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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은 전라도에서 재건한 조선수군으로 1597년 9월 16일(양력 10월 26일) 울돌목에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명량대첩의 승리를 일궈냈다. 사진은 전라남도 주최 명량대첩축제 때 해상전투 재현 모습이다.
 이순신은 전라도에서 재건한 조선수군으로 1597년 9월 16일(양력 10월 26일) 울돌목에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명량대첩의 승리를 일궈냈다. 사진은 전라남도 주최 명량대첩축제 때 해상전투 재현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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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조선수군 재건은 구례에서 군관 9명과 병사 6명으로 시작해 곡성, 순천, 보성, 장흥, 해남, 진도로 이어졌다. 일본군이 뒤쫓아 오는 긴박한 상황에서 군사와 군기, 군량을 확보하고 군선을 복원하는 과정이었다.

이순신은 구례와 곡성에서 병사들을 모으고 순천에선 무기와 대포, 화약, 화살을 구했다. 보성에선 군량미를 다량 확보했다. 조정의 수군 철폐령에 맞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다(今臣戰船 尙有十二)'는 내용의 장계를 써서 상소를 올린 곳은 보성이었다. 장흥에선 칠천량에서 살아남은 조선 함대 12척을 회수해 수군의 면모를 갖췄다.

이순신은 이렇게 재건한 조선수군으로 1597년 9월 16일(양력 10월 26일) 울돌목에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명량대첩의 승리를 일궈냈다. 조정의 지원을 받기는커녕 수군 철폐령까지 내려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전라도 일원에서 조선수군 재건에 성공한 결과였다.

 이순신이 명량대첩의 승리를 일궜던 울돌목의 야경. 진도대교 아래에 고뇌하는 이순신 장군상이 세워져 있다.
 이순신이 명량대첩의 승리를 일궜던 울돌목의 야경. 진도대교 아래에 고뇌하는 이순신 장군상이 세워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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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전라도 백성들이 열렬히 참여하고 목숨까지도 내놓았다. 장정들은 목숨을 내놓고 병사로 참여했다. 백성들은 자신과 식솔들이 굶는 상황에서도 식량을 모았다. 지역의 지리와 물길을 아는 백성은 이순신의 눈과 귀가 되어 앞길을 열었다. 어선을 가진 주민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에 직접 참여해 후방에서 수군을 호위하며 방패막이를 자청했다.

전라도 백성들의 희생은 '호남이 없었으면 국가도 없었을 것'이라는 이순신의 말(若無湖南 是無國家) 한 마디로 정리된다. 그만큼 전라도 백성들은 한 마음 한뜻으로 이순신을 도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진도의 동북쪽 끝자락에 자리한 벽파진. 이순신은 명량대첩의 현장인 울돌목으로 수군진을 옮기기 전까지 여기에 머물면서 명량해전을 구체적으로 구상했다.
 진도의 동북쪽 끝자락에 자리한 벽파진. 이순신은 명량대첩의 현장인 울돌목으로 수군진을 옮기기 전까지 여기에 머물면서 명량해전을 구체적으로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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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파항 한켠에 있는 벽파정의 흔적. 벽파정은 당시 진도를 출입하는 공식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었다.
 벽파항 한켠에 있는 벽파정의 흔적. 벽파정은 당시 진도를 출입하는 공식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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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명량대첩을 일군 진도에는 관련 유적이 많다. 벽파진(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929)은 진도의 동북쪽 끝자락에 있는 포구다. 어란진에서 울돌목으로 가는 길목이다. 오랫동안 진도의 관문 역할을 했다. 진도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자동차가 배에 실려 바다를 건너와 여기에 내렸다. 이순신은 명량대첩의 현장인 울돌목으로 수군진을 옮기기 전까지 여기에 머물면서 명량해전을 구체적으로 구상했다.

벽파정(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은 벽파진의 어귀에 있었다. 당시 진도를 출입하는 공식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었다. 다른 나라의 사신, 승진이나 좌천으로 오가는 군수, 유배자 등이 오가는 진도의 관문이었다. 지금도 그 터가 벽파항에 남아 있다.

벽파항 언덕에는 이충무공 전첩비(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682-4)가 우뚝 서 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 진도군민과 교직원들이 성금을 모아 세웠다.

'…어허 통쾌할사 만고에 길이 빛날 명량대첩이여. 그날 진도 백성들은 모두 달려 나와 군사들에게 옷과 식량을 나누었으며 이천구, 김수생, 김성진, 하수평, 박헌, 박희령, 박후령과 그의 아들 인복 또 양응지와 그 조카 계원, 그리고 조탁, 조응양과 그 아들 명신 등 많은 의사들은 목숨까지 바치어 천추에 호국신이 되었나니 이는 진실로 진도민의 자랑이로다.…'

 벽파항 언덕에 우뚝 서 있는 이충무공 전첩비.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 진도군민과 교직원들이 성금을 모아 세웠다.
 벽파항 언덕에 우뚝 서 있는 이충무공 전첩비.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 진도군민과 교직원들이 성금을 모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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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재란 순절묘역.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 조성됐으며 여기에 232기의 무덤이 있다. 16기를 빼고 모두 주인 없는 무덤이다.
 정유재란 순절묘역.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 조성됐으며 여기에 232기의 무덤이 있다. 16기를 빼고 모두 주인 없는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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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순절묘역(진도군 고군면 도평리 산117-3)은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부터 조성됐다. 묘역 면적은 5만553㎡, 여기에 232기의 무덤이 있다. 16기를 빼고 모두 주인 없는 무덤이다. 진도사람으로 명량해전에서 전사한 관군 조응량(선무원종공신)을 비롯 그의 아들 조명신, 박헌, 김성진, 김홍립 등의 무덤도 여기에 있다.

왜덕산(진도군 고군면 내동리)은 진도주민들이 만든 일본군의 무덤이다.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에 의해 수장된 일본군의 시체 100여 구가 바닷가에 밀려들자 주민들이 이를 거둬 여기에 묻어 주었다. '일본군에게 덕을 베풀었다'고 해서 왜덕산(倭德山)이다.

지난 2006년 8월엔 왜덕산에 묻힌 일본군의 후손 20여 명이 이곳을 참배하고 마을주민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개간 과정에서 일부 유실되고 현재 50여 기가 남아 있다.

 진도주민들이 만든 일본군의 무덤인 왜덕산.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에 의해 수장된 일본군의 시체가 바닷가에 밀려들자 주민들이 이를 거둬 여기에 묻어 주었다.
 진도주민들이 만든 일본군의 무덤인 왜덕산.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에 의해 수장된 일본군의 시체가 바닷가에 밀려들자 주민들이 이를 거둬 여기에 묻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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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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