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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저녁 신촌의 라이브 카페 '인디톡'에서 <둥글이의 유랑투쟁기>(도서출판 한티재) 북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북콘서트는 '엄숙주의와 형식주의를 거부하는 지구영웅 둥글이의 세상과 맞짱'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행사는 가수인 이지상 성공회대 교수가 사회를 맡고 장하나 전 국회의원과 황진미 사회평론가가 게스트로 참석해 얘기를 나눴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방하는 전단지를 제작해 명예훼손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둥글이 박성수씨가 지난 2015년 4월 21일 오전 대구수성경찰서 앞에서 개사료를 뿌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방하는 전단지를 제작해 명예훼손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둥글이 박성수씨가 지난 2015년 4월 21일 오전 대구수성경찰서 앞에서 개사료를 뿌리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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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앞 개사료 뿌리기' 등 사회 투쟁을 웃음과 유머로 승화시키기로 유명한 '둥글이'인 만큼 이날 콘서트도 그의 남다른 입담에 연신 웃음이 터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는 이야기 도중 관객의 열렬한 호응이 나오면 주저 없이 일어서서 노란 종이카드에 계좌번호가 찍힌 '구원증'을 뿌리는 등 둥글교 교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세상 유랑을 떠나기 전에 사회복지사로 일한 적이 있다. 사회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그들의 열악한 삶을 체험한 시기였다. 그런데 정권이 한번 바뀌면 엄청난 복지 예산이 단번에 삭감되는 것을 보고 '내가 여기서 이분들을 도울 게 아니라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유랑을 시작한 것은 2006년 7월이었어요. 전국의 모든 지자체를 방문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핵발전소가 있는 전남 영광에서 출발했죠. 전국의 초등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에게 무료 전단지를 나눠주며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알리고 욕심을 줄이는 삶을 전하자는 의도였어요. 이동은 무조건 걸어서 하고 밤에는 텐트를 치고 길에서 잤어요.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고 보니 길에서 자는 것이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여관을 찾아가 '하루 일을 도울 테니 오늘 저녁 잠자리를 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는데 거절을 당했어요. 그때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지니'라는 성경 구절이 퍼뜩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교회를 찾아갔죠."

아침에는 분명히 전도사가 '교회에 그런 공간이 있다. 저녁에 와서 목사님께 물어보라'고 했는데, 막상 저녁 때 다시 갔더니 '그런 장소가 없다'며 거절당했다. 그 후 어느 지역을 가 봐도 교회 문을 두드리면 70% 정도는 거절을 하더란다. 절에도 갔다. 어느 암자 앞에 '세상살이에 지친 나그네가 쉬어가는 곳'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스님에게 '이 아래 주차장 자리에 텐트를 쳐도 되겠느냐'고 물었는데 거두절미하고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가난한 이 돕는 것보다 사회구조 바꾸는 것이 더 중요"

<둥글이의 유랑투쟁기>는 2014년 12월에 발간되었으나 저자가 작년에 8개월간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출간 기념행사가 연기되었다.
 <둥글이의 유랑투쟁기>는 2014년 12월에 발간되었으나 저자가 작년에 8개월간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출간 기념행사가 연기되었다.
ⓒ 도서출판 한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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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예수의 사랑과 부처의 자비가 머무는 곳이 과연 어디일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마침내 그런 곳을 찾았죠. 공중화장실이었어요. 그 옆에 텐트를 쳐도, 안에 들어가서 물을 받아도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 곳. 지위고하를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들어간 순서대로 볼일을 볼 수 있는 곳. 거기서 제가 참 믿음을 얻어서 '화장신'을 모시는 '둥글교'가 탄생한 거죠."

유랑 다니던 중 제주 강정마을에서 활동하면서 '교주님'이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그는 소위 '역마살'이 전혀 없는 사람이란다. 오히려 조용한 곳에 홀로 틀어박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차라리 외딴 동굴이나 산에 들어가 혼자 있었으면 평화롭게 지냈으련만, 그가 선택한 유랑은 도심 한가운데 텐트를 치고 머무는 것이었다.

그 유랑의 길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 '대중 속의 고독'이었다. 아이들이 돌을 던지거나 개들이 영역표시하고 지나가는 일은 다반사였다. 주민 신고가 들어왔다고 경찰이 조사 나오는 일도 빈번했고, 경북 영천에서는 간첩으로 몰린 적도 있다.

"사회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내가 그전에 가지고 있던 가치나 욕망을 하나씩 털어냈죠. 그리고는 자연히 누가 주입한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게 됐어요.

요즘 현대인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요구하는 삶을 살아가잖아요. 하지만 저는 나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활동했거든요.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하지 않고. 작년에 개사료 뿌리고 전단지 뿌렸던 것도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여러분께도 권하고 싶어요. 온전히 홀로 자유롭게 떠나보는 것은 참 중요한 경험이에요."

둥글이의 유랑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방문하지 못한 지자체가 40~50여 곳 남았기 때문이다. 그도 때로는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수년간의 유랑 생활로 이제는 무릎도 삐끗거리고 골반도 좋지 않다. 몸무게 절반이 넘는 배낭을 메고 일어서면 어깨가 10cm는 쳐진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것, 끝까지 다 다녀보자는 생각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에게 최소한 한 번이라도 인간과 자연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고 싶어요. 저 자신도 자라면서 어른들에게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커서 어느 날 갑자기 그런 것에 관심 갖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기억이라도 하나 만들어주고 싶어서요." 

장하나 "현대 사회에 보기 드문 캐릭터"

그가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손바닥만 한 전단지 '지구특공대 임명장'에는 지구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땅이 사막화된다는 내용이 알기 쉬운 만화로 그려져 있다. 뒷장에는 '많이 갖는 욕심보다 나누고 비우는 사랑의 마음이 중요하다'며 ▲ 남이 사는 대로 따라 살지 말고 자신의 생각으로 살기와 ▲ 그 생각을 실천하기, 두 가지를 강조한 그림을 그려놓았다.

이날 게스트로 참석한 장하나 전 국회의원은 "둥글이님은 현대 사회에 되게 보기 드문 캐릭터다. 이렇게 자기 생각을 철저하게 실천에 옮기는 사람, 언행일치가 완벽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저나 제 주변 사람들도 사회 참여운동을 하노라고 했지만, 이렇게 자기 생각을 완전히 삶에 투영해서 실천한 사람은 없었어요. 강정에서부터 이분에게 많은 영감을 받으면서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의 자세를 배웠죠. 또 이런 자세가 오늘날 한국인들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사람들은 백화점에 나열된 불과 수백 가지 물건을 놓고 자기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줄 착각하며 사니까요."

지난 8일 신촌 '인디톡'에서 열린 <둥글이의 유랑투쟁기> 북콘서트. 왼쪽부터 둥글이 박성수씨, 장하나 전 의원, 황진미 사회평론가, 이지상 교수.
 지난 8일 신촌 '인디톡'에서 열린 <둥글이의 유랑투쟁기> 북콘서트. 왼쪽부터 둥글이 박성수씨, 장하나 전 의원, 황진미 사회평론가, 이지상 교수.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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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 사회평론가는 "한국 사람들은 민주화투쟁을 해도 누가 동원하면 나가는 식으로 한다"며 "스스로 사상가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 진짜 사상가가 얼마나 있겠느냐. 사상가는 철학과 자기 삶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이분이 진짜 사상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둥글이의 유랑투쟁기>에 그런 내용이 잘 나와 있으니 꼭 구입하시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공개 투쟁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느냐"는 관객의 질문에 둥글이 박성수씨는 "사실은 지금도 자다가 구치소에 있을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 현재 청와대 모욕죄 등으로 진행 중인 사건의 형량이 늘어날 생각을 하면 가위에 눌릴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권력의 개 역할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인 내가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난단다.

"정권이 우리를 수사하고 벌금을 때리는 이유는 우리가 두려워하고 뒤로 물러서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웃으며 싸우지만 가끔 두려운 것도 사실"

그의 SNS 계정은 유명 연예인의 그것 못지않게 인기 절정이다. 게시물을 한번 올리면 '좋아요'가 기본 300~400건, 어떤 것은 천 건도 달린다. 심각한 사회 투쟁 사안도 포복절도할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둥글교 교주에게 사람들은 '둥글레야'(둥글교+할렐루야의 합성어)를 외치며 기꺼이 복종한다.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장난기가 넘쳤던 것은 아니다. 십년 전만 해도 웃음기 하나 없는 심각한 성격이었다는 것이다. 

처음 유랑을 시작했을 때 만든 전단지는 앞뒤 빽빽하게 채운 작은 글씨에 심각한 주장으로 가득했다. 몸에다 '공공의 적 군산시장, 강현욱 도지사'라고 쓰고 만날 돌아다녀도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먹고사니즘'에 지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친근하게 다가갈까를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이 지금과 같은 웃음 코드다.

"싸움도 웃으면서 하면 힘이 나잖아요. 웃음의 힘이 대단한 것 같아요."

오후 9시쯤 북콘서트를 마치고 사인회와 뒤풀이가 이어졌다. 줄을 서서 내민 책 속표지에 그는 '생활 속의 작은 실천'이라는 문구를 써주었다.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이 책에는 제가 유랑하면서 겪은 일들뿐 아니라 저를 괴롭혔던 경찰을 따라가서 끝까지 싸운 얘기, 강정마을에서 '너희 세금 얼마나 내느냐'면서 신부님들께 천 원짜리를 던져준 모 경찰의 이야기가 세세하게 담겨있어요. 지금 제 머릿속에는 책 열 권을 쓸 분량이 들어있는데 이 책이 많이 팔려야 또 다음 이야기를 쓸 수 있겠죠."


태그:#둥글이, #박성수, #둥글이의유랑투쟁기, #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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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을 무의식적인 소비의 노예로 만드는 산업화된 시스템에 휩쓸리지 않는 깨어있는 삶을 꿈꿉니다. 민중의소리, 월간 말 기자, 농정신문 객원기자, 국제슬로푸드한국위원회 국제팀장으로 일했고 현재 계간지 선구자(김상진기념사업회 발행) 편집장, 식량닷컴 객원기자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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