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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군 회천면 군학마을 앞바다.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을 재건하던 이순신 장군이 처음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간 곳이다.
 보성군 회천면 군학마을 앞바다.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을 재건하던 이순신 장군이 처음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간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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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년 전, 1597년 이맘때였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경상우수사 배설에게 전령을 보내 남은 전선을 이끌고 보성 군학마을의 군영구미로 들어오도록 했다. 이는 전라도 내륙에서 군사와 무기를, 연해안에서 군량을 확보하는 이순신의 전략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했다.

8월 15일(양력 9월25일) 추석날, 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의지해 싸우라는 조정의 수군철폐령에 맞서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로 요약되는 장계를 쓴 직후였다.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나아가 죽기로 싸운다면 해볼 만 하옵니다...(중략)...전선의 수는 비록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보성군청 앞마당에 전시돼 있는 주춧돌. 정유재란 당시 보성군청에 있던 열선루를 받치고 있던 돌이다.
 보성군청 앞마당에 전시돼 있는 주춧돌. 정유재란 당시 보성군청에 있던 열선루를 받치고 있던 돌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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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질 무렵의 보성 명교마을 앞바다 풍경.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을 재건하던 이순신 장군이 군학마을로 가는 길에 잠시 쉬어간 곳이다.
 해질 무렵의 보성 명교마을 앞바다 풍경.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을 재건하던 이순신 장군이 군학마을로 가는 길에 잠시 쉬어간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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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보름달을 바라볼 여유도 없이 장계를 쓴 곳은 보성읍성의 열선루(列仙樓)였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누각이다. 지금의 전라남도 보성군청과 보성초등학교 자리다. 초등학교 뒤쪽 언덕에 성벽의 흔적이 일부 남아있다.

이순신은 8월 17일 보성읍성을 나서 남쪽 해안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백사정이 있는 명교마을과 군영구미 군학마을이었다. 명교마을은 보성군 회천면 벽교1리에 속한다. 백사정(白沙汀)은 예부터 식수가 풍부했다. 모래 해변도 넓어 군대가 머물기에 좋았다.

이순신은 봇재를 넘어 명교마을에 닿았다. 백사정에서 말에게 풀을 먹이고, 군사들도 목을 적시며 잠시 쉬었다. 이순신은 군사의 수를 헤아려봤다. 120명이었다. 의병도 수천 명 됐다. 구례에서 장수 9명과 군사 6명으로 조선수군 재건의 첫걸음을 시작한 지 14일만이었다.
  
 보성 군학마을을 지키고 선 수령 520년의 느티나무.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을 재건해 바다로 나아가던 이순신 장군을 지켜봤을 나무다.
 보성 군학마을을 지키고 선 수령 520년의 느티나무.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을 재건해 바다로 나아가던 이순신 장군을 지켜봤을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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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 군학마을과 들녘. 누렇게 물든 황금들녘이 바닷가 마을의 풍경까지 넉넉하게 해준다.
 보성 군학마을과 들녘. 누렇게 물든 황금들녘이 바닷가 마을의 풍경까지 넉넉하게 해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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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군사들과 함께 내륙에서의 마지막 행선지가 될 군영구미로 향했다. 군영구미는 지금의 회천면 전일2리 군학마을이다. 1457년(세종 3년) 수군만호진이 설치되면서 군영구미(軍營仇未), 임진왜란 땐 구미영성(龜尾營城)으로 불렸다. 이후 군사들의 하얀 깃발이 늘 휘날렸다고 '군학'이 됐다. 휘리재, 성머리, 성안, 성안우물, 진밖끝, 활터 등 군사용어가 지금도 지명으로 쓰이고 있다.

이순신이 해안길을 따라 도착한 군영구미는 적막했다. 경상우수사 배설의 배도 보이지 않았다. 이순신이 수군들과 함께 타고 바다로 나가려던 배였다. 수소문을 해 알아봤더니, 배설이 회령포로 가버린 것이었다. 당초 구상에 차질을 빚게 된 이순신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배설을 잡아다가 호되게 곤장을 치고 싶었다.

배설이 약속을 어겼다고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조정의 수군철폐령에 맞서며 이끌고 온 수군인데, 여기서 시간을 끌어선 안됐다. 이순신은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지역주민들의 배를 동원하는 방안을 떠올렸다. 이 마을 출신의 김명립과 해상의병 마하수에게 고깃배를 구해올 수 있는지 물었다. 이순신의 부탁을 받은 김명립과 마하수가 어선이 모여 있는 포구로 달려갔다.
  
 보성 군학마을 풍경. 마을주민이 손자와 손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보성 군학마을 풍경. 마을주민이 손자와 손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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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 군학마을의 골목에 활짝 핀 맨드라미꽃. 마을의 골골마다 소담한 꽃들이 피어 있다.
 보성 군학마을의 골목에 활짝 핀 맨드라미꽃. 마을의 골골마다 소담한 꽃들이 피어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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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8월 18일) 아침, 바다 저만치에서 물살을 헤치며 다가오는 어선들이 보였다. 안개 때문에 정확히 분간할 수는 없었지만 한두 척이 아니었다. 해안에 가까이 온 배들을 확인하니 마하수, 백진남, 정명열, 김안방, 김성원, 문영개, 변홍원, 정경달 등이 타고 있었다. 동원돼 온 배가 10척이나 됐다.

이순신은 김명립과 마하수에게 큰일을 해냈다며 치하했다. 배를 몰고 온 선주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모든 일 다 제치고 달려오는 전라도 사람들이었다.

이순신은 곧바로 전라도 내륙에서 확보한 병참물자를 배에 싣도록 했다. 병참물자를 나눠 싣고 줄지어 선 배의 모습이 거북의 꼬리(龜尾)처럼 보였다. 이 일대에 쌓은 성의 이름이 '구미영성'이 된 이유다.

해상의병들이 구해온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간 이순신은 배설과 함께 있는 조선수군의 함대를 찾아 회령포(장흥 회진)로 향했다.
  
 군학마을에 세워진 김명립의 유적비. 김명립은 바다로 나아가려는 이순신 장군에게 고깃배를 구해주는 등 내내 앞장서 돕고 함께 싸웠다.
 군학마을에 세워진 김명립의 유적비. 김명립은 바다로 나아가려는 이순신 장군에게 고깃배를 구해주는 등 내내 앞장서 돕고 함께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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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령 520년 된 군학마을 느티나무의 위용.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을 재건해 바다로 나아가는 이순신 장군을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했을 나무다.
 수령 520년 된 군학마을 느티나무의 위용.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을 재건해 바다로 나아가는 이순신 장군을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했을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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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고깃배를 얻어 타고 바다로 나아간 군학마을에는 김명립의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마을에는 주민 100여 명이 살고 있다. 벼농사를 주로 짓고, 전어를 잡는다. 낙지, 게, 장대도 잡는다. "옛날에는 뭐든지 잘 잡히고, 많이 잡았는데 요즘은 재미를 못본다"는 게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의 얘기다. 젊은 농군들은 쪽파나 감자를 재배한다.

이순신이 바다로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봤을 느티나무도 마을회관 앞에 있다. 한눈에 봐도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고목이다. 수령 52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무의 키가 16m, 둘레는 6.2m에 이른다.

오랜 세월을 살면서 모진 풍상을 이기지 못하고 몇 년 사이 굵은 나뭇가지 두 개가 부러져 잘려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늠름한 자태로 멋스러움을 뽐내고 있다. 여름엔 시원한 그늘로 주민들의 땀을 식혀줬다.
  
 군학마을 느티나무 아래에서 만난 마을주민 박갑철 씨. 박 씨가 마을과 느티나무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군학마을 느티나무 아래에서 만난 마을주민 박갑철 씨. 박 씨가 마을과 느티나무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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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 군학마을 풍경.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다. 마을에는 주민 100여 명이 살고 있다.
 보성 군학마을 풍경.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다. 마을에는 주민 100여 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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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명씩 나와서 더위를 식혔어. 그늘이 넓고,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도 얼마나 시원한지 몰라. 덕분에 올여름도 무사히 넘겼그만."

느티나무 아래에서 만난 주민 박갑철(80) 씨의 말이다.

나무 앞에 서서 내려다본 앞바다가 시원하다. 고흥 소록도와 거금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오른편 저만치에는 완도 금당도의 기암절벽이 아스라하다. 당시 구미영성의 흔적도 바닷가 언덕에 일부 남아있다.
  
 보성 군학마을 앞으로 펼쳐지는 풍경. 고흥 소록도와 거금도, 그 너머로 완도 금당도가 보인다.
 보성 군학마을 앞으로 펼쳐지는 풍경. 고흥 소록도와 거금도, 그 너머로 완도 금당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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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22일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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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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