할 테니 임금을 깎겠다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고령자가 다수인 이곳은 이미 정년이 60세다. 그런데 새삼 정년 60세를 보장할 테니 월급을 깎는다? 말인가 방구인가.

공단은 정부방침에 따라 최저임금 150% 수준(월 180만 원)만 받으면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며, 제도 도입을 위해 취업규칙도 변경하겠다고 한다. 월급이 180만 원이 안 되는 나는 오히려 서글프다. 부끄럽지만 임금을 삭감해 청년들을 채용할 정도로 월급을 받아보면 소원이 없겠다.

내 나이는 임금피크제 대상인데 현재 월급이 조금이라도 올랐다간 거꾸로 임금피크제로 최저임금 선으로 추락할 처지니, 앞으로 월급 올려달란 소린 꺼내지도 못하게 생겼다. 이게 무슨 노동개혁인지 모르겠다.

나이든 노동자 임금 깎은 돈으로 청년들 고용할까?

정부는 임금피크제로 나이든 노동자 임금을 삭감해 청년을 신규채용을 하겠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선뜻 신뢰할 수 없다. 내가 잇몸이 뭉그러지도록 일해 가며 배운 게 하나 있다. 노동자는 밥을 굶고 일하든, 생활고를 비관해 죽든 회사는 오직 이윤만을 추구한다는 거다.

내 반평생 노동에서 예외는 없었다. 심지어 일하다 죽어도 제대로 된 보상은커녕 사건을 축소하거나 숨기기에 급급한데, 나이든 노동자 임금 깎은 돈으로 청년들을 고용할까? 행여 청년을 고용해도 기존 직군과 달리 별도 직군으로 관리한다니, 청년들에게 돌아갈 일자리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안 봐도 뻔하다.

노동개혁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길게 어려운 말로 설명하지만 내 귀엔 단순하게 들린다. 사용자가 맘대로 하게끔 내버려두겠다는 거 아닌가? 지금도 맘대로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더 맘대로" 하겠다는 말 아닌가?

임금피크제와 청년고용이라는 덫을 놓아 나이든 노동자와 젊은 노동자들끼리 싸우게 만들고, 종국에는 해고도 쉽게 하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도 쉽게 해서 회사 눈치만 보는 노예노동을 만들겠다는 소리 아닌가 말이다.

상상도 못할 대기업의 사내보유자금은 털끝도 건들지 않고, 왜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뒤집어씌우는가. 그런 일을 우리 공단과 같이 공익성을 추구하는 공공기관이 앞장서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겨우 월급 180만 원, 졸라맬 허리띠도 없는 노동자들에게 이렇게까지 하면 결국엔 터지게 마련이다. 나 같은 늙은이는 어떻게든 견디고 살아갈지 모른다. 그러나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진 못할망정, 노동자로 살아가야할 우리 자식들에게 더 혹독한 세상을 물려줘야 한다니 미안하고 분통이 터진다.

제발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나는 40여 년 반평생을 넘게 일했다. 쥐꼬리 임금을 받아가며 오늘도 하루를 살아낸다. 내 월급으론 성에 차게 담배 피우는 것도 사치지만, 속상한 요즘은 참고 참던 담배 한 갑을 샀다. 한 개비 입에 물고 생각해 본다. 노동개혁? 그걸 한국노총이 합의를 하고 언론은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연일 떠든다.

일반해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완화, 임금체계 개편, 비정규직 기간연장과 파견규제 완화, 특별연장노동 허용… 용어부터가 낯설고 어렵다. 좀 쉽게 알려주면 뭔가 들통이라도 나는 걸까? 일반해고? 처음엔 몰랐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분통이 터진다. 말을 이리 꼬든 저리 꼬든 해고를 쉽게 한다는 뜻 아닌가. 지금도 노조 없는 곳에서는 여차하면 불리한 취업규칙을 들먹거리는데, 이젠 노동자 동의 없이도 불리한 변경이 쉽게 가능하다니 노동자 신세가 말이 아니다.

권리 없는 노동으로 밥벌이 해본 이들은 안다. 해고를 법으로 엄격하게 제한해도 회사가 맘만 먹으면 해고는 일도 아니다. 그래서 안 잘리려고 부당한 일도 씹어 삼키고, 과중한 일도 수걱수걱 해내며 퇴근길 소주 한 잔 목구멍에 털어넘기고 삭히는 게 노동자다.

내 주변엔 부당하게 해고돼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한 이들이 제법 있다. 노조라도 있으면 도움을 받지만, 대부분은 홀로 대처한다. 판결까지는 수개월이 걸린다. 버텨낼 재간이 없다. 한 번 이겨도 사용자가 불복해서 민사까지 가면, 기약 없이 피를 말린다.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대출까지 있으면 앞날이 노랗다.

쉬운 해고제를 도입하고 취업규칙도 노동자 동의 없이 쉽게 변경하도록 만들어 주면 장담하건데 노동자들 노예 된다. 여차하면 회사는 눈에 핏발 세워가며 꼬투리 잡아 절차 밟을 거고, 이 늪에서 벗어날 노동자들은 없다고 보면 된다. 이미 늙어버린 나는 그렇다 쳐도 새파란 청춘들, 이들은 어이 할꼬… 아까운 담배를 비벼 끄며 생각한다.

"제발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그러다 단단히 체한다."


태그:#임금피크제, #노사정합의, #노동개혁,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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