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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 연화산 옥천사는 아기자기함이 있어 안락한 느낌이었습니다.
 경남 고성 연화산 옥천사는 아기자기함이 있어 안락한 느낌이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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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서 펜싱 금메달을 딴 박상영 선수 축하 펼침막이 반갑더군요.
 올림픽서 펜싱 금메달을 딴 박상영 선수 축하 펼침막이 반갑더군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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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 박상영 펜싱 금메달 획득을 축하합니다."

천왕문 앞에 걸린 펼침막입니다. 브라질 올림픽에서 기적을 연출한 박상영 선수가 옥천사 불자였나 봅니다. 각설하고, 경남 통영과 거제도 가는 길에서 연화산 이정표를 볼 때면 들었던 생각 하나가 있습니다. 그건 '연꽃 산에 있는 사찰은 어떨까?'라는 궁금증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옥천사와 연이 닿았습니다. 다음은 경남 고성 연화산 옥천사 안내문 등에 있는 설명입니다.

"옥천사는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화엄을 강론하기 위해 670년(신라 문무왕 10)에 창건한 절이다. 절 이름은 대웅전 좌측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달고 맛있는 '샘(옥천)'이 있는 것에서 유래했다."

조선의 산중 '통불교'처럼 하나의 불교계 필요

"불교계가 통불교 하나로 합쳐야 한다. '선' 혹은 '교'를 강조한 종단과 종파의 나눔은 이제 다 같이 하는 터라 굳이 분리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다시 통불교가 되는 게 옳다."

어느 스님께서 다양한 종파로 나눠진 불교계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하신 말씀입니다. 불교계 통합은 당사자들이 나서는 게 먼저지요. 제가 주목하는 건 '통불교'라는 단어입니다.

불교는 국가 지배이념이었던 고려시대에는 번창과 화려함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일부가 정권과 야합해 부정부패를 일삼는 등 문제가 야기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교가 국가 지배이념으로 등장한 조선시대에는 핍박과 탄압이 극심했습니다. 가람은 산중으로 쫓겨나고, 승려 계급은 천민으로 전락하는 등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경남 고성 연화산 옥천사입니다. 산중 통불교 사상이 삼단 구성법으로 녹아 교과서처럼 구현된 가람이라고 합니다.
 경남 고성 연화산 옥천사입니다. 산중 통불교 사상이 삼단 구성법으로 녹아 교과서처럼 구현된 가람이라고 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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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조선 불교계를 "산중 통불교라 불렀다"고 합니다. '산중 통불교'는 교종과 선종 등으로 나뉘었으나 불교계에 닥친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하나로 똘똘 뭉쳐 돌파구를 찾아야 했던 몸부림이었습니다. 스님들에 따르면 "조선의 산중 '통불교'는 어떤 종단도 종파도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불교계"를 일컫습니다.

이러한 통불교 사상이 "삼단 구성법"으로 녹아 "교과서처럼 구현된 가람이 연화산 옥천사"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는 이유가 뭘까? "통불교 절집은 부처님전과 보살전, 신중전들이 빠짐없이 배열되어 있다. 대웅전 일곽이 중심에 있고, 그 뒤로 보살전에 해당하는 명부전, 나한전, 팔상전이, 그 뒤로 신중각인 산신각, 독성각, 칠성각, 옥천각 등이 배열되어 있다"는 겁니다. 연화산 옥천사는 화합의 기운이 담긴 산사였습니다.

호국사찰 옥천사서 떠올린 독립운동가 후손의 처지

우물이 있는 옥천사 옥천각입니다.
 우물이 있는 옥천사 옥천각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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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산 옥천사 자방루 앞 마당은 구국 승병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군영 등으로 활용된 까닭에 대웅전에 비해 규모가 엄청 큽니다.
 연화산 옥천사 자방루 앞 마당은 구국 승병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군영 등으로 활용된 까닭에 대웅전에 비해 규모가 엄청 큽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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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구국 승병의 군영 역할을 해 일본군에 의해 불타는 운명을 맞기도 했다. 1733년(영조 9)부터 1842년(헌종 8)까지 340여 명의 군정이 기거했으며, 12 건물과 12 물레방아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점에서 경남의 대표적 호국 사찰이었던 셈이다."

호국 사찰로써 모습은 이 뿐 아닙니다. 옥천사 안내판에 따르면 고성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답니다.

"3.1운동 전후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변상태와 이주현 등은 옥천사에 머물면서 독립운동 방안을 논의했다. 옥천사 승려 신화수와 한봉진도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신화수는 1919년 4월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비밀결사 혁신단을 조직해 1920년 8월 김상옥, 한훈 등과 의열투쟁을 전개했다. 한봉진은 1920년 윤백영과 함께 옥천사를 거점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여기서 주목하는 건, 설명에서 빠져 있는 경남 독립운동의 최고 정점이었던 독립운동가 변상태 님입니다. 그도 여느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운동을 위해 몸과 재산을 바친 결과, 후세들의 궁핍을 낳았습니다. 실제로 독립운동가 변상태 님의 손자이며, 현재 경남 창원서 '여항산 성불사'를 불사 중인 청강 스님 주변에서 나온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이후 가난으로 힘들게 사셨다"는 증언 등은 부유한 친일파들과 대조적이라 가슴 아픕니다.

정화수 떠 복비는 치성 원리 차용한 듯한 '옥천각'

연화산 옥천사 앞 계곡물 소리가 청아합니다.
 연화산 옥천사 앞 계곡물 소리가 청아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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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연화산 옥천사 자방루 내부입니다.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고성 연화산 옥천사 자방루 내부입니다.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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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사 옆 계곡물 소리가 맑고 청아합니다. 조선시대 통불교를 상징하는 절집 옥천사는 "연꽃 수술을 중심으로 연꽃잎이 포개진 것처럼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이 둘러싸인 형세"입니다. 특이한 건 사천왕문, 범종각 등을 지나면 나오는 자방루(滋芳樓)가 대웅전을 가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대웅전 방향 안내까지 붙었습니다.

대부분 사찰 누각이 2층 누각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으로 갑니다. 이에 반해, 옥천사 자방루는 "임진왜란 직후 전략 요충지에 군사 목적의 사찰을 건립한 것처럼, 초창 당시 300여 명의 승군에게 군사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단층 누각을 건립한 것이어서 대웅전을 가린다"는 설명입니다. 그래선지, 큰 규모의 자방루 뒤에 자리한 대웅전이 상대적으로 조촐합니다. 뜰도 자방루 앞마당에 비해 초라한 규모입니다. 각각 역할이 있는 게지요.

자방루, 화려합니다. 6개 대들보 곳곳에 비천상, 비룡, 화조도, 풍경화 등의 단청 그림이 수놓아졌습니다. 또 용머리 등이 조각되어 눈길을 끕니다. 대웅전 옆, 옥천각에는 샘(옥천)이 있습니다. 삼신에게 정화수를 올리게 되어있습니다. 옛날, 밤에 어머니들이 집에서 정화수를 떠올려 삼신할미 혹은 천지신명께 손바닥을 비비며 만복을 비는 치성 원리를 차용한 듯합니다. 그래설까. 괜히 반갑습니다.

이밖에도 연화사 옥천사는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을 지낸 청담 스님이 출가한 절입니다. 매년 음력 9월 27일에는 의상대사와 청담 스님 열반제가 거행됩니다. 보물 제495호인 청동북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백련암, 청련암, 연대암 등의 부속 암자가 있습니다. 옥천사를 둘러본 소감은 안락하고 포근한 요새 같은 절집이라는 거. 지인의 핸드폰에 쓰인 글귀가 옥천사와 딱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다 내려놓아도 아무렇지 않더라!"

연화산 옥천사 대웅전입니다.
 연화산 옥천사 대웅전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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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려놓아도 아무 일 없더라
 다 내려놓아도 아무 일 없더라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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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경남 고성, #연화산 옥천사, #대웅전, #독립운동가, #자방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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