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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대중교통 이용자 수가 어느덧 1100만 명이 넘어갈 만큼, 대중교통은 시민들의 '발'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몇몇 승객들의 '안하무인'적 행태는 다른 승객들에게 큰 불쾌감을 주는 한편,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대중교통 이용 자체를 꺼리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대중교통 무법자'들을 직접 겪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대중교통 이용에서의 시민의식을 진단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한국에는 참 많은 산이 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은 명산도 있고, 주민들이 운동 삼아 오르는 작은 산들도 있다. 또 산 중에는 대중교통, 특히 전철을 이용해서 갈 수 있는 산들도 많은데 그렇단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등산객들이 전철을 이용한다는 말과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전철에서 등산객은 민폐의 주범 중 하나로 꼽힌다. 아마 전동차 안에서 그들이 '공공도덕'이라는 것은 애초에 배우지 못한 양 행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칠 것이 없는 등산객들

'경춘선 술판'으로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사진 (2012년 3월)
 '경춘선 술판'으로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사진 (2012년 3월)
ⓒ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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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철, 특히 노선에 산이 많은 수도권 전철 경춘선을 매우 자주 이용하며 생활했는데, 그러면서 수많은 등산객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진상짓' 또한 매우 자주 볼 수 있었다. 경춘선에서 본 등산객들은 전철 양쪽 의자에 주르륵 앉아 서로 시끄럽고 소란스럽게 떠들곤 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을 껄껄대며 만들어내는 모습은 저절로 표정을 구기게 한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고 자세가 흐트러진, 누가 봐도 술기운이 얼큰하게 오른 이들도 함께 볼 수 있었는데, 대체로 그들이 더 소란스럽고 더 시끄러웠다.

내가 타는 역은 경춘선의 수많은 산들을 지난 후에 있는 역이기 때문에, 오후에 서울 방향으로 타면 앉을 자리가 없었다. 자리에 못 앉아 오는 등산객들도 부지기수였는데 그들은 서서 손잡이를 잡고 오는 대신 바닥에 자리를 펴고 앉곤 했다.

조그만 철제 간이의자는 물론 돗자리를 펴고 앉아 오는 이들도 있었는데, 감이나 사과 따위의 과일을 (산에서 미처 다 못 먹었는지) 깎아 먹는 이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막걸리를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 떨어져 있는 누군가에게 음식을 권하고 먹는 과정에서 소음이 발생하기도 했다. 코레일에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해서인지 그 수가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렇게 자리를 펴고 앉아 취식과 음주를 하는 이들이 종종 존재했다.

또 그들 중 일부는 집채만 한 배낭 따위를 메곤 했는데 '등산' 이 아닌 히말라야나 에베레스트를 '등정' 하는 것 같은 거대한 배낭은 다른 승객들을 방해하고 통로를 막기에 딱 좋았다. 덕분에 만원 전철에서 그들의 거대한 배낭을 피해 지나가거나, 자리에 앉아도 그 배낭 때문에 내 자리가 줄어드는 경우도 무척이나 많았다.

등산객 중 남성들은 꽤나 높은 확률로 '쩍벌'을 하곤 했는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시끄럽게 떠드는 그들은 눈치를 줘도 다리를 오므릴 줄 몰랐고, 이때는 나 또한 완력으로 다리를 벌려 그들이 다리를 강제로 오므리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끝도 없이 다리를 벌렸기 때문이다.

'자전거족', 휠체어 공간까지 침범한다

경춘선은 자전거로 가득찬다 (해당 사진은 경춘선과 관련 없음)
 경춘선은 자전거로 가득찬다 (해당 사진은 경춘선과 관련 없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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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이용하는 다른 승객에게 '등산객'으로 분류되는 이들 중에는 위에서 이야기한, 등산복을 입고 등산을 하는 이들 말고도 자전거를 타는 이들도 존재한다. (편의상 이들 또한 등산객으로 묶어서 이야기하자면) 이 자전거 등산객들 또한 역시 '진상 승객'의 부류에 포함되지 않을 리 없는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산에 오르는 이들이 에베레스트 등정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등산복과 집채만 한 가방을 가지고 있다면, 이들은 몸에 딱 달라붙는 라이딩 수트와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자전거를 가지고 전동차를 점거(?)하곤 했다.

전철의 양 끝 칸에 있는 자전거 거치대는 그들의 자전거를 수용하기엔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인지 그들은 잘 열리지 않는 오른쪽 문에 자신들의 애마를 덕지덕지 기대 놓았고, 노약자석 하나 대신 만들어 놓은 휠체어용 공간에도 아무렇지 않게 자전거를 기대 놓기도 했다.

실제로 내가 타고 한두 역 정도 지나서 전동휠체어를 타신 분이 승차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자전거를 둔 이들은 자전거를 치우기는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그 전동휠체어는 문과 문 사이의 통로에서 삼십 분여를 불안하게 덜컹거리며 가야 했다. 당연히 문과 건너편 문 사이의 공간은 휠체어로 인해 꽉 찰 수 밖에 없었고, 그 다음 몇 개의 역에서 타는 승객들과 종착역인 상봉역에서 내리는 승객들 역시 불편함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무법자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KBS News9, <[현장추적] '난장판' 주말 경춘선...술판까지> 보도 중
 KBS News9, <[현장추적] '난장판' 주말 경춘선...술판까지> 보도 중
ⓒ KBS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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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철을 비롯한 대중교통에서 등산객이나 자전거를 타는 이들의 행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중장년인 경우가 많고, 수적으로도 많다. 그리고 대부분 고가의 장비를 가지고 있는데, 그 때문에 거리낌 없이 진상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꽤 많이 하기도 했다.

남들이 자신(들)에게 함부로 하거나 제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질서를 무시한다는 것인데 일종의 군중심리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 공간에 자신들만 있는 양 행동하던 등산객들 때문에 통학하는 동안 하루에 최소 30분 이상을 경춘선에서 보내야만 했던 입장에선 그 시간이 정말 고역일 때가 많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에서 이러한 등산객의 민폐 행위들에 기분 나빠하는 이들이 많았고, 법으로 등산을 금지시키거나 등산객의 대중교통 이용을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짜증 섞인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올바른 농담은 아니었다지만).

그만큼 등산객들은 많은 대중교통 이용자들에게 '공공의 적' 이었고 그들의 진상 행위를 어떤 식으로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하고 있었다.

'진상'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진상은 NO
 진상은 NO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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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승객의 범람을 막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통제의 강화' 일 것이다. 실제로 등산객들이나 자전거 이용자들이 흔히 하는 행동들 중에는 철도안전법 위반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일종의 규칙 혹은 상식으로 여겨지는 공공도덕을 어긴 행동들이 매우 많다.

예컨대 바닥에 앉는 것이나, 다른 승객들을 생각하지 않고 소란을 피우는 것이나, 허용된 시간 외에 자전거를 가지고 전철에 탑승한다거나 자전거로 문과 길을 막는 것 등이 그렇다. 그것을 법의 영역이나 규칙 혹은 도덕의 영역에서 다루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고, 또 빠르다. 범칙금이나 하다 못해 철도경찰의 잔소리라 해도, 실질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생기는 경우에 규칙의 위반은 어쨌든 줄어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이 사각지대 없이 잘 작동하느냐' 거나 '과도하게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차원의 문제로 해석하자면 골치가 아파지기 마련이다. 법이나 규칙에 의한 통제는 이러한 방식의 딜레마에 빠지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 그나마 제일 현실적으로 보이는 대안은 아무래도 '시민 의식의 개선'일 것이다. 너무 교과서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이용자의 의식을 개선하는 것 또한 분명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떠드는 등의 소란을 피우거나 전동차 바닥에 자리를 깔고 음주나 취식을 하는 행위 등을 하면 안 된다는 의식을 고취하는 것이 매우 느린 방법일지라도 꼭 필요하다.

다만 그 의식의 개선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나갈지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용자들의 의식 고양과 개선을 이끌어 나가고 일종의 사회적 컨센서스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등산객을 비롯한 대중교통 진상들이 아니라, 여러 정치사회적, 혹은 문화적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상들에 의해 소외되거나 불편을 특히 겪었을 이들(예컨대 자전거에 의해 자리를 빼앗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중년 남성 등산객의 '쩍벌'에 대항하지 못했던 여성 등) 의 생각을 테이블의 가운데로 가져오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태그:#등산객, #진상, #경춘선, #대중교통,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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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글로 기억하는 정치학도, 사진가. 아나키즘과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자리(Frontier) 라는 다큐멘터리/르포르타주 사진가 팀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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