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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서 김장을 담근다고 하기에 5살 아이의 손을 잡고 기차에 올랐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귀한 말씀을 뼈에 새기고 사는 탓이기도 하거니와 4촌형제와 만나 깔깔거릴 아이를 위해 나선 길이다. 

아이는 4살, 2살 터울의 사촌형제들과 사이가 좋다. 셋이 뭉치면 격렬하게 웃고 떠들며 온 집안을 휩쓸고 다니는데 솔직히 어떤 포인트에서 즐거워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이 읊어대는 캐릭터와 용어들은 낯설고 하는 놀이는 듣도 보도 못한 게 많다. 그 방식과 규칙 다 알 수 없다. 그저 온 집안에 울려 퍼지는 까르르 웃음소리에 흐뭇할 뿐이다.

하지만 그 웃음 찬란한 봄꽃 같다. 즐길 새도 없이 순간 사라진다. 잘 놀다가도 어느새 싸우고 있다. 장난감과 텔레비전(혹은 스마트폰)에서 사달이 난다. 아침상을 물리고 쪼르르 달려가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잡은 녀석들을 앉혀 놓고 규칙을 알려주었다.

"너 한 번 나 한 번. 서로 번갈아가면서 보고 싶은 거 보기. 오케이?"

아이들은 의외로 쉽게 수긍했다. 이게 웬 떡이 아닌 평화냐. 아이들이 섞여있다는 건 다툼과 평화의 줄타기를 시작했다는 신호이고 아이들이 잠들지 않는 이상 고요한 평화는 애초에 불가능한데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냈다. 나도 녀석들 옆에 궁둥이를 붙였다.

나른하게 몰려오는 졸음을 즐기며 전기장판 위에 몸을 부리려던 참이다.

정의롭고 위엄있는 어른 돼보려 했는데

 난 그러지 않았다. 정의롭고 위엄있는 어른이 되어 보기로 했다. 결론은 꼰대증명이 되었지만 말이다.
 정의롭고 위엄있는 어른이 되어 보기로 했다. 결론은 꼰대증명이 되었지만 말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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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긴 내 자리야."

방심하고 있다가 울부짖음에 정신을 차렸다. 내 자식이 울상이다. 반면 조카는 이불더미 위에 올라앉아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사연인즉 이불을 쌓아서 멋지게 자기 자리를 만들어놨는데 화장실 다녀온 사이 사촌형이 빼앗았다고 한다.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조카에게 말해봤지만 돌아온 건 이죽거림. 앉은 사람이 임자란다. 내가 따로 이불을 쌓아서 아이에게 권해봤으나 거부당했다. 자신이 만든 자리가 아니면 안 된단다.

나는 둘 사이의 조율에 나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최선은 균형점을 찾는 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다른 한 쪽을 만족시켜주는 거였을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안겨주는 것 따위의 일들 말이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정의롭고 위엄있는 어른이 되어 보기로 했다. 결론은 꼰대증명이 되었지만 말이다.

조카가 말한 대로 나도 해봤다. 제 엄마(나의 여동생) 옆구리를 찔러 조카를 방 밖으로 불러낸 다음 이불왕좌에 내 아이를 앉힌 것이다. 왕좌찬탈. 조카여. 네가 말했지. 앉은 사람이 임자라고. 난 그 룰을 따랐단다. 어떠냐. 나의 묘수가.

결과는 최악이었다. 나의 잔꾀를 눈치 채고 급하게 돌아온 조카는 힘으로 제 동생(내 아이)을 자리에서 밀어냈다. 아이는 울고 나는 조카를 붙잡고 녀석의 정의롭지 못함을 훈계했으나 먹히지 않았다.

조카는 내 아이와 달랐다. 나는 그 녀석을 다루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어른의 말이라고 해 봐야 먹히는 방법을 모르니 공염불이었다. 조카는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덤볐다. 자기가 맞다고 했다. 아마도 나에게 당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엄연히 제 부모가 있는데 큰 소리 내는 훈육을 하기는 어려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7살 조카와 유치한 말싸움은 길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깜냥을 벗어난 그 순간에 여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조카에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깨닫게 해 주는 게 맞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애 하나 다루지 못한 못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못난 짓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실상 그때의 나는 내 자식이 부당하게 밀렸다는 사실과 어른에게 대드는 조카의 무례함에 기분이 상했고 말싸움 중에 나의 탈모를 두고 대머리라고 인신공격한 것에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한 화난 인간에 불과했다. 결국 나는 내 분노도 당장의 분쟁도 수습하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방을 나왔다.

다시는 애들 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리

나는 치졸한 복수를 했다. 조카만 빼 놓고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마트에 가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 사줬고 수육을 삶아서 애들에게 먹이면서 조카에게는 주지 않았다. 애들에게는 스마트폰을 쥐어주고 조카는 혼자 방안에 방치해두었다. 조카는 쭈뼛거리며 다른 애들 주위를 맴돌면서도 나를 보면 다시 방으로 내빼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항복을 하겠거니 했으나 내 고립작전은 쓸모 없었다. 조카는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빽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고약한 마음으로 시작했으니 이건 훈육이라고 할 수 없다. 고스란히 미성숙한 내 인성만 드러내고 말았다.

내가 나의 어른스럽지 못함에 부끄러워하고 있는 사이 아이들은 어느새 다시 하나로 뭉쳐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허무했다. 결국 일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도록 각본이 짜여 있는 거였다. 싸우면서도 옆에 붙어서 서로 뭉쳐 지내는 게 애들 일인데 내가 괜히 중간에 끼여 당한 거다.

내 다시는 아이들 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리. 다툼이 났다 싶으면 10리 밖으로 도망치리라 다짐한다. 애초에 7세 수준의 치졸함과 옹졸함이 남아 있는 나다. 누가 누구를 훈육을 한다는 건가. 깜냥에 맞게 조카의 놀이친구나 되어주는 게 맞고 그게 안 되겠거든 어른 흉내 내며 분란을 키우지는 말았어야 했다.

생각해보면 그게 진정한 어른이다. 내 한계를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사람과 어울리는 일 말이다. 상사를 대할 때나 손님을 대할 때나 어린 조카를 대할 때나 그건 다르지 않다. 할 수 있는 최선 안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기. 어차피 상대도 내 속을 빤히 들여다 보고 있으니까. 조카 녀석도 내 속을 들여다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번 김장은 유난히 잘 되었다. 어쨌든 그 맛있음에 내 공도 있다. 쓸데없이 일을 키워 아이들이 김장을 방해하지 않게 했다고나 할까.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캠핑 블러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훈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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