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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2주 앞둔 지금 여야 간 청년정책의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모두 청년일자리 '창출'을 전면에 내세웠다. 물론 방식의 차이는 있다. 새누리당은 대기업 '규제완화'를 통해, 야당은 공공부문 중심의 '의무고용할당'을 통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야당은 청년수당을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은 6개월에 60만 원, 국민의당은 차후에 갚는다는 조건으로 6개월에 300만 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나 새롭게 도입하겠다는 '청년내일찾기' 프로그램 역시 일정 수준의 수당 지급과 취업지원 프로그램까지 있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야당의 청년구직수당은 차별성이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왜 '서울시' 청년 정책인가?

사실 정부여당과 차별성 있는 청년정책은 지난해 서울시 정책으로 등장했다. 물론 정부여당은 서울시 정책이 중앙정부와 '중복'된다는 이유로 중단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포퓰리즘'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정말 정부 주장대로 '중복'이 문제라면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할 이유가 없다. 그 논리대로라면 정부정책 역시 '포퓰리즘'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 문제는 서울시가 '취업지원'뿐만 아니라 '수당'까지 결합했다는 것에 있다.

지금까지 정부 정책의 방점은 '당장의 취업률 제고'를 벗어난 적이 없다. 하지만 서울시는 '취업률 제고'뿐만 아니라 보완적 제도로서 '수당' 역시 같이 도입했다. 정부는 최소한의 수당과 현재 청년 수요에 맞지 않는 취업훈련을 통해 빠른 취업만을 목표로 했지만, 서울시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당과 아주 느슨한 방식의 자기 주도형 취업훈련을 도입했다.

여기서 성남시 청년수당과도 차이가 발생한다. 성남시 청년수당은 구직이라는 조건 없이 일정 나이 청년들 모두에게 지원금을 제공하는 기본소득 개념이라면, 서울시 정책은 구직이라는 명확한 지원조건을 전제했다는 측면에서 실업부조의 성격을 갖는다. 즉 성남시는 취업훈련 없는 수당만을, 정부는 당장의 취업을 위한 취업훈련만을 제공했다면, 서울시는 취업훈련과 수당을 결합한 사실상 '한국형 실업부조'에 가까운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근본적으로 일자리 창출에 대한 시각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정부와 여야 모두 일자리 창출 그 자체를 목표로 하며, 핵심주체를 기업으로 상정한다. 정부여당은 기업이 스스로 청년을 더 많이 채용하기를 '기대'하고 있고, 야당은 이를 일부 '강제'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적절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현재 기업들이 국가에 요구하는 제1의 목표는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하는 '해고요건완화'이다. 그런데 갑자기 기업들이 국가로부터 지원금이나 강제를 받는다고 해서 청년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쏟아 내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청년실업 문제에서 일자리의 '양'은 핵심이 아니다.

반면, 서울시 청년정책은 일자리 창출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그보다는 '일자리의 질'을 강조한다. 청년들이 당장의 질 나쁜 일자리에 머물지 않으면서도 취업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질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주는 방식인 것이다.

서울시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그러나 서울시의 정책적 한계는 명확하다. 비단 서울시 청년에게만 적용된다는 한계를 넘어, 취업을 원하는 청년 중에서도 '선발'을 한다는 것, 그리고 사실상 실효성 있는 취업훈련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시 정책이 본래 의도했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취업의지가 있는 청년 누구에게나 취업훈련과 급여가 동시에 제공되는 실업부조의 형태여야 하며, 이런 측면에서 중앙정부의 정책으로 도입돼야 한다.

실업부조는 덴마크나 네덜란드 등 북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거론한) 독일 등 대부분 OECD 국가들에 존재하는 제도다. 고용보험이 기존의 고용이력을 바탕으로 기여에 기반해 제공되는 급여라면, 실업부조는 고용보험에 포괄되지 않는 (청년) 실업자나 장기실업자 등 취업의지가 있는 구직자 모두에게 취업훈련과 지원금을 최소 1년간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취업의지가 있는 누구에게나' 제공된다는 측면에서 보편복지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을 촉진한다는 측면에서 '노동시장 정책'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고용보험이 1차 실업안전망이라면 실업부조는 2차 실업안전망이고, 동시에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시의 청년정책은 지방정부 수준을 넘어서, 국가 전체를 포괄하는 중앙정부 수준의 제도로 도입돼야 한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은 취업의지는 있지만 고용보험에 포괄되지 않아 안정적 구직활동을 하기 어렵고, 당장의 생계를 위해 그 어떤 일자리라도 구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다수의 일자리가 저임금 및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있으며, 취업을 포기한 채 구직시장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니트(NEET) 족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고려해 볼 때 , 서울시 정책, 즉 취업훈련과 급여를 동시에 제공하는 실업부조가 전국적으로 확대·도입될 필요성은 자명하다. 이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중앙 정책을 다루는 정부여당과 각 정당들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총선 국면에서도 정치권은 이에 대해 '묵묵부답'이다. 그 결과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다른 정책적 대안은 부재한 채, 서울시의 청년정책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21세기형 인프라 구축, 청년정책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치권이 서울시 정책을 반대한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해야 하고, 찬성한다면 전국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때 전제해야 할 것은, 첫째 지금의 청년은 과거의 청년과 구조적으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 둘째 청년정책은 시혜성 복지정책이 아닌 인적투자이자 성장을 위한 국가 인프라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첫째, 청년정책은 지금의 청년이 50년 전의 청년과 질적으로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의 '청년 문제'는 비단 청년의 시기에 겪을 수 있는 학업, 취업, 결혼 등의 일반적 어려움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화와 산업구조의 변동, 그리고 전통적 가족형태의 해체와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등의 변화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는 집단이 바로 현 시대의 청년들이다.

무엇보다 고용의 형태가 변했다. 50년 전 청년들은 일찍 취직하여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면서 그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구조 속에 있었다. 저숙련 노동자라도 제조업에 종사하며 안정적인 직장, 노조를 통한 연대, 임금상승 등 경제성장에 따른 이익을 같이 향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청년은 급속히 변화하는 산업구조 속에서, 불안정한 노동시장 상황에 처해 있다. 이로써 직업의 이동이 잦고, 비전형적인 고용형태와 불안정한 임금소득에 노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복지제도는 50년 전 청년들에게 적합한 제도다. 시대는 변했고 고용 형태와 직업 경로가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복지제도는 직장생활을 안정적으로 오래한 노동자에게 유리한 제도다. 따라서 빈곤의 위험은, 50년 전 청년들에게는 직장을 잃을 경우 일시적으로 비교적 소수에게 발생했다면,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다수에게 상시적인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직업이 있다 하더라고, 구조적인 고용불안으로 인해 임금소득이 안정적이지 않으며, 이로 인해 연금이나 고용보험 등 핵심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Bonoli 2005). 고용불안이 어느 정도 주어진 상황이라면, 이에 대응하는 복지제도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핵심 복지제도를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맞게 개혁할 수 없다면, 적어도 현재 청년에게 가장 절실한 제도는 도입해야 한다. 그것 중 하나가 바로 실업부조이다.

둘째, 모든 청년정책은 단순한 복지제도가 아니라 인적투자 정책이다. 실업부조는 전통적인 실업안전망이라는 측면에서는 복지제도일 수 있지만, 고용능력을 촉진한다는 측면에서 노동시장정책이고 이것이 바로 새로운 성장을 위해 국가가 구축해야 할 21세기형 인프라이다.

정부가 실업부조를 포함한 노동시장정책에 재정을 투입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구직기간을 통해 직업능력 향상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임시직의 비중이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높은 수준인데도, 직업이동이 잦지 않으며 임시직에서 3년 후 정규직 이동가능성이 약 70%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네덜란드보다 유연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노동현실은 정반대다. 근속년수는 가장 짧고 정규직 전환가능성은 11%에 불과하며, 이는 결국 임금격차의 확대와 높은 수준의 빈곤율로 가시화되고 있다. 이를 가르는 핵심적인 차이 중 하나는 실업부조를 포함한 노동시장 지출 비용이다. OECD 주요 국가들의 GDP 대비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지출을 살펴보면, 덴마크가 약 3.5%, 네덜란드가 약 2.8% 수준이며, 독일은 1.7%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0.57%로 덴마크의 1/7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문제는 노동유연성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민들 삶의 양태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적 복지제도에 기반을 둔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미리 대비하는 선제적 복지국가(proactive welfare state) 방식을 통해 유연성은 높지만 불평등 및 양극화는 상대적으로 완화되고 있다(Blossfeld et al. 2011).

과거 발전주의 시절,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을 위해 도로, 항만 등의 기간산업을 통해 국가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제 우리 정부는 21세기형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실업부조는 바로 청년의 성장을 위해 국가가 구축해야 할 21세기형 인프라이다. 지금의 청년에게는 직업능력향상과 안정적인 소득보장이 결합된,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가 절실하다. 이것이 기반이 될 때 청년 문제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Blossfeld, Hans-Peter et al. 2011. Globalized Labour Markets and Social Inequality in Europe. NY: Palgrave Macmillan
Bonoli, Guiliano. 2005. The Politics of the new social policies: providing coverage against new social risks in mature welfare states. Policy & Politics 33(3): 431-49.
Moel, Nathalie et al. 2012. Towards a Social Investment Welfare State? : Ideas,Policies and Challenges. Bristol: The Policy Press


태그:#청년정책, #청년수당, #서울시, #청년공약, #실업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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