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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용담리에 어렵게 사시는 집 있잖아요, 이번에 우리가 집수리 좀 해 드리려고요."

'좋은 이웃' 회장 한옥희씨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지난 3월 27일이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설 명절에 소개했던 집이다(관련 기사 : 익명으로 받은 100만원, 이렇게 썼습니다). 바람막이를 위해 처 놓은 비닐은 찢겨 칼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집엔 할머니 외에 뇌졸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아들과 올해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한 손자가 함께 산다. 할머니도 심장수술 이후 활동이 부자연스럽다. 

'좋은 이웃' 회원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 집 수리비에 보탰다. 비닐로 시공했을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바람에 찢길 건 뻔했다. 비닐 대신 투명 플라스틱으로 공사를 마쳤다.

이랬던 집이
 이랬던 집이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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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바뀌었다.
 이렇게 바뀌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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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본 이후 내내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이렇게 후련할 줄 알았으면 진즉에 서두르는 건데…."

'고생 많으셨다'는 말에 한옥희 회장은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했다.

오지 식당이 유명해졌다

비수구미 만동이네 산나물 밥상
 비수구미 만동이네 산나물 밥상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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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잘 되신다고요?"
"전화 받을 시간도 없어요. 직접 와 보세요."


산속 오지에서 산나물 비빔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 사실 이곳은 별로 유명하지 않았다. 오지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우연히 들르는 정도. 왜 이런 산속에 식당을 차렸을까? 의문 하나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식당주인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내내 가슴이 짠했다. 너무 세상을 힘들게 사셨던 거다.

<오마이뉴스>로 소개(관련 기사 : 시동생이 감사패를 주던 날, 모두 울었다)한 며칠 후, 모 방송국 PD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내용을 특집 5부작으로 다룰까' 하는데 괜찮을지 물었다. 할머니 의견을 묻지도 않고 무조건 하자고 했다. 할머니표 산나물 비빔밥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방송 이후 구름같이 모여든 사람들. 트래킹이나 등산이 목적이 아닌 오로지 비빔밥을 먹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젠 방송사에서 그만 왔으면 좋겠어요

당시 초교 1학년 위말례 할머니와 남편 김무영 할아버지, 지금은 3학년이다.
 당시 초교 1학년 위말례 할머니와 남편 김무영 할아버지, 지금은 3학년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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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언론사에서 취재 좀 나오지 않게 해주세요."

70세이신 한 할머니가 내게 느닷없이 말했다. 무슨 일일까. 2014년 5월 19일, 한 시골마을 교장선생님은 '우리 학교에 68세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있다'고 했다. 못 배운 것에 대한 한스럼 때문일까, 늦깎이 공부를 시작하신 거다. 60살이나 어린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겠다는 용기보다 열정에 감동했다. 허락을 얻어 <오마이뉴스>에 소개했다(초등학교 1학년, 68세 할머니를 소개합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교육방송, 지상파 방송 등 각종 언론 취재협조 요청이 쇄도했다.

"내가 유명인도 아니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이젠 할 말 다 했으니 방송사에서 연락이 더 이상 안 왔으면 좋겠어요."

지나친 친절이 빚은 비극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왜 그 분의 요구를 들어 주었나'하는 후회도 있었다. 2010년 어느 날, 독거노인 한 분이 강원도 화천군에 장학금 200만 원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홀로 작은 컨테이너에 살며 폐지를 모아 판 전액을 냈단다. 생활비는 매달 받는 40만 원 수급비면 충분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당뇨로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상태로 스쿠터를 이용해 폐지를 주웠다.

'가난해서 나처럼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있어선 안된다'라는 생각을 하셨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꼬깃꼬깃한지폐 200만원 전액을 낸 이유라고 했다.

2011년 설날을 며칠 앞 둔 날, 취재차 방문했다. 갈 곳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 컨테이너 속 명절은 너무 쓸쓸하단 말이 인터뷰 내내 먹먹해 지기도 했다. 할아버지 이야기가 <오마이뉴스>를 통해 소개(관련 기사 : '할아버지, 이제 제발 그만 기부하세요!')되자 할아버지를 돕겠다는 손길이 쇄도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들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

"재 너머 군인 아파트가 하나 있는데, 병은 가져가지 않을 테니, 폐지나 줍게 해주시오."

'설 명절 잘 보내시라' 인사를 뒤로하고 나올 때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었다. 그 자리에서 군 관계자와 통화로 승낙을 얻었다.

1년 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 비보. 스쿠터를 타고 군인 아파트로 가기 위해 고개를 넘다 교통사고를 당하셨다고 했다. '거절할걸. 나 때문이다'라는 생각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았다

이 문서를 보면 마치 국회에서 보낸 것 처럼 보인다.
 이 문서를 보면 마치 국회에서 보낸 것 처럼 보인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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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 위조에 해당될 것 같습니다. 원본 좀 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국회사무처 직원은 고발을 검토해 본다고 했다. 지난 2월 한 여행사에서 '국회 및 청와대 견학'이란 내용으로 다수의 산골마을 경로당에 문서를 보낸 걸 알았다. 모든 게 공짜라고 했다. 다녀온 경로당 수소문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건강식품을 비롯한 약을 파는 집단이었다. 이로 인한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한 기사(관련 기사 : 대통령 만나는 관광인 줄 알았는데, 녹용만 사고왔다)를 작성했다.

"우리도 그 문서 받았는데, 큰일 날 뻔 했네요.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타 지자체 경로당으로부터 수차례 감사 전화도 받았다.

팔자에도 없는 강사가 됐다

"150여명 사원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 좀 해 주시죠?"

모 기업체로부터 받은 다소 엉뚱한 제안. 앞뒤 안 가리고 '노'(NO)라고 답했다. 전공도 아닌데 가당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오마이뉴스>에 기사 쓰시는 형태로 팩트 찾기 등 글 전개구성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이후 팔자에도 없는 글쓰기 강사로 나간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재능기부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속세에 묻혀 버릴 뻔했던 사람사는 이야기를 세상에 소개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쓴 글은 날개를 달았다. 독자들은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보내줬고, 아픔과 슬픔도 같이했다. 앞으로 또 어떤 사연을 세상에 알릴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시민기자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장입니다.



태그:#사내면, #화천군, #비수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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