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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세계일보>는 2014년 12월 28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의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이 달린 문건(사진 위)과 정 씨가 청와대 비서관 등을 자주 만났다고 알려진 서울 강남구의 한 음식점 사진을 함께 보도했다.(사진 아래) <<세계일보 제공>>
 <세계일보>는 2014년 12월 28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의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이 달린 문건(사진 위)과 정 씨가 청와대 비서관 등을 자주 만났다고 알려진 서울 강남구의 한 음식점 사진을 함께 보도했다.(사진 아래) <<세계일보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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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11월 28일, <세계일보>는 '청와대 내부문건'을 토대로 박근혜 정부 '그림자 실세'로 알려진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항간에 '설'로만 나돌던 내용이 청와대 내부문건에 언급됐다는 점에서 큰 충격이었다.

이에 청와대는 "시중에 떠도는 근거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에 불과하다"(민경욱 대변인)라거나 "전부가 허위라고 확신했다"(김기춘 비서실장)라며 관련 의혹을 단호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크게 달랐다. <오마이뉴스>가 76쪽에 이르는 '조응천-박관천 1심 판결문'(10월 15일자)을 검토한 결과,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 제28형사부)는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담겨 있는 청와대 문건을 "첩보에 기초해서 확인하고 조사한 내용을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의 보고문건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최소한 "찌라시에 불과하다"는 청와대의 해명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는 '보고문건'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청와대가 국민과 언론에 거짓말을 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또한 당시 민경욱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김기춘 비서실장이 구두보고받았다"라고 계속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과 달랐다. 1심 재판부는 "문건을 민정수석비서관과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보고했다"라고 적시했다. '구두보고'가 아니라 '문건을 통한 대면보고'였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판단들은 1심 재판부가 채택하거나 조사한 증거들에 의한 것이어서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은 어떻게 작성·관리되나

'비선 실세' 의혹의 당사자인 정윤회 씨가 2014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이른바 '십상시'로 거론된 청와대 비서진과의 비밀회동이 있었는지, 비선을 통해 국정에 개입했는지 등을 조사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비선 실세' 의혹의 당사자인 정윤회 씨가 2014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이른바 '십상시'로 거론된 청와대 비서진과의 비밀회동이 있었는지, 비선을 통해 국정에 개입했는지 등을 조사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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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청와대와 새누리당 등 여권을 뒤흔들었던 문건의 공식 명칭은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아래 '정윤회 문건')이다. 이는 '정윤회 감찰보고서' 혹은 '국정개입 의혹 문건'으로 불렸는데 지난 2014년 1월 6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됐다.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실 비서관과 행정관으로 각각 근무했던 조응천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이 외부로 유출했다는 '17건의 문건' 가운데 하나였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청와대 공무원 감찰과 비위공직자 감찰, 인사검증,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관리 등을 맡고 있다. 그 가운데 대통령 친인척 관리는 원래 대통령 비서실에 설치되는 특별감찰반의 업무였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부부의 감찰 업무에 한해서는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맡았다. 이는 박지만 회장의 요청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정윤회 문건 작성에 관여한 인사는 조응천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 2013년 2월 청와대에 들어왔다. 조 비서관은 대구지검·수원지검 공안부장과 법무부장관 정책보좌관, 국가정보원장 특별보좌관을 지낸 공안통이고, 박 경정은 수사통이면서도 정보수집과 분석에 탁월한 정보통이었다.

공직기강비서관실 소속 행정관들은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해 전자문서 형태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행정관들은 이렇게 작성된 보고서를 행정전산망에 등록하지 않고 개인용 컴퓨터에 저장·관리했다. 

"전자결재시스템을 통하여 전자결재 절차를 거치거나 종이문서로 출력한 후 수기결재를 받는 등 결재절차는 밟지 않은 채 단순 보고용 문건으로 처리하였다."(1심 판결문, 29쪽)

청와대는 "구두보고" 주장...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기소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첫 재판(공판준비기일)인 1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원으로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기소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첫 재판(공판준비기일)인 1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원으로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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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었던 박관천 경정도 이처럼 개인용 컴퓨터에서 보고서를 작성한 뒤 전자결재나 수기결재 절차를 거치지 않고 종이문서 형태로 보고했다. 특히 박 경정은 보고서를 작성하면 '3부'를 종이문서로 출력해 조 비서관에게 전달했다. 그렇다면 종이문서로 출력한 '3부'는 누구에게 전달됐을까?  

"조응천은 위 3부의 보고서 중 1부는 자신이 갖고, 나머지 2부를 이용하여 민정수석비서관 및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순차 보고를 마쳤다. 위 2부의 보고서는 통상 보고를 마친 후 민정수석비서관 및 대통령비서실장이 교부받아 이를 보관하였다."(1심 판결문, 29쪽-30쪽)

1심 재판부가 증거와 진술 등을 확인한 바에 따르면, 외부로 유출했다는 '17건의 문건' 가운데 2건을 제외한 15건의 문건이 이런 보고과정을 거쳤다. 그 15건의 문건에 정윤회 문건이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결국 박 경정은 지난 2014년 1월 6일 정윤회 문건을 작성한 뒤 3부를 출력해 조 비서관에게 전달했고, 조 비서관은 그 가운데 2부를 각각 홍경식 민정수석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했다.

이는 그동안 청와대가 해명해온 내용과 완전히 배치된다. 민경욱 대변인은 지난 2014년 11월 28일 정윤회 문건이 공개되자 "그런 내용이 풍문으로 돈다는 구두보고였다"라며 "공식문서를 통한 공식보고는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같은 해 12월 10일 브리핑에서도 "보고서가 올라간 것이 아니고 구두보고했다"라고 거듭 주장했다. 문건을 통한 공식보고가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첩보내용을 설명하는 구두보고였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윤회 문건은 공식 보고문건으로 작성돼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에게 순차로 보고됐다"라는 법원의 판단이 증거와 진술 등을 종합한 결과라는 점에서 "구두보고였다"라는 당시 청와대의 해명은 거짓이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김기춘 실장, 아무런 조치 없이 "비선실세는 없다" 단정

대통령령인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따르면,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비서실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하거나(제3조) '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소속 고위공직자, 공공기관·단체의 장과 임원, 대통령 친족이나 대통령과 특수관계에 있는 자 등을 감찰'할 수 있다(제7조). 특히 특별감찰반을 설치해 비리첩보를 수집하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감찰 업무를 수행한다.

"별지 범죄일람표(1) 기재 각 문건(17건의 문건-기자주)는 위와 같은 대통령 비서실의 특별감찰 직무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적법한 감찰과정에서 작성된 것이거나 감찰결과 및 필요한 조치를 기재한 것이므로,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중략) 특별감찰활동이 특별감찰반이 아닌 공직기강비서관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1심 판결문, 32쪽-33쪽)

정윤회 문건를 포함한 17건의 유출문건들이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활동으로 작성된 "공식 보고문건"이라는 판단이다. 그런 점에서 정윤회 문건은 "시중의 근거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에 불과하다"라며 그냥 지나칠 문건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김기춘 비서실장은 지난 1월 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비서실장인 제가 볼 때 전부가 허위라고 확신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조치한 사항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 문건 내용을 진실로 보면 심각하겠지만, 제가 왜 그것을 허위라고 확신했느냐 하면 2004년 정윤회씨가 대통령의 곁을 떠났고, 제가 국회에 있을 때부터 부속실 비서관들(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과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을 가리키는 듯-기자주)이 대통령을 모신 것을 잘 아는데 그 사람들(정윤회쪽)과 관계없고, 연락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통상 보고절차가 끝나면 '조치사항'을 하달받거나 별다른 지시가 없을 경우 보고서에 기재된 '조치건의사항'을 실행한다. 하지만 김기춘 실장은 사실일 경우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치명적일 수 있는 '국정개입 의혹'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정윤회씨와 '십상시'(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핵심 측근들을 가리키는 용어) 모임이 열린 음식점을 탐문조사하라는 등의 기본적인 지시조차 내리지 않았다. 문건에 등장하는 당사자들에게 단순확인하는 과정만 거쳤다. 그렇게 부실하게 조치해놓고(사실은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았다) 김 실장은 국회에서 "비선실세는 없다"라고 단정했다.   

재판부 "비서실 차원의 감찰자료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 규명을 위해 1월 9일 오전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최근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에 대해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자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 규명을 위해 1월 9일 오전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최근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에 대해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자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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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재판부는 정윤회 문건에 기재된 내용이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도 정윤회 문건이 '공식 보고문건'이고, 홍경식 민정수석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됐음을 다시 확인했다.

"(정윤회 문건은) 대통령 비서실 또는 공직기강비서관실에 수집된 첩보를 기초로 하여,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인 박관천이 공직기강비서관인 조응천의 지시에 따라 위 첩보에 관하여 나름대로 확인, 조사한 내용을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의 보고문건으로 작성한 것이고, 조응천은 위 문건을 민정수석비서관 및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보고하기도 하였다."(1심 판결문, 46쪽)

정윤회 문건은 '첩보에 기초해서 확인과 조사 과정을 거쳐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로 작성된 보고문건'이라는 결론이다. 검찰조차도 "정윤회 문건은 김기춘 실장에게까지 보고된 정식 동향자료"라고 밝힐 정도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이 폭로될 당시 일관되게 "찌라시에 불과"하거나 "전부가 허위"여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윤회 문건에 "문건 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상세한 기재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이러한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할 수도 있겠다. "특별한 조치"를 취할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을 예상이라도 한 듯 이렇게 쐐기를 박았다.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사퇴설 등 위 문건 내용과 일부 관련된 기사가 보도되거나 소문이 불거지기도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비서실이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 같은 당시 정황에다 위 문건의 작성 및 보고 경위, 문건에 기재된 사안의 중대성 등을 보태어 보면, 위 문건은 향후 공직기강비서관실, 나아가 대통령비서실 차원의 감찰자료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1심 판결문, 46쪽)

특히 "정윤회 문건은 대통령비서실 차원의 감찰자료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었다"라고 기술한 대목이 꽤 의미심장하다. 1심 재판부가 판단하건대 정윤회 문건에 나온 내용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아니라 대통령비서실 차원에서 감찰해야 할 정도로 '중요하고 심각하다'는 것이어서 그렇다.   

1심 판결문은 청와대와 검찰의 완패 입증

정윤회 문건에는 정씨가 십상시 멤버들과 만나 ▲ 청와대 내부사정이나 현 정부 인사 동향 등을 보고받았고 ▲ 2014년 초중순께 김기춘 비서실장을 그만두게 할 목적으로 비서실장 교체설을 유포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었다. 실제로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4년 1월부터 여의도 정가 등에서는 김 실장 사퇴설이 지속적으로 나돌았다. 심지어 김 실장이 박 대통령에게 "물러나겠다"라고 사퇴의사를 밝혔다는 좀 더 구체적인 얘기까지 나왔다.

조 비서관도 공판 과정에서 "비서실장 교체설이 시중에 나돌자 (김기춘 실장이) 이를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그 과정에서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 첩보를 입수돼 문건을 작성한 뒤 김 실장에게 보고했다"라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김기춘 실장 등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을 "찌라시 수준"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특별한 조치"를 통해 사실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도 사실상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이 공개되자 "찌라시 수준"이라고 발뺌했다. 그렇게 대응하다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조 비서관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호응해 검찰은 이 고발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배당했다.

아직 1심이긴 하지만 판결문은 청와대와 검찰의 완패를 입증한다. 이는 정윤회 문건을 "찌라시 수준"으로 무시하며 '비선 실세 의혹'을 덮어버린 결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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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정윤회, #김기춘, #조응천, #박관천, #공직기강비서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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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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