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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와 흙'은 25일간 멕시코의 도예마을을 따라 여행한 기록을 담았다. 3년 전 칠레의 한 도예마을에서 보았던 글귀를 기억한다. "도예는 땅의 꿈에 형상을 입혀주는 인류의 유일한 예술이다" 멕시코에서 만난 흙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 그들이 만들어낸 흙 예술을 통해 만나보았다. - 기자말

멕시코 흙여행을 준비하던 중 와하까 주 신문의 한 기사를 발견했다. "붉은 흙의 여성들"이라는 이름의 산 마르코스 뜰라빠솔라(San Marcos Tlapazola, 아래 뜰라빠솔라) 마을의 여성 도예가들에 대한 기사였다. 전통의상을 입고 당당히 가마 앞에 서있는 여성 도예가들의 사진에 매료되어 얼른 방문 리스트에 옮겨 적어 두었다.
   
붉은 도자기의 마을 '산 마르코스 뜰라빠솔라'
 붉은 도자기의 마을 "산 마르코스 뜰라빠솔라"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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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라빠솔라를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와하까 주에서 일요시장으로 유명한 뜰라꼴룰라(Tlacolula) 마을로 가서 다시 합승 택시를 타야하는데 거리는 차로 불과 15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지만 왕래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보니 택시에 인원이 충분히 탈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심지어 월요일에 마을을 방문했다. 일요 시장이 끝나고 월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움직임이 없을 때였던 것이다. 개인이 차를 부르면 비용은 열 배도 넘게 비싸니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약없이 기다리기를 한 시간 남짓, 운 좋게도 마침 아내의 심부름으로 바삐 마을로 들어갔다 오셔야 하는 택시 기사님을 만나 다른 손님이 없었음에도 마을로 들어갈 수 있었다.

택시 안에서 기사님이 통화를 하시는데 스페인어가 아니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스페인어를 안 쓰시네요?"
"여긴 아직 사포텍어(사포텍 원주민의 언어)를 써요."


옛 언어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외부와의 교류가 많지 않은 마을이라는 뜻일 것이다. 택시 안에서는 때 아닌 언어 수업이 이루어졌다. 한국어와 사포텍어로 '빠디우시'(안녕하세요)와 '쓰끼세뻴리'(고맙습니다)를 서로 알려주었다.  집에 가는 길에 태워준 거니 택시요금도 조금만 받으신다니 그야말로  감사한 만남이었다. 발음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배운말로 인사드렸다.

"쓰끼세뻴리!" 
 
붉은 도자기를 만드는 여성들의 그룹 '붉은 흙의 여성들'
 붉은 도자기를 만드는 여성들의 그룹 "붉은 흙의 여성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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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도자기를 만드는 여성도예가들의 공간
 붉은 도자기를 만드는 여성도예가들의 공간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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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의 굴뚝이 보이는 '붉은 흙의 여성들'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로 들어가니 방문 전에 메시지를 주고 받았던 마끄리나(Macrina Mateo)가 반겨주었다. 오는 길에 시간을 너무 지체하여 아침 일찍 출발했음에도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도착한 나를 그녀는 식사 자리로 바로 초대했다. 식탁에는 그곳에서 작업하는 다섯 명의 여성 도예가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고 있었다.

스페인어가 익숙하지 않으신 분도 계셔서 택시 안에서 급조한 사포텍어 두 마디를 하니 다들 기분 좋게 웃으셨다. 그리고 밥값으로 각자의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고 하셔서 기꺼이 한 분 한 분 이름을 적으며 인사를 했다.

"어렸을 때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을 보며 자랐죠. 그녀들이 그녀들의 어머니에게서 배워 만든 붉은 도자기를 보았고, 애써 만든 도자기들은 일주일에 한번 장터에 다녀오면 작은 봉지 안의 옥수수나 다른 식량들로 돌아오는 것도 보았어요. 그때는 만들어진 도자기들 대부분이 물물교환 형태로 거래가 되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겨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죠."
  
뜨라빠솔라의 붉은도자기
 뜨라빠솔라의 붉은도자기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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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라빠솔라의 여성들은 오래전부터 도자기를 만들었다. 남성들을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떠나거나 다른 도시로 나갔고 마을에 남겨진 여성들과 아이들은 어떻게든 그 안에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기에 어머니들은 딸에게 어떻게 도자기를 만드는지 어렸을 때부터 가르쳤다.

길도 없는 산으로 흙을 구하러 갔고 덩어리흙을 가져와 부수고 반죽하는 것도 고스란히 여성들의 몫이었다. 흙을 빚고 짬짬이 표면을 연마하고 밤새 연기가 자욱한 가마 앞을 지켰다.

하지만 이러한 고된 되물림 조차도 점점 물물교환형태의 시장이 변하면서 삶의 수단이 되지 못했다. 시내에서 떨어져 산 기슭에 고립된 마을, 여전히 사포텍어를 쓰는 마을인 뜰라빠솔라의 붉은 도자기는 그렇게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갔다.

"16살 때, 뜻밖의 기회가 왔고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했죠. 그때만 해도 스페인어를 못했어요. 사포텍어만 할 줄 알았죠. 하지만 항상 공부하고 싶었고 다른 세상을 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집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이웃들도 마을 밖으로 어린 여자가 나간다고 저와 그걸 허락한 가족을 비난하기도 했죠. 그 시절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붉은 도자기를 마을 밖으로 가지고 나간 마끄리나.
 붉은 도자기를 마을 밖으로 가지고 나간 마끄리나.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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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전통 도자 시장이 쇄락할 때 멕시코정부는 전통 도예마을 도예가들을 위한 새로운 기술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마끄리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마을 밖에서 공부하고 마을의 도자기를 가지고 여러 가능성에 도전을 해보았다. 그런 그녀의 행보는 전통적인 원주민 공동체였던 뜰라빠솔라에서는 거의 유일한 것이었고 그랬기에 쉽지 만은 않은 여정이었다.

마을의 도자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 어린 소녀 마끄리나의 도전은 점점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그녀의 도자기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뜰라빠솔라의 붉은 도자기도 새롭게 사람들의 기억 밖으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이곳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뜰라빠솔라의 붉은 도자기를 알게 되는 것이 제 꿈이고 이곳 여성 도예가들의 꿈이기도 하죠. 그래서 함께 작업하고 응원하고 돕고 있어요."
 
뉴욕타임즈매거진에 소개된 붉은도자기(2018. 10.21일자)
 뉴욕타임즈매거진에 소개된 붉은도자기(2018. 10.21일자)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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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몇 해 전 마을로 돌아와 '붉은 흙의 여성들'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함께 이곳의 도자기를 알리고 만드는 일을 해가고 있다. 마을에 들어오는 길도 포장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다. 비포장도로여서 접근성이 좋지 않던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오래된 가마도 연기와 먼지로 여성 도예가들의 건강에 좋지 않았는데 시에서는 얼마 전 새로 연기 나지 않는 가마도 만들어주어 그녀들의 작업을 지원했다. 이 모든 것이 마끄리나와 붉은 흙의 여성들이 하나하나 이루어가고있는 오늘이었다.

마끄리나는 잠시 시간을 내어 어머니에게 배운 전통 식기인 꼬말(멕시코 또르띠야를 굽는 그릇) 만드는 것을 보여 주었다. 작업을 위해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다 먹고 난 옥수수대였다. 옥수수대로 흙을 다듬는 그녀의 단단한 손을 보고 있자니 열 여섯 어린 소녀가 말도 안 통하는 타지에 가서 이렇게 도자기를 만들며 자신의 마을 도자기를 알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붉은 도자기를 빚는 여성들
 붉은 도자기를 빚는 여성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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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나는 마을의 도자기를 알리기 위해 혼자 밖으로 나갔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함께 사람들을 기다리죠."

전통을 벗어나 마을 밖으로 나갔던 한 소녀는 사십대가 되어 마을로 돌아왔다. '떠났기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는 그녀의 흙 이야기가 뜰라빠솔라의 매력적인 붉은 도자기 안에서 희망을 빚고 있었다.

태그:#멕시코여행, #멕시코와흙, #멕시코도자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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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예술치료, 스페인 문화&언어, 글쓰기로 삶의 형태를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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