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주지하는 것처럼 아리랑은 민족을 상징한다. 그래서 아리랑은 우리 문화유산 중에서도 그 위상이 특별하다. 태극기, 애국가, 무궁화 등이 각각 우리에게 여느 깃발, 여느 노래, 여느 꽃들과 다른 존재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리랑이 문학, 음악, 연극, 무용, 회화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여기저기에서 축제의 테마로 존재하고 있음이 그 위상을 말해주고 있다.

아리랑은 국제적 이슈나 이벤트가 있을 때 그 가치가 더욱 부각되곤 했다. 예를 들면, 1988년 서울올림픽의 폐막식 때 각국 선수들과 함께 아리랑을 불렀고, 각 종목별 시상식의 입·퇴장 음악으로도 아리랑을 썼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전야제, 개막식 등에 아리랑을 테마로 한 음악이 연주되었고, 우리는 윤도현의 <아리랑>을 부르며 한국축구팀을 응원했다. 그리고 남북이 스포츠 단일팀을 구성할 때는 아리랑을 단가로 썼다.

우리나라를 내세우고, 우리 민족을 의식해야 하는 자리마다 아리랑이 함께 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아리랑을 앞세워 문제를 해결했다. 아리랑이 그 위상에 걸맞게 많은 일을 감당해주고 있는 것이다. 국가나 민족 상징의 노래는 세계의 다른 곳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아리랑만큼 성원 모두의 절대적 지지를 획득하여 강한 토대를 구축하고 있는 존재가 얼마나 되겠는가?

아리랑이 소중한 존재인 만큼 우리는 아리랑을 좋은 언어로 가꾸어 말하고자 한다. 아리랑의 가치와 격을 높이려는 지향이 우리의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때론 잘못되거나 과도한 상황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리랑의 소중함을 쌀에 비유해 온 시각이 그런 경우다. 원래 이 말은 1896년 아리랑을 서양악보로 채보한 헐버트의 글로부터 나왔다. 이 글에서 헐버트가 '아리랑은 조선인에게 쌀과 같은 존재'라고 기술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아리랑의 가치를 꿰뚫은 표현으로 해석해 그것을 널리 표방하는 일이 적잖이 확산되어 있다.

헐버트가 아리랑의 가치를 쌀에 비유했다는 말의 확산에는 문화재청이 구축한 아리랑아카이브(http://arirang.iha.go.kr/service/index.nihc)도 크게 한 몫을 하고 있다. 아리랑아카이브는 아리랑의 소개 메뉴 '아리랑'에 헐버트의 말을 표제로 뽑아 그것을 대단한 의미로 특화하였다.

아리랑아카이브 화면 캡처(http://arirang.iha.go.kr/service/arirang.nihc)
 아리랑아카이브 화면 캡처(http://arirang.iha.go.kr/service/arirang.nihc)
ⓒ 아리랑아카이브 홈페이지 캡처

관련사진보기


구한말은 말할 것 없이 지금도 우리에게 쌀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헐버트의 말이 그렇다면 그가 아리랑의 소중함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헐버트가 아리랑을 쌀에 비유했다는 말은 영문으로 된 그의 글을 단순히 오역했거나, 아리랑의 소중함을 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역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의도성 여부를 떠나서 결과는 오역이다. 해당부분을 원문 그대로 옮겨 보겠다.

To the average Korean this one song holds the same place in music that rice does in his food-all else is mere appendage. You hear it everywhere and at all times. (H. B. Hulbert, "Korean Vocal Music", The Korean Repository , 1896. 2, pp.49-50.)

헐버트는 'rice'를 곡물(grain)로 말하지 않고 음식(food)으로 말했다. 아리랑은 어디서나 늘 들을 수 있어서 음식으로 따진다면 밥에 견줄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헐버트는 아리랑을 '쌀의 노래'로 말하지 않았다. 굳이 그의 표현을 그대로 살려 재정리하면 아리랑은 '밥의 노래'가 된다. 실은 '밥'이나 '쌀'이나 소중한 것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어쩐지 '밥'보다는 '쌀'이 아리랑의 소중함을 상징하는 데 더 효과적인 느낌을 준다. 그래서 아리랑을 '쌀의 노래'라고 했을 것이다. 아리랑을 미화해 그 격을 높이려는 지향이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모두 무의미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헐버트가 아리랑의 가치나 소중함을 말하려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족상징의 노래라는 아리랑의 성격화는 1926년 10월 1일에 개봉된 영화 <아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과 같은 아리랑의 문화적 지위는 1926년 이후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1896년 헐버트가 바라본 아리랑은 민족상징의 노래가 아니라, 당시 조선의 서민들이 '밥 먹듯이' 자주 부르던 노래였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헐버트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조선말에 아리랑이 그만큼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아리랑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민족상징의 노래는 <서울아리랑>뿐이다. 이 노래는 본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의 노랫말을 지닌 바로 그 노래로서 우리는 그것을 보통 그냥 아리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헐버트가 들었던 아리랑은 경복궁 중건 때부터 널리 유행했던 <아리랑타령>이다. 이 노래를 <구아리랑>이라고도 한다. 정리하면, <서울아리랑>은 민족상징의 노래지만, <아리랑타령>은 한말에 유행한 노래가 된다.

앞에서 말한 아리랑아카이브는 문화재청의 사업으로서 (재)전통문화진흥재단이 의뢰를 받아 구축했고, 관련 저작권은 문화재청 산하 국립무형유산원과 (재)전통문화진흥재단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아리랑아카이브는 정부가 관리하는 공적 웹사이트라고 하겠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아리랑아카이브는 공신력을 지녀야 한다. 아리랑을 쌀에 비유했다는 헐버트의 말은 사실에 맞게 정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아리랑아카이브가 제공하는 여타 아리랑 정보 중 혹여 공신력에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없는지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리랑아카이브가 헐버트의 말을 표제로 뽑은 이유는 무엇인가? 소중한 것일수록 바로 알고 가꿔야 한다. 공허한 미화는 아리랑의 참모습을 가릴 뿐이다. 아리랑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다.


태그:#아리랑, #헐버트, #아리랑아카이브, #서울아리랑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노래와 문화에 관심을 두면서 짬짬이 세상 일을 말하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