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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란 인간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움직이게 설계되었나 보다. 제주에 처음 집을 마련하게 되었던 그때의 기억이다.

2015년, 집값 상승과 매물의 감소로 단독주택에 대한 열망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그 자리를 보다 현실적이고 즉시 실행이 가능한 신축 공동주택 구입 계획이 대신해가던 그 무렵, 그때까지도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던 우리의 우유부단함을 한 방에 해결해줄 해결사가 등장했다. 단독주택에 비해 비교적 저렴했던 제주 공동주택의 분양가가 갑자기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백만 원이던 선분양권이 다음날 수천만 원으로, 아득했다

평당 분양가 1,460만원으로 제주도 공동주택 분양가의 신기록을 세운 도남해모로, 11.3 부동산 대책에서 제주도가 제외된 것이 이번 청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평당 분양가 1,460만원으로 제주도 공동주택 분양가의 신기록을 세운 도남해모로, 11.3 부동산 대책에서 제주도가 제외된 것이 이번 청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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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까지만 해도 1억 중반에서 2억 이하로 구입이 가능했던 소규모 아파트와 빌라의 분양가가 이주민 증가와 부동산 투기 세력의 움직임에 따라 갑자기 폭등하기 시작했다.

결국 때가 왔다. 아직 서울 생활을 정리할 수는 없지만 제주 집값이 우리가 가진 자금과 여력으로 구입이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기 전에 미리 사두지 않으면 아예 제주 이주에 대한 꿈마저 사라질 위기의 순간이 온 것이다.

일단 급하게 계약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휴가를 모두 사용하여 무작정 제주로 향했다. 목표는 현재 분양중인 신축, 혹은 신축 2년 이내의 공동주택. 하지만 당시의 부동산 시장 상황은 우리, 아니 제주도민들조차 처음 접한 혼돈, 그 자체였다.

단독주택 매물이 씨가 마른 상황에서 계속 밀려드는 이주민과 부동산 투기세력들이 공동주택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신규 건축허가를 받고 터 다지기만 시작해도 어디선가 정보를 얻고 온 사람들이 선 계약금(물론 적법한 분양절차가 아니다)을 걸어버리는 탓에 모델 하우스는커녕 아직 건축도면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분양이 완료되는 촌극이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앞이나 신규 택지 등 투자 가치가 있는 곳에 지어지는 공동주택에는 적은 계약금만 걸고 확보한 선 분양권에 프리미엄을 붙여 되팔려는 투기 세력까지 판을 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삽만 떠도 분양완료라는 농담이 현실화된, 제주 건축의 최대 호황기였던 시기다.

이에 제주도정에서는 정상적인 청약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선 계약 등 편법을 사용한 업자를 처벌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기도 했으나 제주도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이 사태를 억누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불과 1~2백만 원이 지불된 공동주택 선 분양권이 그다음 날 수천만 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던, 지금 생각하면 다들 무언가에 홀렸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비정상적인 시장 상황.

드라마 ‘공항가는길’에서 주인공 서도우의 공방 겸 집으로 등장한 촬영지. 성산일출봉이 내다보이는 한적한 올레길에 창고를 개조했다.
 드라마 ‘공항가는길’에서 주인공 서도우의 공방 겸 집으로 등장한 촬영지. 성산일출봉이 내다보이는 한적한 올레길에 창고를 개조했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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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제주도민들조차 혼란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제주 부동산 시장에 육지 촌것 둘이 무작정 뛰어들었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보아온, 그리고 기록해온 제주 부동산에 대한 정보가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게 되어 버렸다. 내심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던 외도동 등의 1억 초중반대 아파트들의 시세가 2억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그마저도 매물이 실종된 상태. 분양가의 상승으로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임에 따라 신축 분양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어느 지역을 선택할 것인가도 문제였다. 내심 유력한 후보지라고 생각했던 외도동과 신촌리가 급격한 시세 상승과 신축 물량 부족 등 각각의 이유로 탈락함에 따라 제2의 후보지 중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제주 곳곳을 누비며 묵었던 수많은 게스트하우스들.
 제주 곳곳을 누비며 묵었던 수많은 게스트하우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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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는 오로지 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 미친 듯한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지금이 꼭짓점 아닐까? 그럼 대체 어느 지역을 선택해야 집값이 떨어지지 않고 버틸까? 우리가 바라는 조건은 정말 소박했다. 이미 집값은 오를 대로 오른 상태라 가정하고 '여기서 떨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중에 이주를 하면 정 붙이고 살 수 있는 그런 동네였으면 좋겠다'가 전부였다.

그렇게 오일장과 휴대폰으로 신규분양 중인 곳들을 검색하며 며칠간 돌아다녔지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마음에 드는 곳은 분양가가 너무 비싸거나 인기가 없는 층만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분양가가 싸거나 인기 층이 남은 경우에는 동네가 마음에 안 드는 식이었다. 워낙 많은 집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지어지다 보니 밭 한가운데 지어진 어느 빌라에서는 창문을 열자 방금 살포된 농약이 그대로 거실로 빨려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선택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

마음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내일이면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반쯤 포기하는 마음으로 오일장 신문을 집어 들고 숙소로 돌아와 다시 한 번 꼼꼼히 분양정보를 확인해나갔다. 어제 자 신문에서 딱 한 곳의 분양정보가 추가되어 있었다. 그렇게 집을 보러 다니고, 여행을 다니면서도 한 번도 들른 적이 없는, 동네 이름조차 생소한 그곳에 신축 아파트 분양이 시작되고 있었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내일 서울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러보기로 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신규로 분양하는 집이란 집은 다 찾아 다녔다. 그 때의 기억이 자꾸 떠올라 이 사진들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신규로 분양하는 집이란 집은 다 찾아 다녔다. 그 때의 기억이 자꾸 떠올라 이 사진들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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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운명이란 존재하나 보다. 분양 담당자와 통화를 마치고 신축공사가 한창인 현장에 도착하니 우리가 생각한 마을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마을 뒤편 한라산 방향으로는 감귤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집 앞 자그마한 초등학교 잔디밭에는 아이들이 강아지와 뛰어놀고 있었다.

한적함과 여유로움을 갖고 있으면서도 대로변으로 조금만 나가면 꽤 큰 규모의 마트들과 편의점, 음식점 등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인프라가 모두 갖춰진.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주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리는 한 눈에 매료되고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동산 매매에 익숙한 지인 한 분은 '그런 식으로 아무 정보 없이 감만 믿고 집을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 큰일 날 뻔 했다'고 혀를 차기도 했다. 머리를 식히고 생각하면 난생처음 보는 동네에 완공도 되지 않은 건물 뼈대만 보고 덜컥 계약금을 걸고 서울로 돌아온 것이다.

'감'만 믿고 고른 집, 지금 생각하면 그저 '다행'

공사가 한창인 집에 몰래 올라가 창 밖을 보자 한라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와 감귤밭, 그리고 한적한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 풍경이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
 공사가 한창인 집에 몰래 올라가 창 밖을 보자 한라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와 감귤밭, 그리고 한적한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 풍경이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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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다행히도 우리의 선택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무턱대고 감만 믿고 고른 집에 이런저런 호재들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계약할 때만 해도 크게 의식하지 않았지만 일단 초등학교가 바로 앞이라는 게 다행이었다. 서울에서는 지하철역 등 교통수단과의 인접성과 편리성이 집값에 큰 영향을 준다면 제주에서는 초등학교와 가까운, 특히 길을 건너지 않고 등하교가 가능한 경우 집값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거기에 덧붙여 포화상태가 된 제주 시내 도로를 대신할 일종의 외곽순환도로 건설이 여기저기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가 선택한 동네를 관통하기로 결정되었다. 제주시 인구 증가에 따라 아라 택지지구와 이도 택지지구, 삼화 택지지구에 이은 신규 택지건설계획이 발표되고 그 후보지 중 하나로 이름이 거론되며 동네 전체의 집값이 들썩이기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2공항 후보지로 성산읍 신산리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발표 전날까지만 해도 가장 유력했던 대정읍 신도리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이 집단 공황에 빠질 정도로 큰 이슈였다.

제주 2공항 발표는 제주도 전체, 특히 그중에서도 제주시를 중심으로 동쪽 지역의 집 값을 또 한 번 상승시켰다. 2010년경부터 시작된 제주 부동산의 상승 곡선이 절정에 달한 시기가 바로 이때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집 계약 후 불과 몇 개월 만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시세 변화를 경험한 후 우리는 비로소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정확히는 우리가 너무 무작정 덤벼든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산책을 나섰다가 서쪽으로 저무는 해와 구름이 만들어낸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난 제주에 살고 있다.
 산책을 나섰다가 서쪽으로 저무는 해와 구름이 만들어낸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난 제주에 살고 있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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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 생각하면 무모하지만 꼭 필요한 결단이었다. 우리의 예상대로 제주 2공항 발표라는 빅 이슈가 쓸고 지나간 후 제주 공동주택 평균 분양가는 천만 원을 돌파했다. 그리고 30평 기준 500~700만 원 정도이던 년세 역시 동반 상승하여 900~1200만 원까지 폭등해버렸다.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와 비교해 주거비에서 별 차이가 없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가 반쯤 등을 떠밀려 무턱대고 집을 계약한 그 시기가 정말로 (우리 기준으로는) 제주 이주로의 문이 닫히기 직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그때의 내 선택에, 그리고 그 선택을 지지해준 아내에게 정말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태그:#제주, #부동산, #공동주택, #제주 이주, #집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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