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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출근하는 길에 신문을 사면 서비스로 받는 덕담입니다. 양질의 정보로 독자에게 다가서기보다는 다양한 상품과 무료 장기구독으로 현혹하던 시절, 몇몇 신문을 구독하면 주던 자전거, 상품권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신문가판대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신문가판대
ⓒ 황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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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니는 회사는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에서 내려야 합니다. 압구정역 구내에서 옥수, 대화 방면 신문 가판대는 할머니가 운영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신문을 사는 이유가 있습니다. 할머니에게 1천 원을 드리면 200원의 거스름돈을 주시면서 인사를 건네주십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할머니의 미소는 어느 연예인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그동안은 "네!!"라고 인사를 받기만 했는데, 이제부터는 "할머니도 좋은 날 되세요"라고 화답하려 합니다. 압구정역에 오시면 꼭 이용해주세요. 행복한 덕담을 서비스로 받게 될 테니까요.

사실 지하철역 신문 가판대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신문이나 주간잡지를 아예 판매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90년대 초반까지는 지하철 안에서 승객 사이를 뛰어다니며 신문을 판매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조간신문과 석간신문까지 나오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지면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서 하루에 발행되는 종이의 면수가 120페이지를 넘기도 했습니다. 웬만한 잡지 한 권 무게입니다. 신문을 1년 정기구독하면 자전거 또는 백화점 상품권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 몇 년 전만 해도 아침이면 지하철역 주변에 무료 신문들이 깔렸습니다. 종이신문의 영향력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지 않습니다. 신문을 넘기는 게 주변의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합니다.
 
지하철 승객 사이를 뛰어다니며 신문을 팔던 사람도, 매일 아침이면 무료신문을 여기저기 깔아야 했던 어르신도, 신문을 배달하고, 정리하던 사람도 하나둘 우리 곁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어떤 밥벌이로 오늘을 살고 계실까요? 좋은 일자리가 없는 현실을 생각해볼 때 무엇을 하며 살고 계실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사회가 '빠름'으로 변해가고, 트렌드를 알아야 살아남는다고는 하지만 '약자'가 따라오기 힘든 세상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서점을 찾고, 공부를 하는 이유는 제 스스로도 은퇴 이후의 삶을 찾기 위함입니다. 압구정역 신문 가판대는 언제까지 운영될까요? 신문 가판대가 먼저 사라질지, 제가 먼저 떠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50세 이후에는 새로운 삶을 열고 싶습니다. 회사에서 배운 업을 갖고 지혜롭게 살고자 합니다. '동네에서 치킨가게나 해야지'라는 자조적인 생각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모범을 보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십 대 후반에 고 구본형 선생님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모든게 영원하지 않고, 지금 다니는 회사도 미래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배우고, 깨쳐서 새롭게 일어서자'라는 변화의 키워드가 담긴 책이었습니다. 인생은 변화의 연속입니다. 하물며, 종교도 변해야 한다는데 세속의 삶은 순탄하게 살도록 가만히 놔두지를 않습니다.

식당사장 장만호 표지
 식당사장 장만호 표지
ⓒ 황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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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식당사장 장만호>는 노동자이자 가장인 40대의 중년 한 사람이 교통사고로 뜻하지 않게 식당을 하면서 벌어지는 파란만장한 삶이 담긴 책입니다.

이야기는 '겨울 바람이 거센 광안대교를 걷는 한 사람'에서 시작합니다. 장만호는 석 달 정도 했던 대리운전을 몸이 아파 그만두었습니다. 고시원의 월세조차 내지 못하게 되자 길거리를 떠도는 정처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식당을 하던 그는 왜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꾸려가다가 다리 난간을 잡고 물밑을 내려다보며 심호흡을 하는 것일까요?
 
중졸 학력이 전부인 그는 공장 바닥을 떠돌았습니다. 함께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노조위원장 활동까지 하다 해고된 경력은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서 불러주는 공장도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교통사고까지 당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우연한 기회에 식당을 하게 됩니다.
 
'식당일은 밥을 팔아서 밥을 사는 일이다. 지금까지 나는 내 튼튼한 육체를 팔아서, 내 노동력을 팔아서 밥을 샀다. 식당 일이란 것도 노동력을 파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팔지 않고 제가 먹을 밥을 살 수는 없는 일이다. 타인에게 밥을 팔아서 나의 밥을 산다는 일 자체가 우습다면 우스운 일이랄 수도 있다.'(25쪽)

그가 운영하는 식당의 이름은 공단숯불갈비였습니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되다 보니 새로운 꿈을 갖습니다. 함께 노동운동을 하던 황동하와 동업으로 '만동이갈비촌'이란 이름의 프랜차이즈를 열어 성공을 거둡니다. 그러나 동업자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고 처음 식당을 열었던 자리로 다시 돌아옵니다.

식당을 찾고, 식당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가난하거나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식당 사장 장만호의 삶도 낮은 곳에서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는 노력의 연속이었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소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작은 식당으로 돌아와서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삶인지를' 잔잔하게 들려주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여러 가지 통계를 봐도, 창업을 한다는 게 어렵기만 합니다. 한 명이 창업을 하면 또 다른 사람은 폐업을 하는 악순환의 구조에서 우리의 도전은 무모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속한 조직을 나오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됩니다. 명함도 사라집니다. '밥벌이'의 두려움으로 외로움을 느낀다면 식당 사장 장만호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저 밥 한 톨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식구들의 밥을 벌어 먹일 노동이 되고 꿈과 희망이 되고 한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49쪽)
 
[김옥숙 작가 소개]
저자 김옥숙은 1968년 경남 합천 출생. 200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타'가 당선됐고 같은 해 전태일문학상에 소설 '너의 이름은 희망이다'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희망라면 세 봉지>가 있다. 첫 장편소설 <식당사장 장만호>는 남편과 식당을 운영했던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식당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을 유쾌하고 현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황춘원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ementoring.blog.me/)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식당사장 장만호

김옥숙 지음, 새움(2015)


태그:#식당사장 장만호, #김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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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강원도 속초로 이사 온 가족의 따뜻한 일상으로 위로와 희망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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