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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성평등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학교에서의 성평등 교육 실천에 관심을 보이는 여러 언론 매체와 많은 인터뷰를 하게 된다. 어느 인터뷰 도중에, 학교에 존재하는 편견과 차별을 이야기하다가 '교과서 삽화에 장애를 가진 학생들과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충분히 그려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기자가 되물었다.

"확실히 문제이긴 하네요. 그런데 같은 인권의 한 분야이긴 하지만, 인종이나 장애는 성평등 교육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 않나요?"

지난 2월 5일,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21만3219명의 서명과 함께 마감됐다. 이로써 청원 추천인 20만 명을 넘겨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의 답변을 받는 목록에 오르게 되었다. 전체 청원 중에서는 11번째이고, 교육 분야의 청원 중에서는 최초다.

이는 성평등을 향해 점점 커져가는 한국 사회의 요구가 구체화된 결과이기에 매우 고무적이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성평등 교육을 받지 못했던 경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20만 돌파' 페미니즘 교육은 어때야 하나

 지난 2월 5일,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213,219명의 서명과 함께 마감됐다.
 지난 2월 5일,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213,219명의 서명과 함께 마감됐다.
ⓒ 국민청원 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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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를 촉구하는 청원이 성공한 이 시점에서, 지금 교육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교사로서, '페미니즘 교육'이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교육과정은 목표, 내용, 방법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페미니즘 교육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어떤 내용을 담으며,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페미니즘에 대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점은 페미니즘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페미니즘은 모든 성의 동등한 권리를 위한 인권운동이기도 하고, 연구자와 학제를 갖춘 학문 분야이기도 하며, 일상의 모든 장면에서 항상 의식하고 노력해야 하는 개인적인 실천이기도 하다. 그 무엇보다도 페미니즘은 세상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치관이자 세계관이다.

페미니즘은 구조 속에서 권력관계가 발생함을 알고, 언제나 가장 약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페미니즘 교육은 학생들에게 나보다 약한 친구를 시혜적으로 '관용'하고 '배려'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무심코 던지는 장난이나 무시가 나보다 약한 친구에게는 폭력일 수 있음을 성찰하고 교실에서 가장 약자인 친구와 연대할 수 있게끔 가르치는 일이다.

페미니즘은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구조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페미니즘 교육은 학생들에게 '학교의 관행이 그렇기에, 교사가 그렇게 말하기에, 교과서에 그렇게 쓰여 있기에' 무조건 시키는 대로 따르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대신,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질문하고 학급과 학교의 규칙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 결코 완전히 아물지 않을 상처를 남긴 2014년 4월 16일의 사건 이후,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 아이들은 낯선 교과서 하나를 새로 공부하게 되었다. 「안전」이라는 제목의 이 교과서는, 세월호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생명을 잃은 것이 아니기에, 기만적이다.

더군다나 이 새로운 교과서가 과연 효용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안전에 대해 더 철저하게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 안전 점검과 대피 훈련 등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노후한 시설로 인해 학생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현실에서 책으로만 안전이 중요하다고 배우는 일에 무슨 교육적 효과가 있는가? 학생들은 오히려 '안전 수칙이란 이렇게 형식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

페미니즘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페미니즘 교육의 도입은 절실하고 시급한 요청이지만, 「안전」 교과서가 학생들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듯, 단지 몇 시간 이상 페미니즘 교육 시수를 의무화하는 정책만으로는 페미니즘 교육이 실현될 수 없다. 남학생 출석번호는 1번부터 여학생 출석번호는 51번부터 시작하도록 되어 있는 학교가 아직도 많다.

학생들의 등굣길 안전을 지켜주는 의무는 반강제적으로 녹색'어머니'에게 돌아간다. 교과서의 삽화에서 국회의원, 사업가, 농부는 늘 남자로, 가정주부, 미용사, 마트 계산원은 늘 여자로 그려진다. 학생들이 이러한 현실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해요", "차별은 나빠요" 같은 너무나 당연한 구호만을 배우게끔 하는 일은, 차별을 개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존재하는 차별을 은폐할 수도 있다.

그 질문은 틀렸고, 아직 갈 길은 멀다

 1일 국회정론관에서 초등성평등연구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 등 교육 단체를 비롯해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시민단체와 온라인 매체 닷페이스가  '페미니즘 선생님에 대한 공격을 멈춰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해 국회정론관에서 초등성평등연구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 등 교육 단체를 비롯해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시민단체와 온라인 매체 닷페이스가 '페미니즘 선생님에 대한 공격을 멈춰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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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이나 장애는 성평등 교육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은 틀렸다. 페미니즘이란 곧 구조적 약자의 입장에 서는 가치관이고 우리 사회의 위계와 폭력의 문제를 성찰하는 세계관이기에, 성평등의 문제는 인종이나 장애의 문제와 따로 갈 수 없다. 페미니즘이 단지 인권의 한 분야인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을 통해서 인권을, 노동을, 민주주의를, 우리 사회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교육은 하나의 교과나 주제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교의 모든 행정과 운영, 규칙과 절차가 성인지적 관점을 가지고 만들어지고 이루어져야 한다. 교사가 학생을 대하는 태도와 학급을 운영하는 방침에 페미니즘적 사고가 배어 있어야 한다. 사회 시간에 구조적 차별의 문제를 배우고 도덕 시간에 일상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차별의 문제를 배울 뿐만 아니라, 국어와 체육과 과학과 수학을 비롯한 모든 교과를 통해 페미니즘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갈 길이 멀다. 교육부에 교육청에 성평등 전담 부서와 성평등 정책 담당관을 설치하고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것, 교사 양성과 연수 과정에 페미니즘을 도입하는 것이 그 첫걸음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솔리님은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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