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영란법이 ‘사람 간의 관계’를 메마르게 한다는 KBS 보도(7/28)
 김영란법이 ‘사람 간의 관계’를 메마르게 한다는 KBS 보도(7/28)
ⓒ KBS

관련사진보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9월 28일 이전에 다녀오자."

모 은행이 해외지점 개설을 앞두고 해외 취재 기자단을 꾸리자, 기자단 내부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이를 두고 같은 기자단 내부에서는 "기자들의 인식 수준이 한탄스럽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접대와 향응에 젖어 그 관행을 아쉬워하는 기자도 있고, 이를 비판하는 기자도 있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둔 언론계의 한 풍경이다. 우리 사회가 과연 어떤 모습을 지지할지 묻는 것 자체가 우문이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언론인이 포함되는 이유이다. 

'경제'를 앞세운 김영란법 흠집 내기

김영란법이 오는 9월 28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지난 2015년 3월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을 두고 애초 그 취지와 필요성에 모두가 공감했다. 하지만, 법 수정안에 '언론인'이 포함되면서 김영란법은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고 위헌 논란이 터져나왔다. 이를 부각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언론이었다.

언론이 김영란법을 공략한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김영란법으로 경기 침체가 우려된다는 기사를 앞세운 우회적 공략이다. 언론은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인 '경제' 문제와 김영란법을 연관시키며 소비 저하로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는 공세를 폈다. 때마침 농축수산업계와 한국경제연구원 등이 김영란법 시행으로 예상되는 매출 손실 추정 통계를 내놓기도 했다. '팩트'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언론은 이러한 유용한(?) 팩트를 실감나게 우려냈다. <조선일보>의 "한우의 한숨, 굴비의 비명", <연합뉴스>의 "김영란법, 농수축산 브랜드 '남도미향' 10년 명성 흔드나" 같은 감성적 기사들이 이어졌다.

언론은 관련 업계의 추정치가 정확한 것인지 팩트를 검증하기보다는 발표내용 인용에 급급했고,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물타기를 시도했다. 그나마 한겨레가 "법과 시행령이 식사·선물·경조사 비용을 한정한 탓에 관련 산업에 큰 피해가 예상된다는 주장이 연일 쏟아지지만, 정작 그 근거라는 피해 추정액은 도무지 신뢰하기 힘들다. … 피해액 산출 방식에 오류가 적지 않은 데다 의도적인 과장 흔적도 있다. 김영란법에 괜한 흠집을 내어 정상적인 시행을 가로막으려는 의도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해 언론의 체면을 세운 정도였다.

헌법재판소의 뼈아픈 지적

언론계의 또 다른 전략은 언론의 자유가 침해될까 우려스럽다는 자기방어적 공세였다. 취재활동의 제한으로 언론 자유의 침해를 우려하는 기사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기자협회는 대한변호사협회 등과 함께 김영란법의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김영란법은 언론인과 취재원의 통상적 접촉 등 정보의 획득은 물론 보도와 논평 등 의견의 전파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운 여론 형성 과정에서 언론인의 법적 권리에 어떤 제한도 하고 있지 않다"며 위헌심판청구를 각하했다. 덧붙여 "언론은 국민들의 일상 생활에 밀접하게 연결된 분야고, 국민들은 이 분야의 부패 정도가 심각하고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가 언론계의 부끄러운 치부를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기자협회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반발했다. 한국기자협회는 "김영란법의 취지와 필요성에는 전적으로 공감하고 기자 사회 내부에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관행이 남아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기자들은 취재원을 만나 정상적인 취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취재 활동의 제약은 불가피해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기자협회의 주장은 언론계 내부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당장 YTN지회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정 이후 나온 한국기자협회의 성명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취재활동의 제한이나 자기 검열이라는 주장에 납득이 가지 않으며, 한국기자협회의 성명이 전체 기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영란법은 접대와 향응의 가이드라인이 아니다

공방의 시간은 지났고, 이제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언론계에 복무하는 임직원들은 이제 새로운 환경에 맞게 대처해야 한다. 사실 김영란법을 지키는 일은 간단하다. 각자 내고, 향응성 선물은 안 받으면 된다. 언론계 스스로가 제시하고 있는 언론윤리를 지키면 된다. 혹여 취재원과의 관계 속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면, 평소 자기 돈 내고 먹던대로 김치찌개나 갈비탕 수준으로 먹으면 된다. 취재 현장의 현실이 그리 간단치 않기에 사안이 헛갈린다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제시한 직종별 매뉴얼(청탁금지법 언론사 매뉴얼)을 참고하면 된다. 조금만 공부하면 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김영란법을 3만 원 이하의 접대와 5만 원 이하의 선물은 받아도 된다는 가이드라인으로 간주하는 것은 사안의 핵심을 잘 못 이해하는 것이다. 김영란법에 저촉되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부조리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 핵심이다.

언론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언론계는 김영란법을 두고 언론자유를 운운한 것이 오히려 역풍이 되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접대, 외유성 해외 취재와 연수, 기자단 향응 등 언론계 내부의 부조리는 언론윤리 기준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 그만큼 언론계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언론계 내부에서도 언론윤리 및 자정 노력이 수없이 제기되어 왔지만, 구호적 차원에서만 머물러 왔음을 직시해야 한다. 언론계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차제에 스스로 만들어 놓은 언론윤리를 재정비하고 이를 언론 현장에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언론포커스'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격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언론계 이슈를 다루면서 현실진단과 더불어 언론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언론포커스'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고승우(민언련 이사장), 김동민(한양대 겸임교수), 김서중(성공회대 교수), 김은규(우석대 교수), 박태순(언론소비자주권행동 공동대표), 신태섭(동의대 교수), 이용성(한서대 교수), 이완기(민언련 상임대표), 이정환(미디어오늘 편집국장), 장행훈(언론광장 공동대표), 최진봉(성공회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 말



태그:#언론자유, #김영란법, #언론윤리, #언론포커스, #민언련
댓글

민주사회의 주권자인 시민들이 언론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인식 아래 회원상호 간의 단결 및 상호협력을 통해 언론민주화와 민족의 공동체적 삶의 가치구현에 앞장서 사회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