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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의 모험> 표지
 <문구의 모험> 표지
ⓒ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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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ike boring things' 블로그 운영자이자 '런던 문구 클럽' 창설자인 작가 제임스 워드는 책상 위 문구들의 파란만장한 연대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그는 소박하고 겸손한 도구이자 그 안에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를 담고 있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독자들에게 잊고 있었던 그들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볼펜, 스테이플러, 클립, 형광펜 등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된 친숙한 사물들을 탐구하며 그 안의 흥미진진한 역사와 드라마를 발굴해내고 있다. 우연히 발명된 '쓸모없는 풀'이 책상 위에 있던 노란색 메모지와 만나 지금의 포스트잇이 되었고, 낙담한 디자이너가 펜 몸통의 모형을 뭉개버린 덕분에 납작한 형광펜 디자인이 완성됐다.

하루에 연필 일곱 자루 정도는 해치워야 그 날의 소임을 다했다고 말했던 헤밍웨이를 포함하여, 많은 작가들에게 문구는 평범한 소모품이 아니라 창작의 연료이자 작품의 일부가 되어왔다. 이 모든 것들은 어느 순간부터 평범한 우리들의 일상 속으로도 스며들어와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으로 우리 삶을 변화시켜 왔다. 이제는 포스트잇, 클립, 스테이플러가 없는 세상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세상은 변화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모든 것들이 디지털화 되고 있다. 이제는 종이 책장을 넘기는 대신에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밀고, 붓을 드는 대신에 스마트펜으로 웹툰을 그린다. 이처럼 디지털 문구들이 오래된 문구들을 대체해 나가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저자는 문구가 종말을 맞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으로 내다 본다.

전구의 발명 이후에도 양초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둠을 밝히는 양초의 본래의 기능에 '로맨틱'한 물건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더했기 때문이다. 그는 문구에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본다. 디지털 기기들의 파상공세 속에서도 만년필의 매출이 떨어지기는커녕 안정된 판매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이제 문구를 사용한다는 행위는 전에 없던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하는 나만의 필체와 정성은 키보드가 아닌 만년필로 더 잘 표현될 테니까.

책상 위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나뒹굴던 볼펜, 포스트잇, 클립, 스테이플러 그리고 샤프까지. 이 모든 문구류들이 처음에는 존재하지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들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다. 포스트잇을 처음 개발했을 때, 그 필요를 인지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무료로 포스트잇을 배포했던 마케팅 전략은 금세 사람들을 포스트잇의 죽마고우로 만들었다.

이 물건으로 당신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 것이며,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가 성공적으로 사람들에게 닿았을 때, 새로운 발명품은 비로소 사람들 곁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 마치 오늘날 없어서는 안 될 스마트폰의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옆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오래된 문구들이 주는 이 교훈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가치 있는 메시지가 아닐까. 당연한 것들의 당연하지 않았던 이야기, <문구의 모험>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문구의 모험 -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제임스 워드 지음, 김병화 옮김, 어크로스(2015)


태그:#문구, #제임스 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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