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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가족의 달을 앞두고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가족을 주제로 글을 연재합니다. 이 글은 마지막 연재글입니다.

'성소수자 인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제가 바로 '동성결혼'일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동성결혼의 법제화는 동성애가 실질적으로 포용 되었다는 증표로 수용된다. 

일부 사람은 동성결혼의 법제화를 LGBT+ 인권 전반의 승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당사자들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막대하다. 동성결혼의 사회적 인정이 청소년 성소수자 전반의 우울증이나 자살 시도 비율을 낮춘다는 통계도 있기 때문이다. 동성결혼은 그 자체로 성소수자 인권에 있어 매우 '상징적'인 의제이다. 

한편 동성결혼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꼭 필요하냐'는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것은 근래 사회에서 혼인을 기반으로 한 가족의 의미가 과거보다 퇴색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광복 이후 가족을 인구를 재생산하고 통치하기 위한 단위로 인식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아이를 얼마나 낳아야 하는지'를 사회적으로 통제했던 일이다. 노동인구가 적을 때는 한 가정에서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애국이었고, 인구가 많을 때는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이 애국이었다. 이 때문에 남녀가 혼기를 놓치지 않고 결혼하는 것은 사회적인 중요성이 있었다. 

최근 고령화 사회를 위기라고 호명하면서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 역시 젊은 사람들이 결혼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쉽게 연결된다. 문제는 더는 사람들이 쉽사리 결혼하지도, 출산을 결정하지도 않는다는 데에 있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사상 최저였다. 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당 평균 1명도 채 되지 않았다. 왜 이러한 현상을 보일까. 부의 독점은 특정 계층에 심화하고 청년 실업률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높은 임대료에 자영업자들은 죽어가고 부당한 사유의 고용 차별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홑몸으로도 경제적 생존이 어려운 상황에서 육아를 원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러므로 혼인을 하더라도 그게 더는 출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 집단, 가족, 공동체를 중요시 하던 문화에서 점차 개인의 가치가 중요해졌다. 1인 가구가 비대하게 증가하는 등 삶의 방식이나 가구의 형태 또한 변화했다. 

가정을 갖는 일보다는 개인이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과거 가족이 혼사를 강요하는 때도 많았지만 이제는 경제적·문화적 변화로 결혼을 강요하는 일은 확실히 쉽지 않다. 이런 흐름에서 아이를 갖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과거보다 그 의미와 가치를 많이 잃고 있다. 

기존의 혼인 위주의 의료, 복지, 주거 등 민생 정책들에도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그 정책들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챙기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서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도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혼인하지 않고도 제대로 의료, 복지, 주거 제도 등에서 국가와 사회의 지원을 받거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다.

혼인 중심의 민생 정책은 실질성도 점점 떨어진다. 혼인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 혼인 가구 인센티브 정책을 펼치지만 실제로는 1인 가구가 증가하거나 비혼인 가구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혼인율과 출산율을 높여 고령화 사회를 극복하고자 하는 정책 기조가 실패했음을 빠르게 인정하고, 고령화 사회를 극복해야 할 위기가 아니라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여 그에 맞는 인구 정책을 펼쳐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기존의 가족통치가 실패했음을 직면하고 시대에 맞는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성결혼이라고?

이성애 중심의 사회에서조차 결혼의 전통적인 의미와 가치가 해체되어 가는데 동성결혼 운동을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 질문은 나 스스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봐도 더는 혼인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 구성은 유효하지 않는데, 혼인평등을 쟁취해내는 것이 미래적으로 생산적인 일인 걸까'하는 의구심이 마음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스스로 살짝 울컥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동성파트너를 전제하는 내겐 애초부터 결혼에 관한 평등한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고민하면 할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결혼과 가족 제도 그 문턱조차 넘어갈 수 없는 2등 시민으로서 내가 위치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비혼을 선택하지만 나에게 비혼은 어쩔 수 없는 강제다. 

이성인 두 사람 간의 결합을 전제로 하는 결혼 중심의 가족 구성권을 재편할 필요가 있음에는 그 누구도 반론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동성결혼 운동, 즉 혼인평등 운동이 단지 기존 이성 간 결합의 제도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수준의 운동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즉 혼인평등 운동은 혼인에 있어 여남의 결합뿐 아니라 여여, 남남의 결합까지도 인정해야 한다는 운동에서 그치지 않는다. 혼인평등 운동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구성원의 성별과는 무관하게 주어지는 권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이 갖는 전통적 의미들을 붕괴시키는 일은 사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폐지하지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도 혼인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무엇이 됐든 타인에게 나에 대한 보호자적 권리, 동반자적 권리, 또는 가족적 권리를 부분적으로든 전반적으로든 맡길 제도가 필요할 것이고 그 제도가 포괄하는 결합의 양상이 다양하면 좋은 것이지 굳이 혼인 제도를 폐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혼인 제도는 국제적인 제도이다. 한국이 제도를 폐지한다고 해서 그 양상이 없어지는 것 또한 아니다. 가족 제도가 재편되더라도 혼인 제도는 유지될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가족적 권리에 관하여 현존하는 최고 수준의 동반자 결합 형태가 결혼인 상황에서, 혼인 중심의 가족질서가 와해하였다고 혼인평등 운동이 미래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오히려 부당한 차별과 불평등을 묵과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동성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는 의심 또한 핵심이 될 수 없다. 혼인 제도가 폐지되지 않거나 혼인 제도가 폐지되더라도 성별과 무관하게 결합할 수 있음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결혼을 했든 안 했든,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든 아니든, 동성 동반자를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제도적으로 주변화되거나 배제될 것이다. 

이것은 '생활동반자법의 제정'만으로 완전히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생활동반자법은 반드시 동거하는 동반자에 관해서만 권리를 가질 수 있어 혼인보다는 낮은 수준의 결합만을 인정한다. 반드시 동거할 것이라는 조건부적인 동반자 인정은 온전히 동성 동반자를 인정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한국에서는 동성 동반자의 다른 가족 유고(遺稿) 앞에서 별다른 권리가 없다. 난민 중 동성커플이 한국의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지 않았다고 그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해외의 동성커플이 한국에서 그 관계를 인정받지 못 하는 일은 여러 차례 있었다.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지 않는다면 혼인을 하고 싶은가 여부와 상관없이 동성커플은 언제나 법적 사각지대에 있을 것이다.

혼인평등을 우회하는 가족구성권 재편은 없다

혼인평등이란 혼인에 있어 성별과 관계없이 또는 동성도 동반자로서 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일이다. 여기서 더 방점을 찍는 것은 혼인이 아니라 제도의 동성 동반자 결합에 관한 보편적인 인정이다. 이 때문에 혼인평등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혼인평등은 다양한 가족 구성권 그 자체의 문제이자 관건이다. 

동성커플도 결혼할 수 있다는 형식적 평등이 주는 의미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승리라는 진영 논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또한 실질적인 효과 없이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상징적인 의미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동성 동반자에 대한 보편적인 인정 없이 새로운 가구 형태나 가족관계를 상상할 수 없다. '왜 굳이 결혼이 하고 싶냐'는 질문보다 '왜 어떤 이들은 결혼하지 못하는가'에 초점을 맞출 때다. 어떤 사람들은 이성 간의 혼인을 전제할 수 있는 사람들과 아예 서 있는 지형이 다르다. 

얼마 후에 동성커플인 친구들의 결혼식이 열린다. 장장 6년을 만났다. 동거한 지도 몇 년 됐다. 둘 다 나름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로서 살아온 지 수년이 되었지만 결혼식에 기자를 초청하거나 할 계획은 없다고 한다. 지금 이 사회에서 동성 간 결혼이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음에도 자신들의 결혼을 사회적 화젯거리로 소비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둘의 결혼, 둘의 삶에 조금 더 초점이 모이도록 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난 그 결정이 사회적인 맥락으로만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삶의 결이 있다고 느껴졌다. 

기존 결혼의 전통들도 많이 따르겠지만 이 결혼은 2013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결혼식처럼 연인이나 동반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관계를 드러내고 확인받는 새로운 혼인의 형태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 글을 빌려 축하한다.

[관련 기사]
① "누구랑 살면 어때?...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마라" ☞ http://omn.kr/1iq31
② 자신이 받았던 차별, 자식에게 대물림 하는 부모 ☞ http://omn.kr/1itv9
③ 누구를 위한 '정상가족'인가 ☞ http://omn.kr/1iv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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