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행

포토뉴스

2015년 3월, 혼자 '한 달 네팔여행'을 다녀왔다. 10박 11일 동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올랐고, 어떤 날은 할 일 없이 골목을 서성였다. 바쁘게 다니는 여행 대신 느리게 쉬는 여행을 택했다. 쉼을 얻고 돌아온 여행이었지만, 그 끝은 슬펐다. 한국에 돌아오고 2주 뒤 네팔은 지진의 슬픔에 잠겼다. 그래도 네팔이 살면서 한 번쯤 가봐야 할 곳임에는 변함이 없다. 30일간의 이야기를 전한다. - 기자 말
평화로운 란드룩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출리. ⓒ 박혜경
배낭 커버를 벗기자 안에서 빗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렸다. 이어 가방 밑바닥에 구겨져 있던 내 분노도 같이 쏟아져내렸다.

아침에 시누와(2340m)를 출발해 오후 란드룩(1640m)에 도착할 때까지,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장장 6시간 반 동안 걸었다. 신발, 양말, 바지, 가방은 이미 모두 침수상태. 장시간 우중 산행엔 우비도 배낭 커버도 소용 없었다.

'하늘도 무심하지'란 말로도 이 무심함을 다 담을 수가 없다. 어떻게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릴 수 있지. 그리고 나는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스패츠를 하지 않았을까. 평소처럼 출발할 때 스패츠를 찼다면 적어도 신발은 덜 젖었을 텐데...

그나마 가방 안 내용물들을 김장 비닐로 한 번 감싸 넣은 덕분에 전자제품들이 젖는 참사는 피했다. 화난 황소처럼 씩씩거리며 가방 속을 죄다 엎어 닦았지만 말릴 방도가 없다. 그냥 축축한 채로 포카라까지 가는 수밖에. 한숨 돌리고 씻으려는데 샤워기까지 말썽이다.

"저... 따뜻한 물 원래 안 나왔나요?"
"네. 저 씻을 때에도 1분 정도만 나오고 다시 찬물 나오더라고요."
"................."

오늘이 트레킹 중 최악의 날이다.

"네팔에서 사고났대요" 6일 만에 연결된 인터넷으로 전해진 비보
평화로운 란드룩 풍경. ⓒ 박혜경
란드룩에서 바라본 설산들. 왼쪽이 안나푸르나 남봉(7219m), 오른쪽이 히운출리(6441m). ⓒ 박혜경
젖은 신발에 휴지를 잔뜩 쑤셔 넣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2층 식당으로 향했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진흙탕물이 맨발 위로 사정없이 튀었다.

생각해보면 트레킹 첫날부터 비가 내렸다. 오후 늦게 내리던 것이 점점 시간을 앞당기더니 거의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날까지 된 것이다. 포터 아저씨는 작년, 재작년만해도 3월에 이렇게 비가 자주 내리진 않았단다. 3월은 원래 건기인데, 몬순처럼 거의 매일 비가 내리는 건 이상한 일이라는 거다. 지구온난화 같은 것들 때문이겠지. 도시에서 팍팍 쓴 죄를 여기서 받고 있나 보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온통 시뻘겋게 익었다.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가면서 눈에 반사된 햇빛을 받은 게 컸다. 뒷목은 이미 껍질이 벗겨질 지경이다.

"네팔에서 사고났나 봐요. 렌터카랑 버스가 충돌해서 한국인 4명이 사망했대요."

6일 만에 연결한 와이파이로 비보가 날아들었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가던 렌터카가 마주오던 버스와 충돌했단다. 우리 역시 포카라로 올 때 지나온 길이었을 것이다. 안개 때문에 시야가 흐렸고, 추돌이 아닌 충돌인 걸로 봐서 누군가 추월하다 사고가 난 듯 싶었다.

포카라와 카트만두 사이를 잇는 도로는 2차선 남짓 된다. 도로 폭이 좁기에 중앙선을 넘어 앞차를 추월해 나가는 곡예운전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뉴스가 더 무겁게 다가온다.
란드룩의 아이들. ⓒ 박혜경
란드룩 풍경. 설산 아래 계단식 논이 펼쳐져 있다. ⓒ 박혜경
지난밤, 어찌 잠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기절해 잤다. 어제는 비가 종일 내려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로지 바로 앞으로 안나푸르나 남봉(7219m)과 히운출리(6441m)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 느낌인 란드룩도 뷰가 참 좋다.

설산 아래 계단식 논이 물결을 이루며 펼쳐져 있고, 푸른 풀밭 위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논다. 그림같은 풍경 탓인지 장기투숙자로 보이는 이도 있다. 로지 복도에서는 한 나이 지긋한 여행자가 의자에 앉아 설산을 화폭에 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렇게 우아할 정신이 없다. 이게 얼마만이냐, 귀하신 햇님께서 드디어 얼굴을 내밀었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햇볕이다~ 우린 얼른 젖은 옷가지와 가방 등을 널었다. ⓒ 박혜경
"오빠, 해 나요. 빨리요."
"어, 정말요?"

햇볕이 드는 시멘트 바닥에 축축한 짐들을 죄다 펼쳐 놓고, 우리도 곁에 앉아 오랜만에 일광욕을 했다. 오늘 여기에서 오스트레일리안 캠프(1920m)까지만 가면 사실상 트레킹이 끝이 난다. 아름답고 힘들었던 시간. 징글징글한 계단 때문에 눈물났던 나날들. 포카라에 가면 맛있는 커피와 시원한 맥주도 실컷 먹을 수 있겠지.
란드룩을 떠나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로 가는 길. 자꾸만 뒤돌아 설산을 바라봤다. ⓒ 박혜경
란드룩에서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가는 길. 길가에 있는 이 경치 좋은 식당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식당 앞으로는 거대한 산봉우리들이 펼쳐져 있었다. ⓒ 박혜경
힘든 건 다 지났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니 주변 경관이 더 눈에 들어온다. 이 모퉁이만 돌면 이제 설산과도 안녕이다. 마지막으로 보는 설산이 아쉬워 몇 번이나 뒤돌아 보았다.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가기 전 포타나(1970m)에서 마지막으로 체크포스트에 들렀다. 포터 아저씨는 "이제 아웃"이라며 우리에게 각자의 팀스(TIMS, 트레커 정보 관리 시스템)와 퍼밋(ACAP 안나푸르나 보존 구역 프로젝트) 종이를 기념으로 준다.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11일 동안의 트레킹의 끝자락. 장하다, 건강하게 잘했다.
"이제 끝, 아웃이야." 포타나 마지막 체크포스트. ⓒ 박혜경
이보다 풍경 좋은 레스토랑이 또 있을까. ⓒ 박혜경
<시시콜콜 정보>

- 계단이 두려운 당신에게 : 무릎 보호대를 꼭 챙기세요. 뭐 이런 것까지 싶겠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스틱은 두말하면 입 아파요.)

- 면 티는 NO NO~ : 땀과 비 등 트레킹 중 옷이 젖을 일은 많습니다. 적어도 속에 입는 티는 쿨맥스나 드라이핏 류와 같이 속건성 소재의 옷을 챙기는 게 좋아요. 면 티는 젖으면 잘 마르지 않아 트레킹 중 계속 입기 힘들 수 있습니다(냄새도 냄새고요). 비싸지 않아도 기능을 갖춘 옷들이 많으니 꼭 소재를 따져보세요. 너무 복잡하다 싶으시면, 면 보다 폴리에스테르류의 옷을 구입하시면 됩니다.
태그:#네팔 트레킹, #네팔 여행, #ABC 트레킹, #한 번쯤은, 네팔, #란드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