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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는 때아닌 택배 대란이 벌어졌다. 아파트 측에서 택배 차량의 단지 내 지상 진입을 통제하자 택배 업체들은 아파트 정문 부근에 택배를 쌓아두고 직접 찾아가라고 맞섰다. 국토교통부가 나서 '실버 택배'를 제안했지만 국고 지원 논란으로 이틀 만에 철회했다. 택배 전쟁이 벌어진 지 어느덧 두 달, 지난 1일 남양주 다산신도시를 다시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택배 대란은 '일단락'

ㅇ아파트에서는 택배 기사가 정문 부근에 차를 대고 손수레에 배달할 물건을 옮겨 싣고 있었다. 손수레가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위를 지나갈 때마다 상자들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요동쳤지만 택배 기사 최아무개씨는 능숙하게 손수레를 몰았다. 최씨는 "처음에는 짜증이 났지만 이제는 적응이 돼서 그러려니 한다"고 말했다.

택배 기사가 손수레를 이용해 배송을 하고 있다. 사진 속 인물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택배 기사가 손수레를 이용해 배송을 하고 있다. 사진 속 인물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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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구에 세워 둔 택배 차량. 택배 기사들은 대부분 손수레를 이용해 택배를 옮겼다.
 아파트 입구에 세워 둔 택배 차량. 택배 기사들은 대부분 손수레를 이용해 택배를 옮겼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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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한 주민은 "입주 초기 택배 차량이 지상에서 과속을 해서 항상 불안했는데 지금은 안심하고 다닐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택배 기사의 고충을 알기에 고마운 마음"이라며 "그간의 언론 보도로 갈등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 박아무개씨도 "초기에는 택배 기사들의 반발이 심했는데 지금은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저상 차량 도입" vs. "택배 기사 손해 커"

인근 ㄹ아파트에서는 트럭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적재함 높이를 지하주차장 제한 높이인 2.3m보다 낮춘 저상 차량으로 쿠팡, 이마트 등 주로 대형 유통업체 로고가 붙어 있었다. 일찌감치 저상 차량을 도입한 덕분에 큰 무리 없이 배송하고 있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지하주차장 높이에 맞춘 저상 차량을 도입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지하주차장 높이에 맞춘 저상 차량을 도입했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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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택배 기사들의 차량은 높이가 2.5~2.7m로 높이가 2.3m인 지하주차장은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주민 박아무개씨는 "택배 업체가 저상 차량을 도입하면 해결될 일이었는데 너무 고집을 피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택배 대란이 벌어졌던 ㄷ아파트 입구에는 '저상차량으로 입주민 안전을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

택배 대란을 빚었던 아파트 입구에 걸려 있는 현수막
 택배 대란을 빚었던 아파트 입구에 걸려 있는 현수막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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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택배 기사들의 생각은 어떨까? 현장에서 만난 택배 기사는 "트럭의 높이를 낮추게 되면 종전의 70~80%밖에 실을 수 없어 결국 나머지 물량을 배송하기 위해 트럭과 기사가 추가로 필요하다"며 "지금의 택배비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택배 기사 역시 "박스당 배송 수수료가 건당 평균 800원에 불과한데 실을 수 있는 박스가 줄면 수입이 급감한다"며 "차량 개조에 수 백만 원을 들이고도 나중에 중고차로 팔 때는 감가가 커져 손해가 크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난달 지상을 공원화한 신축 아파트는 지하주차장 높이를 2.7m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40여 년간 묶여 있던 최소 높이 2.3m 규정을 손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을 고친다 하더라도 이미 지어진 단지가 수두룩한 상황이라 택배 대란의 해법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파트 지상을 공원으로 꾸미는 아파트들이 늘어나는 추세라 택배 대란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아파트 지상을 공원으로 꾸미는 아파트들이 늘어나는 추세라 택배 대란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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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비 현실화 논의해야"

택배 차량의 지상 진입을 막는 아파트들이 많아지면서 최근에는 '대리 배송'을 하는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택배기사들이 아파트 입구에 택배를 내려놓으면 업체는 단지 내 배송을 전담하는 방식이다. 청라신도시와 다산신도시의 일부 아파트에서도 이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택배 기사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택배 기사는 "대리 배송 업체에 배송 수수료를 떼어줘야 하는데 800원에서 얼마를 더 떼어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택배 기사는 "택배 분실 시 보상 등 책임 소재도 있어서 대부분 아르바이트생으로 구성되는 대리 업체 직원에 배송을 맡기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택배비 현실화' 같은 보다 더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였다. 전문가들은 배송 형태에 따라 별도 배달료를 지불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또 주민들과 택배 업체간 갈등이 발생하면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다산신도시의 택배 대란은 일단락됐지만 제2, 제3의 택배 대란을 막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태그:#다산신도시, #택배, #택배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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