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싱가포르의 도교사원, 푸젠성에서 살던 사람들이 싱가포르에 와서 자리를 잡은 아모이 거리에 위치. 그들의 역사를 보여준다.
▲ 천복궁 싱가포르의 도교사원, 푸젠성에서 살던 사람들이 싱가포르에 와서 자리를 잡은 아모이 거리에 위치. 그들의 역사를 보여준다.
ⓒ 허영진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아빠는 회사의 Regional Office(지역본부)가 있는 싱가포르에 다녀왔단다. 싱가포르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사람이 만든 최고의 도시'라고 표현하고 싶어. 도시라는 자체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만들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싱가포르는 근대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진 도시라서 역사가 긴 다른 도시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지. 불과 몇 십 년 동안 어떻게 이런 도시를 형성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단다.

아빠가 일을 마치고, 시간을 내서 관광지를 포함한 싱가포르 이곳 저곳을 다녀봤는데, 가장 인상적인 곳은 천복궁(Thian Hock Keng)이라는 도교 사원을 중심으로 하는 차이나 타운 내에 아모이(Amoy Street)라는 곳이었어. 차이나타운 지하철에서는 좀 거리가 있는 곳이긴 한데, 이곳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싱가폴 인구의 70%가 넘는 화교들의 삶과 도시의 역사를 좀 더 알 수 있게 된 장소이기 때문이야.

도교는 우리 나라에 사원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익숙하지 않은 종교인데, 텔레비전 사극에서 가끔 나오는 '옥황상제', '신선' 이런 개념이 바로 도교에 있는 이야기란다. 다른 종교보다 탄력성이 있어서 각 지역 신앙(우리나라로 보면 토착 무속 신앙)의 결합으로 다양한 신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

예를 들면, 삼국지의 '관우'는 '관성대제'라는 이름의 신이 되어 여행자를 보호하고, 재물을 지켜주는 신이 되었지. 또 어느 날, 꿈에 바다에 빠진 어부를 구했다는 아가씨 이야기는 '천후(틴하우)'라는 이름의 신으로 남아서,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의 수호신이 된 거야. 특히, 틴하우는 중국에서 바다를 기반으로 먹고 살았던 성들인 푸젠(복건), 광저우(광동) 등을 중심으로 일반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었지. 화교들이 동남아시아로 이동함에 따라서 화교가 있는 도시들에는 어김없이 틴하우 사원이 있는 경우가 많단다.

그 뿐만이 아니라, 당나라 시절 당태종의 장군 2명은 문지기 수호신이 되어 있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푸젠(복건) 지역에서 유명했던 인물들도 신이 되어 있었어. 다른 동남아시아 사원들에 비해서 좋았던 것은 신들에 대한 설명이 표기되어 있어서, 아빠 같은 문외한도 그 신들이 무엇이 수호하는 것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 지 알 수 있었지.

중국계 이민자인 화교들이 인구의 최대비율을 차지 하는 싱가포르(약 70%)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력은 그 나라에서 소수 비율인 화교가 큰 부분을 차지 하고 있단다. 왜 그렇게 화교들은 성공하게 되었을까?

노동자로 싱가포르에 처음 왔던 쿨리들의 고단한 삶이 있던 거리에 놓여진 조각상들, 그들은 후손들이 이렇게 잘 살게 될 것을 알았을까? 그들 하나 하나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 싱가포르 초기 이민자 쿨리 노동자로 싱가포르에 처음 왔던 쿨리들의 고단한 삶이 있던 거리에 놓여진 조각상들, 그들은 후손들이 이렇게 잘 살게 될 것을 알았을까? 그들 하나 하나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 허영진

관련사진보기


싱가포르 차이나 타운 건너편 중국인 상가 거리를 따라 걷다가 한 식당가 앞에서 처음 중국인들이 외국인 노동자로 자리를 잡은 곳을 봤어. 거기에는 초기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이 조각상과 글로 남아 있었지. 서양의 나라들이 앞선 기술을 가지고 중국에 와서 전쟁을 일으키고 착취를 거듭하는 동안, 해안가 지방의 사람들은 삶의 기반이 무너졌고, 먹고 살 길을 찾아서 낮은 임금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기 위해 여러 나라로 나갔다고 해.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흑인 노예 해방 이후, 흑인들보다 더 싼 노동력을 공급해줄 중국인 노동자(쿨리)들이 미국의 횡단 철도를 깔고, 서양인들 대신 고된 노동을 했고, 이들의 후손들이 곳곳에 차이나타운을 만들었다고 하지.

무엇이 그들을 지금의 성공한 모습으로 만들었을까? 항상 'A는 어떻다'와 같은 형태로 성급하게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그들은 성실했고, 자신의 삶을 더 낫게 만들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는 거야. 그리고 자식에게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던 사람들이지. 타지에서의 차별과 기반 없이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은 그들을 뭉치게 만들었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은 더 노력하고, 더 강해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마치 중동을 떠나 세계를 방황해야 했던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그 집단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해보게 되었단다. 얼마나 개인의 이야기는 고달프고 절절한 사연이 있었을까?

아빠 회사는 방학 철이 되면 대학생 인턴들이 와서 2개월씩 근무를 하고 가는 제도가 있는데, 그 중에 한 학생이 기억났어. 타다니 라는 이름의 인도네시아 여학생이었는데, 외국인의 외모였지만 한국어를 아주 잘했단다. 물론,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도 잘하는 똑똑한 친구였지.

위대한 지도자 리콴유
 위대한 지도자 리콴유
ⓒ 허영진

관련사진보기


한 달쯤 근무하고 나서 알았는데, 아빠가 보기에는 인도네시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화교라고 했어. 조상이 중국인이었는데, 현지인들과 결혼하면서 외모도 변한거지. 전형적인 인도네시아 사람들보다 하얀 피부였는데, 그게 바로 그런 이유였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밝은 친구였단다. 밝아만 보이는 친구였지만, 지금의 그 친구의 밝은 모습이 있기까지 그 가족들은 어떤 과정을 겪어 온 것일까? 불과 1998년에도 2000명 이상의 화교들이 학살당한 사건이 일어난 나라가 인도네시아인데, 그때 이 친구의 집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단다. 물론, 물어보지는 않았고, 밝은 그 친구의 모습으로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었지만, 한 집안이 낯선 곳에서 기반을 이루기까지 그 선조들이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했을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단다.

좋아 보이는 것들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아. 사실, 아빠가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반드시 사람의 노력이 있고, 그 노력을 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단다. 언젠가 네가 혼자 여행을 간다면, 보여지는 좋은 것들을 보기 보다는, 과연 거기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있을까? 를 고민해보지 않을래? 아마, 보여지는 이상의 것을 네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네가 만나게 될 수많은 여행과 만남을 응원할게.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electricjin.blog.me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싱가포르, #화교, #이민자, #사람의사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