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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농단' 블랙리스트 문건은 '존재'했다.
▲ '문화농단' 블랙리스트 문건 '문화농단' 블랙리스트 문건은 '존재'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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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관여했을 것으로 의심받는 이른바 문화체육인사 '블랙리스트' 문건이 정점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박영수 특검팀의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1월 6일 브리핑을 갖고 "일부 명단이지만 (블랙리스트) 문건이 존재하는 것은 맞다"고 공식 확인한 이후 일주일 남짓, 보고선 상의 결제라인에 있을 것이라 추측되는 두 사람에 대해 정조준을 함에 따라 '문화농단'의 중요한 실체 중 하나가 드러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적어두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If you don't write it down, it doesn't exist) 라는 말처럼 기록은 여러 방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란 대개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기록을 통한 사실의 재구성 또한 가능하다는 점에서 어쩌면 '문자'란 인류 역사의 가장 큰 보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몇 해 전 모 대학의 '한국독립운동사'를 가르치는 교수께서 사료를 찾으러 일본에 간다고 하자, 왜 왜곡된 자료를 수집하러 가냐는 물음을 건넸다 핀잔을 받은 적이 있다. 독립운동사 분야에서 '동시대의 기록'은 대개 일본 '문부성'의 보유 자료가 압도적이고, 1차 사료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나는 '몰라도 너무 모른'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교수는 1차 사료를 통해 해당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고 존재를 드러내는 직업적 소명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농단의 블랙리스트 문건을 통해 무엇을 재구성해볼 수 있을까.

일단 누군가의 작성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야당과 진보인사들의 편을 들어주는 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혐오'의 감정은 말로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할 수 있도록', '지시'로서 표현되었을 것이다. 그러고 누군가는 기초 정보를 모으고, 그에 수반하는 자료를 첨부함으로써 '검토'하는 단계에 들어갔을 것이며, 지시하는 자는 취합된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문건은 검토가 완료될 것이다.

혐오의 감정은 최종적으로 문자로 공식화된다. 그리고 그 문건은 소수단위에서만 은밀히 공유됨으로써 문화체육관광부를 컨트롤하는 그들의 '지침'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소수단위에만 공유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해서는 안 될 짓"이란 것을 기안자부터 결재자까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암묵성'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 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블랙리스트 문건의 발견으로 인해, 혐오의 감정까지 드러내는 역추산이 가능하였고, 사실을 하나씩 재구성하는 수순까지 도달한 것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 들어 문건과 관련한 '배달사고'가 하나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블랙리스트 직전에만도 '대법원장 사찰 정황' 문건이 발견되어 사회가 발칵 뒤집혔고, 2014년에는 '정윤회 문건'이 폭로되어 한 명의 경찰관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따지고 보면 그 여진이 지금의 상황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4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이른바 '정윤회 문건'은 비선실세가 '존재'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2014년 '정윤회 문건' 2014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이른바 '정윤회 문건'은 비선실세가 '존재'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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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두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중요한 '문건'이 존재했었다.

이미 공개되어 큰 논란을 가져왔지만 전직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관으로서 필자는 이 문건의 중요성 역시 우리사회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차원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기록으로 계속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는다.

2015년 11월 19일, 머니투데이의 박다해 기자는 매우 놀랄만한 문건을 공개한 바 있다.

해양수산부에서 작성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문건의 실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 방안 문건 해양수산부에서 작성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문건의 실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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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이 문건은 '특조위의 BH조사건 관련'에 대해 1. 특조위 내부의 여당 추천위원들이 소위원회 의결과정 상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필요시 여당추천위원회 전원이 사퇴의사를 표명(부위원장 주재 기자회견 등), 2. 위원회의 구성 및 의사결정상 공정성에 문제가 발생함을 집중 부각하고, 3. 국회 여당 위원들이 공개적으로 특조위에 소위 회의록을 요청하고, 필요시 비정상적・편향적 위원회 운영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3장의 문건이 박다해 기자로부터 공개된 직후, 공개 사실도 모르던 여당 추천위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전원 사퇴의사를 표명함으로써, 문건은 '지침'의 기능을 성실히 이행했던 것이다.

이 문건은 실로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특조위 방해가 명확히 '존재'했던 것을 증명하며, 지침은 결국 특조위를 내부로부터 파괴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일부 언론은 이 문건에 대해 "연영진 해수부 해양정책실장(1급, 차관보)이 새누리당의 안효대 의원(국회 농림해양수산위 간사)에 보고할 목적으로 소지하고 있었으나, 해양수산부는 지금껏 이 문건과 해수부의 관련성을 부인" 했다는 보도를 한 바 있따. 그러나 여전히 문건의 기안자, 공유자, 결제자는 베일에 가려있다. 

이 기록은 과연 케케묵은 기록으로서만 그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인가.

최근 작고한 김영한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다양한 메모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그 메모들은 지금도 한 부분 한 부분 재구성되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특히나 모 방송에서는 "뒷일을 부탁 합니다"라는 고(故) 김관홍 잠수사의 말을 인용하여 큰 호응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유가족과 김관홍 잠수사가 원했던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존재했던 특조위가 파괴된 것을 목도한 조사관들에게는 이 문건의 작성주체와 전달경로를 파악하는 것 역시 중요한 뒷일로 남아 있다고 필자와 견해를 같이 할 것 이다.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의도'이다.

"적어두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태그:#세월호 특조위, #블랙리스트, #정윤회 문건, #김기춘, #연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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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생기면 항상 펜을 잡는 자유기고가. 시민단체 흥사단에서 이사로 활동했으며, 최근까지 국회 정무위원장 비서관으로 일했습니다. '근거있는' 소통의 공간을 열기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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