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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의 타계를 보도하는 독일 일간지 <빌트> 갈무리.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의 타계를 보도하는 독일 일간지 <빌트> 갈무리.
ⓒ 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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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서독)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가 타계했다.

독일 언론에 따르면 10일(현지 시각) 슈미트 전 총리의 주치의 하이너 그레텐은 성명을 통해 "슈미트 전 총리가 함부르크 자택에서 9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냉전 시대 독일의 경제적 번영을 이끌며 통일 기반을 마련하고, 유럽 통합 시스템까지 구축한 슈미트 전 총리는 전후 독일 역사상 가장 존경과 사랑을 받는 위대한 '사회 민주주의자'로서 현대사에 한 획을 그었다.

독일 사민당(SPD)에서 정계에 입문한 슈미트 전 총리는 빌리 브란트 내각에서 국방장관과 재무장관을 역임하며 패전으로 침체된 독일 경제를 다시 부흥으로 이끌며 '라인강의 기적'에 이바지했다.

1974년 브란트 총리가 보좌관의 간첩 행위 파동으로 물러나자 슈미트는 의회 표결을 통해 총리로 선출됐다. 당시 브란트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임에 제1차 석유파동까지 겹치며 독일이 정치·경제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슈미트 전 총리의 지도력은 더욱 빛났다.

슈미트 전 총리는 동유럽 공산권과의 관계를 중시한 브란트 전 총리의 동방정책을 계승하면서도 미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했고, 석유파동까지 극복하며 가파른 경제성장으로 현재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독일의 사회 시스템을 만든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1977년 한스-마르틴 슐라이어 독일산업연맹(BDI) 회장 등 주요 기업인들이 탑승한 항공기가 적군파(RAF)에 피랍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슈미트 전 총리는 적군파 요원을 풀어주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과감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구소련의 중거리 핵미사일의 배치에 대한 유럽의 공동 대응을 이끌며 지지층의 격렬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미사일을 서독에 배치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슈미트 전 총리 타계에 유럽 '애도 물결'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회민주주의 정책으로 독일을 이끈 슈미트 전 총리는 1982년 사회복지 재정 삭감을 둘러싼 갈등으로 자유민주당(FDP)과의 연정이 붕괴되자 보수파의 헬무트 콜 총리에게 정권을 넘겨줬다.

8년간의 재임을 마친 슈미트 전 총리는 주간지 발행인으로 변신했다. 언론인으로서 활발하고 거침없는 저술과 기고를 통해 퇴임 후에도 독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고, 독일 정계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슈미트 전 총리의 타계가 발표되자 독일을 넘어 유럽 전체가 추모 분위기에 휩싸였다. 집권 기민당(CDU)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총회에 앞서 의원들과 함께 묵념을 진행했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사민당 당수는 추모 성명을 통해 "슈미트 전 총리는 진정 위대한 애국자, 사회민주주의자, 유럽인"이라며 "그가 남긴 최대의 유산은 바로 유럽"이라고 강조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슈미트 전 총리의 타계를 듣고 깊은 슬픔에 빠졌다"라며 "그는 유럽이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려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해줬다"라고 애도했다.


태그:#헬무트 슈미트, #독일, #사회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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