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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국민연금공단이 근 18년 동안, 전국 380여 개 대학 상대로 매년 신입생·졸업생들의 주민번호와 전화번호 등을 수집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국민연금공단 유튜브 홍보영상에 나온 국민연금 본부(전주) 모습.
 국민연금공단이 근 18년 동안, 전국 380여 개 대학 상대로 매년 신입생·졸업생들의 주민번호와 전화번호 등을 수집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국민연금공단 유튜브 홍보영상에 나온 국민연금 본부(전주) 모습.
ⓒ NPS국민연금 유튜브영상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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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전화 한 통이었다. 한 사립대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A씨는 지난 5월 중순 <오마이뉴스>에 전화해 "공공기관인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대학생 학적사항 전산정보 자료제공 요청이 왔다"며 "연금공단은 최근 1년간 본교 신입생·졸업생 2500여 명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학업년수·입학일자·졸업일자 등을 요청했다, 대다수가 미가입자일 것으로 보이는데 개인정보 불법수집 아니냐"라고 말했다.

확인해본 결과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였다. 국민연금공단(문형표 이사장) 가입지원실 관계자와 관련 법령을 확인한 결과, 국민연금이 가입자 관리 등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면 대학 등 기관은 이를 제공하게 돼 있다. 특히 공단이 요청한 자료 중 주민등록번호·전화번호 등은 통상 '개인정보'에 속하는데, 이 중 주민번호는 '주민등록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료'라고 쓰여 있어 법적 근거가 있었다.

다만 학생 전화번호의 경우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었다. 전화번호와 관련해서는 법령에 명확히 '전화번호'라고 쓰여 있지 않고, '학생에 관한 자료'라고만 명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연금공단 측은 대학생들의 전화번호가 '학생 자료'에 포함된다고 해석해 이를 대학에 요청하고 있었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전국 대학들은 이를 제공하고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놀라웠다. 국민연금공단이 언제부터, 얼마 동안 대학생들 개인정보 수집을 해왔는지 궁금해 정보공개청구로 알아본 결과, 공단 측은 "1998년도부터, 서울대학교 외 382개 대학교"에 자료를 요청해 왔다고 답했다. 국민연금공단은 근래 18년 동안, 전국 380여 개 대학을 상대로 매년 신입생·졸업생들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등을 수집해왔던 셈이다.

그러나 연금공단 측이 목적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해온 것은 아니다. 공단 측은 자료요청 목적과 관련해 "학생 불편을 덜어주기 위함"이라며 "적기에 국민연금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만18세 이상 국민은 모두 국민연금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데, 그중 납부예외자로 처리될 학생들의 정보를 받아 납부예외 신고 불편을 덜어주려 했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연금공단 측 답변이다.

"국민연금법 제9조(지역가입자) 및 제91조(연금보험료 납부의 예외)에 따라, 고등교육법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서 소득이 없는 경우 국민연금 가입대상에서 제외하거나 학업을 마칠 때까지 국민연금공단에 '연금보험료 납부예외 신청' 후 해당 기간 동안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가입확인대상자(학생)의 신고(청) 등 편의를 위해 자료를 일괄 입수하여 납부예외 및 적용제외 처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국민연금공단 측에 정보공개청구한 결과, 연금공단은 1998년부터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전국 380여 개 대학의 학적정보를 수집해왔다고 밝혔다.
 국민연금공단 측에 정보공개청구한 결과, 연금공단은 1998년부터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전국 380여 개 대학의 학적정보를 수집해왔다고 밝혔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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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공단, 과거 10만 건 개인정보 유출... '정보인권' 경각심 필요

행정자치부가 운영 중인 '개인정보보호 종합포털'(www.privacy.go.kr)에 따르면, 개인정보 보호법에서는 주민등록번호를 개인을 구별하기 위하여 부여된 '고유식별정보'로 분류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통상 정보주체로부터 별도 동의를 받거나 법령에서 구체적으로 허용한 경우에만 처리할 수 있으나, 같은 법 15조 3호에 따라 '공공기관이 법령 등에서 정하는 소관 업무 수행을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는 수집이 가능하다.

혹시 연금공단이 학생들 개인정보를 '과잉 수집'하는 것은 아닐까. 관련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묻자,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은 "연금공단 측의 과잉 수집으로 보인다"라고 말했고,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도 "전화번호 수집은 해석의 여지가 있다, 다소 부당하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학생 편의를 제공하려 수집한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 측은 이런 대학생 학적사항 전산정보, 즉 개인정보 수집이 업무를 위한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견해다. 그럼에도 이렇게 수집된 개인정보가 유·노출될 가능성은 남는다. 과거 연금공단 내에 보고된 개인정보 유·노출 현황을 정보공개 청구한 결과, 연금공단에서는 직원들 실수로 2008년과 2010년 약 5100여 건에 이르는 주소 등 유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연금공단 측은 실제 이 문제로 감사를 받기도 했다. 2010년 6월~7월께 국민연금공단 부산콜센터 직원 차량에서 10만 건의 개인 상담기록 정보 자료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자료유출 경위와 개인정보 관리실태를 특별감사했고, 당시 유출 사실을 알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던 연금공단 측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관리·감독 체계를 재점검, 유사 사례 재발을 막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개인정보보호 종합포털'에 소개된 과거 국민연금공단 개인정보 허술한 관리 사례(사진)
 '개인정보보호 종합포털'에 소개된 과거 국민연금공단 개인정보 허술한 관리 사례(사진)
ⓒ 개인정보보호 종합포털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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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정부는 과거 개인정보 유출로 잦은 논란에 시달려 왔다. 2009년~2013년 관공서·공기업 등 공공기관에서 유출된 개인 정보만 439만 건에 이른다고 한다. 정보인권운동에 앞장서는 진보네트워크센터에 따르면, 정부는 2014년 8월 주민번호 수집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주민번호수집 법정주의'로 법을 정비했으나, 예외 허용 법령이 866개에 이르는 등 예외가 많아(2014년1월 기준) 법 취지가 왜곡된다는 지적도 있다.

공공기관 개인정보 유출 '심각'... 작년 국가기관이 받아간 개인정보만 1057만 건

그뿐만이 아니다. 2015년 한 해 경찰·검찰·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이 통신사업자에게 요청해 당사자 동의 없이 받아낸 전화번호·이름·주민번호 등 통신자료 개인정보는 무려 1057만 7079건에 달했다(미래창조과학부 발표). '통신자료 무단수집 피해자' 500명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이 헌법상 '영장주의'에 위반돼 위헌이라며, 지난 5월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 3월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자는 작년에만 44만 명이 늘어 총 2156만 명에 달했으며, 올해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2177만 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2000만 명이 넘는 국민들 개인정보를 국민연금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더욱 각별한 개인정보 보호·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2005년 5월 헌법재판소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헌법상 기본권'이라고 명시하면서, 이는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그 정보주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즉 정보주체가 개인정보 공개와 이용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말한다"고 판시했다. 연금공단 측의 정보 보호뿐 아니라, 정보인권에 관한 국민 자신의 자각과 경각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태그:#국민연금공단, #개인정보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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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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