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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바위의 봄 풍경 -
▲ 병풍바위의 봄 풍경 -
ⓒ 이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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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울창한 숲과 봄이면 벚꽃, 수진달래가 절경을 이루는 아름다운 자연과 인공으로 만든 교량 세 개가 조화를 이루는 경북 팔경 중 제1경인 진남교반(鎭南橋畔)이 있다.

이곳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명시된 낙동강 발원지 초점(현 조령)에서 발원한 조령천이 흘려내러 오다 가은천과 합류, 영강이 되어 돌아나가는 곳인데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이 길게 이어진 병풍바위가 있다.(관련기사 : 낙동강 발원지 '초점'을 아십니까)

여기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일본 육군 헌병 이등군조 대산변장이 전선 감시업무 중 사망한 것을 기리기 위한 마애비(磨崖碑, 석벽에 글자나 그림 불상 따위를 새긴 비)가 하나 새겨져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 이전에 세워졌다.

마애비 각자 -
▲ 마애비 각자 -
ⓒ 이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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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은 고육군헌병이등군조대산변장군지비(故陸軍憲兵二等軍曹大山辨藏君之碑)이고
그 옆에 전선감시귀도익사(電線監視歸途溺死) 명치삼십일년칠월삼십일(明治三十一年七月三十日)이라고 새겨져 있다.

비문 내용을 해석하려면 비문 중 생소한 문구를 알아보아야 하는데 첫째가 이등군조(二等軍曹)이고 다음은 명치삼십일년(明治三十一年)과 죽은 사람의 이름인 대산변장(大山辨藏)이다.

그래서 알아본 결과 '이등군조'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육군의 계급체계 중 하나로 군조(軍曹)가 있고 그 위에 이등군조, 일등군조(一等軍曹)가 있다. 이것을 현 한국 육군 계급체계에 적용하면 정확한 대응은 아니지만 모두 부사관으로서 중사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다음은 '명치삼십일년칠월삼십일'인데 '명치'는 일본 메이지 천황 시대 연호(1868-1912)로서 '명치삼십일년'은 1898년에 해당되고 '대산변장'은 '오오야마헨조우'(おおやまへんぞう)로 표기해야 할 것 같다.

마애비 각자 2 -
▲ 마애비 각자 2 -
ⓒ 이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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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마애비 내용을 종합하면 "고 육군 헌병 이등군조(중사) 대산변장(오오야마헨조우-말할 땐 오를 장음으로 한 오야마) 군의 비이며 전선(電線) 감시활동을 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익사했다. 그래서 1898년 7월 30일 비를 세웠다"가 된다.

그렇다면 이 마애비의 발견으로 생각해 보고 규명해야 할 것은 그 당시의 시대 및 정치 상황과 아직 경술국치(1910년)가 있기 전인데 일제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를 알아야 하고 전선의 관리를 왜 일본군 헌병이 했고 어느 군대 소속이 관리, 감시 감독했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1898년은 고종 때에 사용한 대한제국의 첫 번째 연호인 광무(光武) 2년이고
갑오개혁(1894), 을미사변(1895)이 있었고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다툰 청일전쟁(1894년 6월~1895년 4월)이 끝난 후 3년이 지난 시점이며 그 후 을사늑약(1905년), 러일전쟁(1904∼1905)이 있었다.

이런 마애비 설치 전후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일본 육군 헌병이 문경에 주둔, 임무를 수행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조사, 연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병풍바위와 마애비 위치 1 -
▲ 병풍바위와 마애비 위치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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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본 육군 헌병에 대해서 알아본 결과 일제는 1881년 조례를 제정하고 헌병을 설치하였고 육군 헌병은 행정, 사법 경찰을 맡은 병과였고 민간인에게도 일반경찰 업무를 실시하여 검문, 체포, 구금, 수사 등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조선과 타이완에서는 헌병이 억압적인 식민통치를 하는 도구였다. 한반도 주둔 헌병은 1907년 제3차 한일협약에 따라 구한말 경찰권은 일본에 위임되었고 독립운동을 억압하고 항일봉기에 대비하는 데 필요한 조직이었다.

그리고 전선(電線) 감시활동을 했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문경이 우리나라 석탄생산에서 강원도 다음인 제2 탄전지대인 바 일제가 지질조사를 끝내고 침략 시 석탄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사전 전력을 공급한 시설이 아닌가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남한 최초의 광산인 문경탄광(대성탄좌)은 1926년 개광되었고 일제가 수립한 은성광업소는 1938년 개광됐다. 이 지역 전기공급을 위해 조선전업(주) 강원도 영월화력발전소에서 1941년에 고압 철주를 설치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영월발전소 건설 43년 전인 1898년에 전선 감시라고 하니 그 당시 전선이 뭔지 알 수 없고 앞뒤가 맞지 않아 이 또한 조사해 보아야 할 과제이다.

병풍바위와 마애비 위치 2 -
▲ 병풍바위와 마애비 위치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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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에 있는 전선이 꼭 송전시설의 전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알아보니 일제가 1884년에 일본-부산 간 해저전선을 설치하였다. 청일전쟁 이후 서울-인천 간 서로전선을 불법적으로 접수하고 이어 서울-부산 간 군용선도 불법적으로 가설하는 등 통신선 확보에 전력을 기울였다.

청일전쟁이 끝난 뒤에도 헌병에게 각 전선을 지키도록 하였고 1896년 이후 일반 전신업무를 취급했는데, 임시 육군전신대와 임시 헌병대를 두어 이를 운영하도록 했다는 자료가 있음을 보면 이는 전기가 아닌 통신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마애비의 주인공도 그런 역할을 했던 헌병일 것이다.

참고로 이 마애비 사진은 2016년 3월 21일 촬영한 것이며 문경구곡원림보존회가 추진하는 21세기 신 구곡원림 "영강구곡" 설정을 위한 현지답사 시(2015년) 제8곡 병암에서 발견한 것을 시간을 두고 조사하여 영강구곡 설정 선포식 때 발표하려 하였으나 더 많은 사람에게 미리 알려 관련 자료의 협조를 받기 위해 나름 미애비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먼저 조사, 보도하게 되었다.

병풍바위 봄 풍경 2 -
▲ 병풍바위 봄 풍경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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