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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도쿄 도의회 선거 유세장에서 아베 총리가 자신에게 항의를 표시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면서, 흥분된 어조로 "이런 인간들에게 질 수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1일 도쿄 도의회 선거 유세장에서 아베 총리가 자신에게 항의를 표시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면서, 흥분된 어조로 "이런 인간들에게 질 수 없다"라고 말했다.
ⓒ 日本の政治 CHANNEL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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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자질에 대한 의구심과 민주 정치에 대한 그리움

도쿄 도의회 선거의 최종일이었던 지난 1일 유세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자신에게 항의를 표시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면서, 흥분된 어조로 "이런 인간들에게 질 수 없다"고 말하는 정치인이 있었다.

이 장면은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정치인이 다름 아닌 아베(安倍晋三) 총리였기 때문이다. '주권자'인 국민을 향해서 저렇게 적대감을 적나라하게 노출해도 되는 것인지... 도쿄 도의회 선거가 끝난 그 다음날 3일 오후. 관방장관의 기자 회견에서 한 기자가 유세장에서의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던졌다.

기자 : "(아베 총리의 발언은)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유권자를 경시한 듯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발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관방장관 :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그건 허용범위 안에 있는 것이고, (아베) 총리는 매우 상식적인 발언을 한 거였다고 봅니다. 그와 같은 발언을 속박하는 것이야 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을 대표해야 할 일국의 총리가 국민을 아군과 적으로 나누는 듯한 언행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정치는 불길한 느낌을 준다. 일본 국민들도 그런 정치적 언행에 대한 위화감을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

<아사히신문>이 7월 8일과 9일에 걸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최근 발언과 행동에 대해 '신용할 수 없다'고 응답한 국민은 61%에 이르렀다. 그 결과는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의 자민당의 역사적인 참패였다. 아베 총리의 '민주적 자질'에 대한 의구심과 아베 정권의 강압적인 '정치적 수법'에 대한 비판이 투표를 통해 표출된 것이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 회복이 어려워진 까닭

지난 6월 19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지난 6월 19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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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도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이 현 의석수인 59석의 반도 미치지 못하는 23석에 그쳤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아베 총리의 사학 스캔들에 있었다.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난 바와 같이, 총리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가케학원(加計学園) 수의학부 신설 특혜를 아베 총리가 제공했다는 의혹이 역사적 참패의 주요한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국민들을 실망시켰던 점은 특혜 제공이라는 '사실'보다 이 문제의 진실규명과 관련한 아베 총리와 내각의 불성실한 '태도'에 있었다. 앞서 인용한 <아사히신문>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가케학원 문제의 진상규명에 대해 아베 총리를 감싸는 내각의 태도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부정적으로 본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무려 74%였다.

과거와 같이 경제정책으로 성과를 내는 것으로 아베 정권이 내각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베 총리가 자신에 대한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피할수록 총리 자신에 대한 정치적 불신은 물론 자민당에 대한 정치적 불신도 높아지게 된다. 반면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길을 택할 리도 만무하다. 이 경우에는 야당으로부터의 정치적 공격이 더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멀어진 '헌법 개정'의 꿈... 제동 건 일본 국민들의 양식

도쿄 도의회 선거 이후, 아베 내각의 위기는 더 가속화되고 있다. 7월 셋째주에 실시된 각종 여론 조사에서 제2차 아베 내각이 성립된 이래 내각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또한 <요미우리신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자민당 지지율도 10%포인트 하락했다.

아베 총리의 헌법 개정의 꿈은 더욱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 4년간 국정 선거에서 4연승을 해왔던 아베 내각의 구심력은 급격히 약화되기 시작했고, 이미 '포스트 아베'를 둘러싼 자민당 내의 움직임도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의회 선거 이후 정치적 영향력이 더 커져 버린 연립정권의 파트너인 공명당은 '지금은 헌법 개정을 논할 때가 아니'라고 아베 내각의 헌법 개정의 일정에 확실히 쐐기를 박았다.

일본의 유명 작가인 한도 카즈토시(半藤一利)씨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베 내각의 지난 4년은 (국민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위로부터의 혁명'이 이뤄지고 있었던 시간이었다"라고 평가한다.

지난 6월에 통과된 '공모죄' 법안을 하나의 '점(点)'이 아니라 특정비밀보호법(2013년 성립), 안전보장 관련법(2015년 성립), 통신방수법의 개정(2016년 성립)으로 이어지는 '선(線)'으로 보게 되는 경우, "지난 4년간 아베 내각이 만들어 왔던 나라는 '전쟁할 수 있는 체제'를 완수하는 것"이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번 도쿄 도의회 선거의 결과는 아베 총리가 구상하는 나라 만들기에 결정적인 제동을 걸었다. 도쿄 시민들이 도의회 선거를 통해 표명한 '나라다운 나라'는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기회가 공평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가 정의로우며,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나라'가 도쿄 시민들이 원하는 '나라다운 나라'였다. 

'카리스마 지도자'에 불안 느끼는 일본 국민과 고이케 도쿄 도지사

지난 2일 도쿄도의회 선거 당시 투표소 모습.
 지난 2일 도쿄도의회 선거 당시 투표소 모습.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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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적인 관측일 수도 있지만 이번 도쿄 도의회 선거는 일본 국민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 리더상을 전환한 계기로 기억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20여 년간 일본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정치 지도자들은 아베 총리를 포함해 모두 카리스마가 강한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매스미디어를 이용해 가상의 적을 설정한 뒤, 정치판을 아군과 적으로 나누는 '극장형 정치'의 수법이 탁월했고, 절차적 정당성보다도 '힘'으로 밀어붙이는 속전속결의 정치를 선호했다.

그 폐해 중의 하나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토론을 제약하는 정치 분위기가 강화된 것이었다. 이번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 압승한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 도지사도 카리스마적 특성이 강하며, 극장형 정치 수법을 구사하는 능력이 출중한 정치인이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도민우선회의 의회 선거 압승을 보도하는 NHK 뉴스 갈무리.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도민우선회의 의회 선거 압승을 보도하는 NHK 뉴스 갈무리.
ⓒ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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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이케 지사에 대한 지지가 앞으로 국정 수준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선거 직후 '국민 퍼스트'를 언급했지만, 국정 수준의 정치인으로서의 정치 철학과 정책 비전이 무엇인지가 아직 알려져 있지 않기에 국민으로서는 고이케 지사의 가능성에 대해 평가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요미우리신문>이 10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고이케 지사가 급조한 지역정당 '도민퍼스트회(우선회)'가 승리한 이유에 대해 '고이케 도쿄 도지사에 대한 기대'를 언급한 국민은 30%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정부와 자민당에 대한 비판'을 승리의 이유로 든 국민은 60%에 이르렀다. 비민주적인 정치수법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강해지고 있는 지금, 일본 국민들이 원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정치인은 민주적인 자질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존경할 수 있는 품격 높은 정치인인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나일경님은 일본 추쿄대학교 전 교수입니다.



태그:#아베, #고이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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