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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영희, 서울KYC 평화길라잡이 8기이다. 서울KYC(한국청년연합)는 시민단체이고 우리 평화길라잡이는 서대문 형무소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자원활동 안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까지 소개를 하면 자연스럽게 평화길라잡이는 학교 때 운동권이었고 정치적 성향이 농후하여 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의식이 깨인 사람들이라는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물론 그런 분들도 계시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다. 그리고 내 경우는 좀 달랐다.

평화길라잡이 실내교육 퇴근하고, 강의를 듣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새록 새록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 평화길라잡이 실내교육 퇴근하고, 강의를 듣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새록 새록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 서울K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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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한국 근현대사에 눈을 뜬 나는 지난해 평화길라잡이 기본교육 일정을 보며 이런 '쟁쟁한 강사진을 한자리에 모으다니 참 경제적인 강좌인데'라고만 생각했다. 올해는 한홍구 교수님과 주진오 교수님까지 합류하셔서 그야말로 한국사 근현대사의 크렘 드 라 크렘(Crème de la crème : 최고 중의 최고, 정수 중의 정수)으로 알려진 분이 다 모이셨다.

그 일정에 혹하여 강의나 듣자 하며 평화길라잡이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일단 예상대로 강의는 내 흥미를 끄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이어질 서대문 형무소 안내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1980년대에 학교를 다니면서도 앞에 나가서 정치적 의견을 표시하는 것은 특정 학생들에게 국한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구호 한 번 외쳐 보거나 집회에 서 본 적 없는 내가 서대문 형무소를 안내를 하다니.

그것은 마치 위기 맞은 중년의 변절스러운(?) 몸부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기본교육을 수강하면서 컴컴한 밤에 마주치는 서대문 형무소가 주는 중압감은 이런 내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했다.

서대문형무소 입구 밤의 서대문형무소
▲ 서대문형무소 입구 밤의 서대문형무소
ⓒ 서울K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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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가 생각을 바꿔 평화길라잡이로 서대문 형무소 안내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다분히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것이었다. 소설가 김영하는 "작가가 아웃사이더로 알려지게 되면 작가는 화제가 되지만 작품은 사라진다, 사회에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다, 느긋하게 고양이처럼 살고 싶다"라고 했다.

내가 살아온 방식도 어느 정도 비슷했다. 의견은 있으되 굳이 사람들 앞에 그것을 드러내어 나를 판단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켰던 사건들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길에서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 자신의 몸 크기의 두세 배 돼 보이는 박스를 실은 수레를 끌고 가는 노인들, 먹을 것이 없어서 산에서 내려와 사살된 멧돼지들, 자신도 힘들 텐데 할머니까지 챙겨야하는 어린 가장들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다 문득, 지금은 어려움 없다지만 1인 가구로서 삶을 이어갈 나의 미래는 괜찮을까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서대문 형무소 안내를 들으며 강우규 의사, 김원봉 선생, 의열단, 경성트로이카 등 새롭게 알게 된 인물과 사건도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의미 있던 것은 제국주의의 재인식이었다. 형무소 안내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생각한 제국주의에 '나'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것은 19세기 강대국 미국, 영국, 프랑스 대 약소국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나라들 얘기일 뿐이었다. 사실 학교 때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면서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 사람들은 프랑스어를 잘할 수 있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안내를 준비하고 공부하면서 비로소 나와 일본 제국주의를 연결시킬 수 있게 되었다. 제국주의가 무엇인가? 여러 학문적인 정의를 떠나서 강한 자가 약한 자들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그 근간인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에게 낯설지 않다. 아마 나처럼 강자나 약자로 구분돼 소모적으로 경쟁하는 우리가 사는 사회가 싫지만, 바꾸기 위해 큰소리를 내기에는 어색하고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분들이 어딘가 계실 줄 안다.

변화시킬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평화길라잡이가 되어 서대문 형무소를 매개로 근현대 100년의 시간 속에 살아간 인물과 역사적 사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면서 우리 모두는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전하면서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의외로 내 생각에 관심을 기울이고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관람객으로 만나는 많은 행운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내하면서 인간답게 살 권리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해볼 수 기회가 생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으로 옮길 수 있고 덤으로 함께 나설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마저 느낄 것이다.

2015년 여름, 첫안내를 했을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남들에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새삼 느꼈다
▲ 2015년 여름, 첫안내를 했을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남들에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새삼 느꼈다
ⓒ 서울K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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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 최근의 위안부 협상까지 역사에 대한 관심, 열기, 분노가 상당히 뜨겁다. 위안부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대학생들의 노숙농성도 이어지고 있다. 이 추운 겨울에 길바닥에 나앉아야 하다니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다. 나 같은 어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주 그 현장에 함께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딱 부러지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평화길라잡이로서 나만의 방식으로 미력하나마 소심한 힘을 보태고 싶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내 안내를 들어주는 시민들에게 식민지·독재 권력의 야만과 폭력성, 그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 그들의 잃어버린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전하고 대화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우리들을 이어가고 싶다. 

평화와 인권의 관점으로 역사를 배우고, 공감하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여! 모두 평화길라잡이가 되어서 시민들과 눈 맞추며 열심히 떠들어 보자. 같이 대화해보자. 2016년 새해를 맞아 시작해 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도전이 될 것이다. 강추!

* 서울KYC평화길라잡이는 역사의 현장에서(서대문형무소, 남영동대공분실) 평화와 인권의 관점으로,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입니다.
자세한내용은 여기를 참조해주세요. → http://seoulkyc.or.kr/blog/admin/3491?category=2

서대문형무소 관람객 거꾸로 가는 답답한 세상이어서 그럴까. 서대문형무소에 관람객이 늘어났다.
▲ 서대문형무소 관람객 거꾸로 가는 답답한 세상이어서 그럴까. 서대문형무소에 관람객이 늘어났다.
ⓒ 서울K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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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평화길라잡이 8기로 활동중인 임영희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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