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KBS의 핵 실험 관련 보도
 KBS의 핵 실험 관련 보도
ⓒ KBS 캡처

관련사진보기


북한 핵문제 타결을 위한 가장 포괄적이고도 실효성 있는 합의는 2005년에 이룬 9.19 공동성명이다. 9.19 공동성명 합의 11주년을 보내는 시점이지만 이 역사적 합의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있다.

북한은 올해 9월에만 이동식 발사대에서 노동미사일을 발사하고, 가장 큰 규모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9.19 선언 11주년 다음날인 20일에는 장거리미사일에 사용할 수 있는 고출력 신형엔진 성능을 시험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준비를 예고하는 듯하다. 북한은 올해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에 성공했다. 이후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발사실험도 성공했다.

노동당 창건일 행사에 대륙간탄도미사일 등장할 가능성

북한의 남은 행보는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이다. 북한은 이를 위해서 하나하나씩 자신들의 개량된 능력을 공개해 나갈 것이다. 90년대 북한의 핵협상을 서방세계에서는 '살라미 전술'이라고 평한 바 있다. 살라미라는 이탈리아 소시지를 잘게 썰어 먹는 것에서 연유된 말이다.

'살라미 전술'이라고 표현하든, '양파 껍질 벗기기'라고 표현하든, '도미노 현상'이라고 표현하든 공통적인 것은 단계적, 점진적으로 어떤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과 현상을 뜻하는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으로 북한의 핵능력이 점점 강화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은 그 과정을 하나하나 공개하면서 위협의 강도를 높일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다음 수순은 이번에 실험한 고출력 신형엔진에 9월 5일 성공했다고 하는 소형화된 탄두를 장착해서 공개하는 것이다.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 행사에서 실시하는 군사 퍼레이드가 공개효과를 극대화할 시기이다.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올해 들어서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무엇보다도 기술 수준이 전문가들의 예측을 벗어나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태평양작전지대에서 미군기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적대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에 대해 '북한이 G20에 맞춰서 미사일을 쐈다'거나, '사드 배치에 경고하기 위해서 SLBM을 쐈다'는 등 북한의 도발적 행동과 그 시점의 상관관계를 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북한이 어느 시점에서 쐈냐가 본질이 아니다. 북한이 매번 성능을 개량하고 있다는 것이 본질이다. 본질을 놓치면 어느 사이에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은 그야말로 '괴물' 수준이 될 것이다.

북핵과 미국 군산 합체의 자웅동체

북한의 도발적인 핵과 미사일 능력 강화에 대해 국제 사회는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를 취하겠다'는 말로 대응하고 있다. 한미가 사드 배치를 결정한 이후에도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로 별다른 창의적 해법을 못 찾고 이런 고답적인 대응을 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위협은 점점 더 커진다.

이런 상황을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 이유는 명백하다. 북한의 위협을 중국 견제 구실로 삼는다는 미국의 전략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아태지역에서 MD 체제를 완성하려는 미국 군산복합체에서는 북한의 위협이 무기 생산을 향해 열린 기회의 창이다. MD는 무한궤도와 같다. 완성체는 없는 밑 빠진 독이다. MD를 포기하지 않는 한 지구가 망할 때까지 끝없이 돈을 투자해야 한다.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과 미국 군산복합체와 이해관계는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태평양을 사이에 둔 괴기한 자웅동체인 셈이다.

북한과 미국의 응수타진

북한은 지난 7월 6일에 정부성명을 통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언급했다. 이는 지난 2013년 1월 외무성 성명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는 종말을 고하였다"고 한 이후 처음이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조건으로 밝힌 것은 ▲남한 내 미국 핵무기 공개와 핵무기·기지 철폐 ▲핵 위협·불사용 ▲미군 철수 선포 등이다. 북한이 노리는 것은 결국 미군철수와 핵불사용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미국과 핵군축을 하겠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강압외교 (coercive diplomacy) 차원에서 핵무기를 고도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능력을 고도화하는 조치가 잇달아도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묵인하면서 유엔을 통한 대북제재에 몰두해왔다. 하지만 9.19 공동성명 11주년이 되는 9월 19일에 미국에서 열린 한미일 외무장관회담에서 과거와 다른 입장을 표명했다. 불가침, 한반도 평화, 경제협력에 대해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 동결, 도발적 행위 중단,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 등을 전제로 내걸었다. 그간 북한이 의미 있는 조처를 하기 전까지는 비핵화 협상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해온 것에서 미세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존 케리 국무장관의 이런 언급은 7월 6일 북한 성명에 대한 뒤늦은 간접 응답이라고 할 수도 있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응수타진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거리가 너무 멀다. 북한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이슈 부각이라는 '노이즈 마케팅'을 구사해서 북핵 문제에 대한 판 키우기를 계속할 것이다. 오바마 정부 임기 마지막에 어떤 협상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의 차기 정부는 당선 직후인 인수위 시절부터 강화된 북한의 핵능력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것을 막는 정책을 재검토할 것이다. 그것이 협상이 될지, 미국 일부에서 거론되는 선제공격이 될지는 아직은 안갯속이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키운 판이 미국을 양자택일의 극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상황은 북한에게도 도박이 될 것이라 점이다. 한반도 문제의 출구가 이런 도박에서 찾아지는 것은 항구적 평화를 위한 신뢰구축 차원에서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9.19 공동선언 존중을 표한 한미일 3국 외무장관 회의

한미일 3국 외무장관은 지난 외무장관 회담 이후 9.19 공동성명을 존중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물론 공동성명에 포함된 문구에 대해서 한국 정부는 아무런 입장 표명도 없이 북한에 대한 일전 불퇴의 기세만 드높이고 있다. 제재 일변도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도 없는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이 도발하면 북한 정권을 끝장내겠다는 각오로 고도의 응징태세를 유지하겠다는 것도 허장성세이다.

사실 9.19 공동성명은 남북한과 미국, 중국을 포함하여 러시아, 일본 등 6개국이 꾸준한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북핵 포기 약속을 이끌어낸 중요한 선언이다.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라는 두 개의 과제를 달성할 수 있었다.

9.19 공동성명에서는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남북한은 비핵화 공동선언을 존중하며 북미 관계도 정상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늘날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동북아시아 질서를 흔들고 있다. 9.19 공동성명을 통해 관련 국가들은 동북아 질서를 안정시키고 평화의 길을 열어서 궁극적으로 동북아의 협력을 증진하자는 데 합의했다. 격동하는 동북아시아의 현재의 상황에서 볼 때 그 가치는 더욱 소중해지고 있다.

9.19 공동선언은 이행되지 않았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핵무장 주장은 북한의 핵 개발을 정당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북한의 위협에 대한 억지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한미동맹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게 된다. 섣부른 핵무장 주장으로 국제사회는 한국도 핵을 개발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만들어서 한국을 국제사회에서 '핵무장 의심국가'로 만들 것이다.

핵무장이 아닌 비핵평화국가

NPT에서 인정한 핵보유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이다. 하지만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도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핵보유국 지위란 미국에 의해 핵보유를 인정받는 것을 말한다.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면 핵포기 압력을 받지 않고 실험을 해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

미국은 가장 강력한 핵국가로서 핵무기확산방지체제를 주도하는 나라이다. 국제 사회의 힘의 논리는 미국에게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권한까지 묵시적으로 부여해버렸다. 인도는 협정에 의한 핵보유국 지위 획득, 파키스탄은 묵인에 의한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했다. 이스라엘은 핵보유 선언도 안 했는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아 '모태핵보유국 지위'에 올랐다.

여기에 '핵 문턱국가'가 있다. 일본과 브라질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핵무기를 보유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핵무기 보유를 억제(restrain)하고 있는 나라를 말한다. 독일 같은 탈핵국가도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여 문턱을 이미 넘어섰지만 핵보유국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는 나라이다.

한국은 핵 문턱국가의 역량을 가지고 있지만, 새누리당의 지도부가 핵무장을 하자고 주장하여 핵무장도 못 하면서 의심만 받는 '핵무장 의심국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외교를 불안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주장이다. 한국이 비핵평화국가로서 국제적인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신뢰는 한국의 외교력과 국격을 높여 북한의 핵포기와 동아시아 평화·번영을 이끌 것이다.

9.19 공동성명에서 알 수 있듯이 꾸준한 대화와 협상이 북핵 포기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핵무장론이나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제재는 북한의 핵능력을 더욱 강화할 뿐이다. 9.19 공동성명이 주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창수 기자는 코리아연구원 원장입니다.



태그:#9.19 공동성명, #북한핵실험, #MD, #핵무장, #비핵평화국가
댓글2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실현하기 위한 학자, 전문가, 시민단체중견활동가들의 인식공동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