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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설레임을 간직한 달이다. 삼월은, 우리의 오감이 '봄'을 먼저 부르는 달이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푸는 입학시즌이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삼월을 누구보다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는 늦깎이 학생들이 있다. 화사하고 따뜻한 인생의 봄을 준비하는 비문해(글을 읽고 이해하기 어려움) 어머니들이다. 서울 노원에서는 해마다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늦깎이 어머니들의 특별한 입학식이 열린다.
 
'마들서로배우기센터(구 마들여성학교)'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딸이라는 이유로, 동생들이 너무 많아서 등등 이런 저런 이유로 배움의 시기를 놓쳐버린 어머니들이 자식들 시집장가 다 보내고 이제야 배움을 쌓기 위해 찾는 곳이다.
 
초등학력인정 기관인 이곳은 지역 여성들의 삶의 변화를 위한 교육공동체로서 '상계어머니학교'에서 시작해 노원에서 28년 동안 문해교육과 시민교육 활동을 해오고 있다.
 
초등반교실풍경
▲ 마들서로배우기센터 초등반교실풍경
ⓒ 홍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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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글자를 배워, 글을 통해 세상을 읽고, 사회의 한 주체로서의 자신의 삶을 깨닫고 일군다. '여태껏 잘 살았는데 뭐 하러 힘들게 공부를 하냐'는 핀잔도 듣고, 학교 오는 길에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한글 배우러 가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엉뚱한 곳으로 돌다가 지각하는 날도 있다. 평생 높은 글자의 벽에 막혀 살았던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웃고 떠드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국어책
▲ 마들서로배우기센터 국어책
ⓒ 홍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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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못 배웠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고, 손을 다쳐서 글을 못 쓰는 척 하려고 손에 붕대를 감을 필요도 없고,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할 필요도 없다. 아는 것도 잊어버릴 나이에 글자를 배우니 읽기도 쓰기도 더디지만, 시와 일기로, 때로는 편지로 말 못하고 살아온 긴 세월을 풀어 놓은다. 생전 처음 만져보는 색연필로 삐뚤삐뚤 꽃도 그리고, 색종이로 나비를 접어 소녀적 꿈을 날려보기도 한다.
 

시화전
▲ 마들서로배우기센터 시화전
ⓒ 홍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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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니까 여기 왔지, 알면 여기 안 왔제."
"처음 기역 니은 배울 때는 깝깝하더니 인자는 일기도 쓰고, 으짜요? 쫌 늘 긴 늘었소?" 
"울 아들이 대기업 이사인데 학교 다닐 때 반장 못 해봤다고 엄마가 대신 반장 해보라네."
 
힘든 하소연도 하시고, 은근히 자랑도 한다.
 
유치원 다니는 손주에게 숙제 검사를 맡고 칭찬을 들었다며 기뻐하고, 몸이 아파 결석한 친구들에게는 얼른 나아서 같이 공부하자고 챙기기도 한다. 올 겨울 영하 18도로 뚝 떨어진 한파에 학생들 건강 걱정으로 하루 쉬자고 제안한 교사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며 단칼에 자르기도 한다.


이런 학생들의 열기와 변화 속에 자원활동 교사들은 힘을 얻고,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재능나눔을 통한 공동체적 시민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8세 이상 성인인구 중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가 불가능한 비문해 성인인구는 264만여 명(약 6.4%) 추정된다. 글자를 모르는 것이 밝히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볼 때 실제 비문해 성인 인구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삶의 질을 결정짓기도 하는 문자생활에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그 소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국민의 기초교육이 의무화 되고 평생 교육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에서 성인 문해 교육은 국가의 책무라 할 수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마들서로배우기센터'에는 신입생들의 와글와글 수다 떠는 소리로 채워질 것이다. 비문해 성인 인구가 0%가 되는 날까지 자원활동 교사의 수고도 계속될 것이다.
 
한글을 배우며 받아쓰기보다 더 힘들어 하던 '마음 속 이야기'를 쓴 학생의 시 한 편을 싣는다.
 
내 인생의 첫걸음

박금숙

밤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다.
갈 곳도 없었다.
일을 시작하며 왕십리에서
을지로까지 걸어 다녔다.
차비는 일원 오십 전
그걸 아껴서 점심 먹고 그래도 배가 고파
집에 오니 먹을 밥이 없어 물을 먹고
이제 아들 딸 다 키우고 내 인생을 돌아본다.
글을 배우고 노래도 배우고 친구도 만나고
하지만 그 것도 잠시 내 몸이 아팠다.
그러나 여기서 끝내기는 너무나 아쉽다.
다시 용기를 내서 시작해본다.
내 인생이 시작이다.
나도 한 번 멋지게 살아보자. 

학생의 시
▲ 마들서로배우기센터 학생의 시
ⓒ 홍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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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마들들서로배우기센터, #마들주민회, #마들여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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