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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노을이 드리운 세운상가의 낡은 계단을 다섯 명의 청년들이 줄지어 오른다. 오묘한 그림이 있는 버튼과 깃발을 매달고 있는 폼이 여행객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들 앞으로 서울 종로 일대의 마천루들을 앞마당 삼아 드리운 공간이 펼쳐진다. 칠이 벗겨진 난간과 공사현장에서 볼 법한 폐 철물들을 지나니 200/20이라고 적혀진 정체모를 빨간 동그라미 간판이 보인다.

다섯 평이 될까 싶은 이 작은 공간은 서점이다. 안에서 사장일 것 같지 않은 사장과 지인들이 하나뿐인 테이블에서 회의를 하다 자리를 비켜주고, 서점 같지 않은 서점에서 손님 같지 않은 손님들이 책을 둘러보고 책을 몇 권씩 구매한다.

위의 풍경은 어느 금요일 저녁 종로 시내의 한켠에서 벌어진 실제 모습이다. 청년들은 강동구에 거주하거나 강동구 소재 직장에 다니고 있는, 혹은 작은 책방에 관심이 많은 청년들로, 지난 6월 24일 <북금투어>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책방 '200/20'에 방문한 북금투어 참가자들
 책방 '200/20'에 방문한 북금투어 참가자들
ⓒ 청년아지트 강동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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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금투어는 한 달에 하루쯤은 '불금'(불타는 금요일의 줄임말) 아닌 '북금'(book+금요일) 으로 보내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행사다. 이 행사를 주최한 '청년아지트 강동팟(아래 강동팟)' 소속 청년들은 매달 마지막주 금요일 퇴근 후에 모여 서울 시내 '작은 책방(독립서점이라고도 한다)'들을 둘러보고, 책을 읽거나 구매한 뒤 서로 고른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투어를 통해 고른 책들은 강동구 성내동 소재의 '강동팟'이라는 이들만의 공유 공간에 진열해 함께 읽고, 연말에는 좋은 글귀들을 골라 낭독회를 갖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금요일에 술집이나 클럽이 아닌 서점을 여행한다는 설정도 독특한데 왜 하필 '작은 책방'일까? 그리고 '작은 책방'이란 무엇일까? 그런데 이 행사를 기획한 주인공이 바로 나다.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면,

"요즘 작은 책방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잖아요. 작은 책방이라고 하면 단지 규모가 작은 서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죠. 독립출판물이라든지, 대형 서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책들 중에서 개성 넘치고 좋은 가치를 담은 책들을 서점 주인이 골라서 추천해주는 그런 책방을 저는 작은 책방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아직까지 강동구에는 그런 성격을 가진 서점이 없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작은 책방들을 찾아다니다가, 이런 공간과 이런 곳에서 소개하는 책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접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행사를 만들게 됐어요."

[북금 관련 관련 웹툽]
'불금'은 가라! 우린 '북금'을 즐길 테다

"무...무셔" 불금의 홍대앞 

독립출판물이란 대형 출판사가 아닌 소규모출판사 혹은 개인이 직접 책의 기획, 제작, 유통 등의 전 과정을 담당하는 형태의 출판물을 말한다. 이런 책들은 대체로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를 담고 있거나, 독특한 디자인과 판형으로 제작되며, 열악한 제작여건상 소량만 인쇄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대형서점이나 인터넷서점을 통해 만나보기 쉽지 않은데 이 독립출판물 가운데는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거나, 작지만 아름다운 삶의 가치들을 조명하는 의미 있는 책들도 적지 않다.

서점 '200/20'에서 진열된 책을 둘러보고 있는 이진영 강동팟 대표. 이 진열대에는 도시공간과 인문학을 테마로 한 책방 주인의 애장도서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서점 '200/20'에서 진열된 책을 둘러보고 있는 이진영 강동팟 대표. 이 진열대에는 도시공간과 인문학을 테마로 한 책방 주인의 애장도서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 청년아지트강동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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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금투어를 통해 독립출판서적을 꼭 한두 권 씩 사게 되요. 쉽게 구하기 어렵기도 하고 희소성과 소장가치가 있어서 이 책들을 보고 있으면 뭔가 특별해진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편집이나 디자인이 자유로워서 볼거리가 많아요." - 이진영, 강동팟 대표이자 북금투어 참가자


한편, 이날 5명의 청년들은 청계6가부터 전태일다리까지 이어지는 청계천 헌책방거리와 '200/20'(세운상가 3층에 위치한 작은책방으로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을 그대로 책방 이름으로 지었다), 대학로에 위치한 '이음책방'까지 세 곳의 서점을 둘러봤다.

이들은 연신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라든가, "놀러나 와봤지 이런 곳에 서점이 있을 줄은 몰랐어"라며 진짜 여행객처럼 셔터를 눌러대기도 했다. 뒤풀이로 들어간 주점에서는 언제나처럼 테이블 위에 각자 고른 책들을 죽 펼쳐두고 찍는 인증샷 마무리도 잊지 않았다.

북금투어는 지금까지 4월부터 6월까지 총 3회 진행됐다. 시작된 이래로 이들이 방문한 서점은 연남동 '책방피노키오'와 '헬로인디북스', 홍대 앞 '땡스북스', 염리동의 '여행책방 일단멈춤'과 '퇴근길 책 한잔', 그리고 이 날 방문한 세곳까지 총 8곳. 많은 수의 책을 갖다놓을 수 없는 작은 책방의 형편상 책방 주인의 취향과 책방 콘셉트를 반영해 선택된 다양한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작은 책방 투어의 또다른 매력이다.

'책방이음' 진열대 한 켠에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라는 주제로 선별된 책들이 전시돼 있다. 책방이음을 비롯한 많은 책방들에서 주제가 있는 갤러리 전시 및 강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곤 한다.
 '책방이음' 진열대 한 켠에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라는 주제로 선별된 책들이 전시돼 있다. 책방이음을 비롯한 많은 책방들에서 주제가 있는 갤러리 전시 및 강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곤 한다.
ⓒ 청년아지트강동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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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책방'에서 책을 둘러보고 있는 청년들
 '이음책방'에서 책을 둘러보고 있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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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유난히 페미니즘 혹은 젠더 이슈와 관련된 책을 고른 참가자들이 많았는데, 이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로 '여성혐오'에 대한 관심과 사유가 높아진 사회적 배경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책방이음'에는 여성혐오 관련 특별 진열공간을 마련해두기도 했으니, 작은 책방은 책 구매자의 취향과 책 판매자의 취향, 그리고 사회적 이슈의 흐름까지 연결되는 역동적인 담론의 장이 되기도 한다.

"작은 책방은 그 주인의 성향도 아는 재미, 특별함이 있어 좋아요. 특히 독립출판물은 나와 같은 개인이라는 생각에 정감이 가고 공감이 많이 가요. 북금투어를 통해 책을 읽기만 하던 나도 독립출판물을 한번 내보고 싶다는 버킷리스트가 생겼습니다." - 박지연, 성내동 거주. 북금투어 참가자

"항상 대형서점만 가다가 작은 책방에 가보니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90년대 동네 책방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정겹기도 하고요. 투어를 참가한 이후로는 길가다 작은 서점이 있으면 망설임없이 들어가서 구경할 용기가 생겼달까요. 혹시 작은 책방에서 책을 구입할지 몰라 현금을 준비해 다니고 있습니다." - 김진, 인천 거주. 북금투어 참가자

"(작은책방을)한번 가봐야지 생각만 했지 가보진 못했는데, 직접 방문해서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어요. 앞으로 더 많은 독립서점들을 방문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어요." - 권진영, 가산동 거주. 북금투어 참가자

서점 '땡스북스'에서 북금투어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고 있다. 이화여대, 홍익대 등 대학가가 많은 마포구에는 가장 많은 '작은 책방'들이 분포돼 있다.
 서점 '땡스북스'에서 북금투어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고 있다. 이화여대, 홍익대 등 대학가가 많은 마포구에는 가장 많은 '작은 책방'들이 분포돼 있다.
ⓒ 청년아지트강동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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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퇴근길 책한잔'에서 책을 읽고 있는 북금투어 참가자.
 서점 '퇴근길 책한잔'에서 책을 읽고 있는 북금투어 참가자.
ⓒ 청년아지트강동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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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리동 골목 한 켠에 조용히 자리잡은 서점 '퇴근길 책한잔'에서는 다양한 독립출판 서적을 만날 수 있다.
 염리동 골목 한 켠에 조용히 자리잡은 서점 '퇴근길 책한잔'에서는 다양한 독립출판 서적을 만날 수 있다.
ⓒ 청년아지트강동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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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규모화로 인해 영세한 동네서점들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새롭게 시도되는 독립출판물 전문서점과 작은책방들이 독특한 문화시장을 구축해 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잠깐의 바람이나 유행처럼 소비되기만 하는 문화현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감성과 감성의 교류로 번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북금투어에는 담겨 있다.

12월까지 절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내년 북금투어 시즌2를 고민하고, 언젠가는 각자의 동네에도 사람과 인문학적 감성의 교류 공간으로써 작은 책방이 생겨나길 고대하는 청년들이다.

북금투어에서 참가자들이 구입한 책들.
 북금투어에서 참가자들이 구입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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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금투어에서 참가자들이 구입한 책들.
 북금투어에서 참가자들이 구입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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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작은책방, #독립서점, #북금투어, #청년아지트강동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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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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