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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대림미술관의 또 다른 버전 <D Museum>이 문을 열었다. 첫 전시 '9 Lights in 9 Rooms'는 일반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여러 SNS 친구들이 공유하는 색색의 그림자들을 보며 나도 이 전시에 호기심이 생겼다.

어느 토요일 오전, 언덕을 올라 미술관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이른 시간에도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보통 전시회에 가면 몇 시간이고 들여다보고, 마음에 드는 작품은 길을 돌아가서 한참을 보는 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작품을 자세히 볼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투어 인파와 함께 떠밀리듯 전시장을 돌아야 했다. 전시의 이름처럼 독립된 공간에 아티스트 9인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모두 빛을 활용한 작품들이었다.

Neon Forms (세리스 윈 에반스)
 Neon Forms (세리스 윈 에반스)
ⓒ 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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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방에 들어서자 자전거 모형으로 얽힌 하얀 조명이 나타났다. 한 구석에 나무가 있길래 뜬금없다 생각했는데 나무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역시 전시장에 이유가 없는 물건은 없다. 자전거를 타고 햇살 좋은 캘리포니아 거리를 자유롭게 거니는 모습을 상상했다.

Primary (플린 탈봇)
 Primary (플린 탈봇)
ⓒ 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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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방에 들어섰다. 삼각뿔 모양의 조형물에 빛을 투영시켜 이미지에 계속해서 변화를 줬다. 삼각뿔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도 다 다르게 보였다. 간혹가다 누군가가 프로젝터 렌즈를 가려 삼각뿔이 초라해졌다. 그것 또한 의도된 것으로 생각하는 관람객도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견디지 못하고 다음 방으로 갔다.

Line Fade (어윈 레들)
 Line Fade (어윈 레들)
ⓒ 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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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방에는 거대한 원기둥이 있었다.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연상케 하는 기둥이었다. 큐레이터는 원기둥 안에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보라고 했다. 담을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 서서, 혹은 몇 바퀴 빙글빙글 돌면서 생각해야 하는데 우리는 모두 줄지어 그곳을 지나야 했으므로 사진만 겨우 찍었을 뿐 어떤 이야기도 담지 못했다.

네 번째 방은 그나마 괜찮았다. 공간이 나름 넓었고 줄을 설 필요도 없었다. RGB를 이용해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신기한 방이었다. 시신경이 색상을 받아들이는 시차 때문에 한 곳을 응시하면 색상이 짙어졌다.

색과 색 사이를 응시하면 두 가지 색상이 합쳐지기도 했다. 똑똑한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거장이겠지(전시 카탈로그에 따르면 카를로스 크루즈-디에즈 작가는 조명아트의 거장이라고 한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앞으로 가야 했다

Mirror Branch Daelim (스튜디오 로스)
 Mirror Branch Daelim (스튜디오 로스)
ⓒ 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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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hale (툰드라)
 My Whale (툰드라)
ⓒ 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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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의 디스크로 만든 조형물을 지나 여섯 번째 방에 입장했다. 거대한 터널이 펼쳐졌다. 영문 제목이 'My Whale'이다. 심해가 떠올랐다. 바닷속을 헤엄치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역시 앞으로 가야 했다. 전시장 직원들이 쉴 새 없이 관람객들을 이동시켰다.

"앞으로 가주세요. 걸어가면서 봐주세요."

고래가 멈춰설 수 없는 것이다.

Bourrasque (폴 콕세지)
 Bourrasque (폴 콕세지)
ⓒ 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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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일곱 번째 방에서 만난 'Bourrasque'였다. 세상 모든 물질이 다 흩날리는 듯한 공간이었다.

무질서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규칙적이고, 혼란스럽지만 자유로웠다. 부여잡고 있는 복잡한 생각들을 다 날려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CMYK corner, CMYK wall "Don't look into the light" (데니스 패런)
 CMYK corner, CMYK wall "Don't look into the light" (데니스 패런)
ⓒ 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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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망의 그림자 방에 입성했다. 사람들이 이 방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전시를 봐야겠다고 결심했기에 기대가 컸다. 동화적인 공간에는 너도나도 그림자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림자가 잘 만들어지는 지점을 찾아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몇 분을 머물렀던 것 같다. 마지막 방에서 상영 중이던 비디오 아트는 스크린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뤄 차마 볼 엄두도 하지 못했다. 서둘러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좋은 전시임은 분명한데 시간대별로 사전신청을 받아 진행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든다. 비용을 조금 올리더라도 프리미엄 티켓을 팔면 잘 팔릴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전시의 묘미는 예술가들과 관람객들이 작품을 통해 교감하는 것이다. 예술로 장사하는 게 별로라면 별로지만 이러한 운영이 관람객과 예술가 모두에게 이로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태그:#D MUSEUM, #디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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