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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고등학교의 종류를 열거해 보겠다. 흔히 '인문계'라고 불리는 일반계열 고등학교와 외국어고‧과학고‧국제고‧체육고‧예술고‧마이스터고로 구분되는 특수목적 고등학교, 그리고 공업고‧상업고‧실업고‧관광고‧애니메이션고로 나누어진 특성화 고등학교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및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여기에 대안학교까지 합하면 대한민국 고등학교는 총 열다섯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물론 기숙사 유무에 따라 구분하면 더 많이 나눌 수도 있겠다. 

대학교도 아니고 고등학교인데 그 종류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물론 고등학교가 다양하다고 해서 꼭 나쁜 건 아니다. 예체능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 방면으로 전문적인 교육을 하는 곳은 필요하다. 그리고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을 위한 학교도 필요하며, 공교육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위한 대안학교도 필요하다.

그런데 다른 종류의 고등학교는 재고해야 한다. 일반계열 고등학교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투자하면 그곳에서도 원하는 인재를 육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 종류의 학교를 만들고 난 후 재정적‧정신적으로 교육 당국이 그쪽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바람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일반계열 고등학교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처해졌다.

무엇보다도 고교 서열화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교 다양화 정책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기숙형 특수목적 고등학교의 등록금은 대학 등록금과 맞먹거나 더 비싸다. 학생이 공부만 잘한다고 해서 원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차별적인 중등교육을 제공받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나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급우를 도와주며 함께 공부하고, 나보다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운 교우들에게 혜택을 베풀면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학교가 제공해야만 한다. 그런데 학습 분위기나 대학 진학률 등을 기준으로 고교 서열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現) 교육제도는 남을 위한 배려심뿐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상당 부분 차단하고 있다. 그리고 '비선호 고등학교'라는 낙인이 찍힌 고교는 살아남기 위해 천박한 장사꾼처럼 교육에 임할 수도 있다. 공교육마저 상업주의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

고교가 서열화되어 있으니 학교마다 학생들 성적 차이가 너무 커서, 상위권 대학에서는 고교 내신 성적을 일괄적으로 적용하지 못해 다른 전형을 만들고 결국은 대학입시도 복잡하게 되었다. 특히, 비슷한 환경의 학생들이 끼리끼리 모이게 만드는 고교 다양화로 인해 각 학교에서는 학생 집단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벤치마킹할 친구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이는 학생들의 장래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고교선택제로 학부모와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반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상에 불과하다. 입시에 예민한 한국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거는 기대는 그렇게 많이 다양하지가 않다. 오히려 아등바등 생계를 꾸려나가느라 고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학부모들에게는 자녀를 어느 고등학교에 보내야 할지 막막할 것이다. 제도가 복잡해질수록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자들에게만 유리할 뿐이다. 대통령 자녀나 노숙자 자녀나 함께 배울 수 있는, 기회의 균등이 중등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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