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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할 때 제일 먼저 생각 나는 곳, 마음이 심란하고 울적할 때 찾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 좋아지는 곳, 뭔가에 골똘할 때 제일 먼저 도움을 받으러 찾아가는 곳, 나에겐 그런 곳이 있다. 참새의 방앗간, 영혼의 안식처, 최후의 피난처.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 서가에 서서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등을 바라보는 일. 그 순간을 사랑한다. 몇 백 년 전에 살았던 작가들과 지금 살아 있는 젊은 작가들이 같은 시간 속에 존재하고, 내가 가보지 못한 나라에 사는 작가들과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나라에 사는 작가들이 한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지금 내 눈앞에서 나의 선택을 기다리는 책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동이 밀려온다.

그리고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있다. 많이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 부자와 가난한 자, 노인과 어린이가 위화감 없이 어울려 앉아 책을 읽는다. 부자라고 좋은 자리에 앉는 것도 아니고, 많이 배웠다고 다른 사람보다 책을 더 많이 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돈과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공평한 곳.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면 사람들이 보인다. 회장님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닌 그저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IMF 때 많은 해고자들이 도서관을 이용한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 기사들을 읽으면서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사회의 한구석에 회사에서 내쫓긴 이들에게 내어 줄 자리가 하나쯤은 있구나 싶은 마음이었다고 할까? 최근 사례를 들자면, 에어컨 없이 지내기가 힘든 여름에는 도서관이 극심한 더위를 피하는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도서관이란 돈을 내지 않고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최후의 사회적 보루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세상 누구도 나를 환대해 주지 않는 것만 같을 때 들를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세상에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28쪽)

<도서관 여행하는 법>의 저자 임윤희는 도서관 열혈 이용자다. 문헌정보학 전공자나 전문가는 아니지만, 외국에 나갈 때마다 생선 가게를 지나치지 못하는 고양이마냥 도서관을 기웃거리는 일을 20여 년 해 왔다. 현재 지역 도서관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좋은 도서관을 만드는 데 아주 조금 힘을 보태고 있다. 본업은 책 만드는 일로, 나무연필이라는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논픽션을 펴내고 있다.
 
 
『도서관 여행하는 법』, 임윤희 지음, 유유(2019)
  『도서관 여행하는 법』, 임윤희 지음, 유유(2019)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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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온라인 서점에서 진행한 북펀딩에 참여해 받은 책이다. 제목만 보고 반가운 마음에 망설임 없이 펀딩에 참여했다. 하지만 가슴 한켠에는 불안함도 있었다. '이렇게 책을 안 읽는 시대에 이런 책이 팔리겠어? 더군다나 요즘에는 도서관에 가는 사람들도 많이 없는데, 펀딩에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리 목표 금액의 두 배가 넘는 액수로 <도서관 여행하는 법>은 펀딩에 성공했다.

기쁜 마음과 함께 안도감을 느꼈다. 책 읽는 사람이 없다고 아무리 우는소리를 해도 어느 한 곳에는 이렇게 매일 책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 텅텅 빈 도서관을 둘러보며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이렇게 나처럼 도서관에 대한 책을 반갑게 기다리고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길 바라며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도서관 여행하는 법>은 저자가 해외에 나갈 때마다 현지에 있는 도서관을 방문하면서 느낀 점, 그리고 우리나라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아쉬웠던 점, 그리고 개선 방향에 대한 고민들을 쓴 책이다. 작고 얇은 책이라 해외의 멋진 도서관 사진들은 볼 수 없어 아쉽지만, 해외 도서관 사진들만 찍은 멋진 사진집이 이미 여럿 출판되어 있으니 이 책 옆에 나란히 놓고 함께 보면 더 풍부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해외 도서관을 처음 보고 느꼈던 놀라움은 나를 한눈에 사로잡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도서관 덕후를 자처하는 것은 그다음 생각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 시민이 어떤 앎의 세계에 진입하려고 할 때 그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사회 전체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랄까. 또한 부유하든 가난하든 잘났든 못났든 늙었든 젊었든 장애가 있든 없든 간에 그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어렵지만 흥미진진한 실험이랄까. 도서관의 세계에는 그런 멋진 꿈이 있었다.(13쪽)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의견에 공감했던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도서관 위치에 대한 것이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해외에는 대부분 도시 한복판에 도서관이 있어서 원하지 않아도 도서관을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도서관들은 어떤가.

대부분 도시 한복판에서 벗어난 구석진 곳에 위치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기 힘든 곳에 있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걷고 오르막길을 힘들게 올라야 갈 수 있는 곳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예상했던 대로 돈 때문이었다. 씁쓸한 현실이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본다면, 한국의 도서관에는 두 가지 기묘한 이미지가 겹쳐 있다. 하나는 독서실, 또 하나는 관공서. 대중을 위한 지식 보급이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면서 탄력을 받아 지어진 북미나 유럽의 공공 도서관과 달리, 일제강점기의 산물이자 국가기관의 성격을 띠며 건립된 한국의 공공 도서관에서 관공서의 느낌을 받는 건 아직 잔존해 있는 과거의 그림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사서는 독서실 총무 혹은 관공서 공무원의 이미지로 비쳐지기도 한다. (41~42쪽)

나는 외국의 도서관은 가본 적이 없어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잘 알 수 없지만, 사서에 대한 생각은 우리나라와 외국이 정말 다르다고 느낀 적이 많다. 외국 작가가 쓴 번역된 책들을 보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어느 도서관 사서에 대한 감사 인사를 빼놓지 않고 적어 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문구였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도서관을 애용해왔지만, 단 한 번도 사서에게 말을 건 적이 없다. 왠지 모르게 말을 걸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느꼈던 것이다. 원하는 책을 찾고 싶으면 도서관 컴퓨터에서 스스로 찾으면 되고, 책 대출과 반납도 기계를 이용하면 되고, 이용하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도서관을 나가 집으로 가면 그만이었다. 사서에게 책을 추천받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감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를 나만 느낀 것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아쉬운 점 하나. 원서가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말 좋은 외국 작품을 읽은 경우, 그것이 영어권 작가의 책인 경우에는 원서도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조금 난감해지는데, 도서관에는 원서가 없고 구입해서 보자니 번거롭기도 하고 책값이 고민이기 때문이다. 원서가 도서관에 충분히 비치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번 아쉬운 마음을 안고 돌아서게 된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나 여행자의 경우 이런 아쉬움은 더욱 클 것이다.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아쉬운 점을 다 말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도서관을 찾는다. 부족한 점이 많아도 도서관은 항상 나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그 어떤 곳보다 소중한 공간이다.

어제도 우리 동네 도서관을 다녀왔는데, 도서관 이용자가 없어서 평소에 저녁 9시까지 운영하던 종합자료실을 한 시간 단축한 8시까지만 운영한다는 내용의 공지가 붙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도서관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힘들었다.

<도서관 여행하는 법>을 읽으며 그래도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아직 희망이 있었다. 저자가 해외의 도서관이 운영되는 모습을 보면서 국내에도 적용할 수 있을 만한 아이디어들을 적은 글을 읽으며 이 책의 저자처럼 앞으로의 도서관을 상상해본다. 나 역시 상상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도서관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힘을 보탤 것이다.
 
작년 연말에 시 낭송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도서관들>의 필자 선생님이 시 낭송을 하러 무대에 올라가셨다. 현직 도서관장이기도 한 선생님께 사회자가 물었다. "선생님에게 올해의 화두는 무엇이었나요?" 선생님은 망설이다가 아주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을까, 하는 거요." 객석에서는 숙연함이 흘렀다가 조금 뒤 와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묵묵하지만 진지한 그런 마음들이 내가 만든 책들을 세상에서 숨 쉬게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다. (15쪽)
 

도서관 여행하는 법

임윤희 지음, 유유(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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